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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쯤이야?

by 지은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

‘누군가를 잃었다’는 사실은

정말, 아주 천천히,

삶 속에 스며드는 건 아닐까.


내가 아빠를 마지막으로 배웅했던 그날 이후,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

이상하리만치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아직도 아빠가

어디 일하러 멀리 간 것 같고,

그냥 오늘따라 일이 많아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만 같아.


때로는 멀리 여행 가 계신 것 같은 기분에

아빠가 곧 집에 들어올 것만 같은

이상한 기대가 나도 모르게 올라오기도 해.


그런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아빠와 연관된 물건이나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를 보면

순식간에 현실이 나를 덮쳐와.


얼마 전 다이소에 들렀다가

콧털깎는 기계를 봤어.

순간 아빠가 생각나서

괜히 사람들 눈치 보며

한쪽에서 몰래 울었어.


아빠가 병원 들어가기 전에

“지은아, 좋은 콧털깎는 기계 하나 사다 줘라.”

이렇게 말씀하셨었지.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속으로는 ‘아빠 퇴원하면 꼭 하나 사다 드려야지’

마음만 먹고 결국 못 해드렸어.

지금 생각하면

그냥 “알겠어요, 꼭 사다 드릴게요.”

이 한마디라도 해둘걸,

괜히 더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아빠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 걸까?


아빠가 집에 곧 도착하겠지?

아니면,

오늘도 일이 많아서 늦는 걸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


오늘은 엄마가

아파트 야시장을 이야기하다가

“아빠 있었으면 진아엄마!

가서 동동주나 한잔하고 오자!

했을 텐데,

혼자 있으니까 놀아주는 사람도 없고

이젠 재미도 없네.”

하면서 씁쓸하게 웃으시더라.


그 말을 듣는데

엄마도 나처럼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이런 소소한 순간에

더 선명하게 느끼나 보다 싶었어.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그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그리고 매일매일

여기저기서,

실감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는 뜻이구나 싶더라.


나는 아직도 아빠가

어디선가 집으로 오는 길에

잠깐 들른 것만 같은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


문득 이런 생각도 해.

‘아빠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잘 가고 있는 걸까?’

‘언제쯤 도착하는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정말로

아빠가 어디까지 가고 계신지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 마음이라도 좀 편해질 것 같은데.


아빠,

지금 어디쯤이야?

오늘은 또 어느 길을 걷고 있는 거야?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알지만

마음은 아직도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


가끔은 아빠가

절에 계신 건지

납골당에 계신 건지

정말 어디 계신 건지

궁금하고 또 궁금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아빠가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 같고,

집에 곧 도착할 것 같은

이 어설픈 기대 때문에

아직도 아빠 핸드폰 번호 못 지우고

카톡도 못 없애고

괜히 아빠를 기다리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그만큼 아빠가 그리운 거겠지.


오늘도 나는

아빠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지

상상하면서,

조용히,

그 빈자리를

마음속에서 어루만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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