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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오늘 당신의 식사는 안녕하셨나요?

by Carroty

남편의 연휴가 끝났다. 나의 삶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지만, 남편의 출근만으로 나 또한 남들보다 조금 이른 일상으로의 복귀였다. 좋았다. 조용히 나 혼자만의 리듬을 되찾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고,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너무 오래 붙어있으면 힘들었다. 남편이 없으니 미뤄뒀던 일을 하나씩 했다. 마늘 꼭지를 따고, 다져서 소분했다. 대파도 다듬고, 애호박과 감자도 다듬어서 밀키트로 만들어뒀다.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다. 가끔 내가 그렇다. 나는 남편과 같은 직장에서 만났다. 남편은 팀장이었고, 나는 팀원이었다. 그는 옷을 참 못나게 입는 사람이지만 마음만은 예쁜 사람인 것 같아서 내 친한 친구를 소개해줬다. 아쉽게도 내 친구 쪽에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나는 부채감이 컸다. 그래서 한동안 팀장님의 밥을 챙겼다.


"팀장님, 점심 드셨어요?"


밥을 챙긴다는 건, 단순히 한 끼를 챙긴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일의 틈에 잠시라도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마음이 커져나간다는 거였다. 그렇게 매일 팀장님의 점심을 챙기다가, 영원히 밥을 챙기게 됐다. 그 뒤로 나는 남편과 같이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업종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하지만 남편이 어떻게 일하는지는 안 봐도 눈에 빤했다. 그는 적게는 6시간, 길게는 13시간을 서서 일하고, 밥때를 챙기기 어려운 직업이었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 남편의 저녁을 못 챙겨주는 게 항상 미안했다. 그는 자신이 어린아이도 아니라며 알아서 잘해 먹는다고 했지만, 라면을 끓여 먹거나 밀키트 찌개 등을 끓여서 대충 먹었다. 그렇게라도 챙겨 먹어줘서 고마웠고, 마음 한편이 항상 불편했다. 맞벌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가사를 거의 도맡아 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서 퇴사 후에 남편 저녁 챙기기에 더욱 진심인지도 모른다. 특히 그가 힘들었을 것 같은 날에. 오늘은 연휴를 끝내고 출근한 남편이 힘들 것 같아서 매콤한 오징어 볶음을 해놨다. 남편은 오랜만에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남편은 몰랐을 것이다. 그 밥 한 그릇에, 내 하루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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