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 미안해.

by 지은

아빠가 떠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아빠에게 잘해드린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못해드린 것들만

끝없이 기억나고...


아빠가 나한테 못해준 건

생각조차 안 나고,

잘해줬던 기억만

마음에 남아 있는 거였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날이었지...


어느 날,

“딸, 아빠랑 통닭에 맥주나 한잔할래?” 하고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미리 짜증부터 냈어.


“무슨 얘길 하려고 그러지, 또 잔소리하려나…”

하는 마음에 전화에서도 퉁명스럽게

짜증을 부렸는데,

아빠는 그런 내 기분을 달래며

“그냥 나와서 같이 먹자” 하고 부드럽게 말해줬지.


결국 나갔지만, 짜증스런 마음이 풀리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도 계속 짜증을 냈어.

결국 아빠는 화를 내며

먹지도 않고 집으로 가버렸지.


뒤늦게 미안해져서

“아빠, 같이 먹자. 내가 미안해.” 했지만,

이미 상처받은 아빠는 돌아보지 않더라.


그 이후에도…

그날이 몇 번이나 생각나서

아빠를 볼 때마다 미안했는데,

지금은 그게 후회로 남았어.

만회하고 싶어도 아빠가 없어서 할 수가 없지.


술 드시고 전화하셨을 때,

좀 더 다정하게 받아드릴 걸…


“지은아, 라면 좀 끓여줘라!” 했을 때,

짜증 내지 말고 끓여드릴 걸…


술 취해서 집에 들어오셨을 때,

귀찮다고 투덜대지 말고

좀 더 웃으며 받아줄 걸…


왜 그땐 그렇게 못해드렸을까.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려와...


얼마 전 우연히 5년 전, 아빠 영상을 찾았어.

아빠의 얼굴과 목소리가 선명하게 담긴 영상이었지.


영상 속 아빠는 내 기억과 달리

살도 찌고 밝고 건강한 모습이더라.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아빠는

다리도 얇고 팔도 얇고, 얼굴도 헬쓱하고

힘도 없는 모습이었는데, 영상과 너무 달라서

가슴이 더 아팠어.


아빠가 언제부터 아프셨던 건지,

내가 봐왔던 아빠의 모습들이

전조증상인데...

내가 못 알아챈 건 아닐까?

생각하니까, 더 후회스럽고,

더 한스럽고 그렇네…


아빠가 거기서도 나를 생각할지 모르겠어.

내가 하도 짜증만 내고 잘해드리지 못해서,

오히려 내 얼굴 안 봐서 좋다고 생각할까 봐…


그런데 아빠,

아빠가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아.

아빠만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으면,

나는 그걸로 괜찮아.


49재 때 부처님께 간절히 빌었어.

교회며 절이고 어디든 가지 않던 내가,

종교도 없던 내가…


“부처님, 우리 아빠가 혹시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좋은 곳 보내주세요.

제가 살아서 대신 좋은 일 많이 하고 갈게요.

혹시 제가 살아생전에 다 갚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다 받을 테니

우리 아빠는 꼭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

하고 간절히 빌었어.


아빠, 미안해.

그때 치킨집에서 짜증 내서 미안해…

못해줘서 정말 미안해…


이 미안한 마음, 나만의 방법으로

천천히 다 갚아나갈게.


사랑해, 아빠.


keyword
이전 02화보물단지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