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잘 지내고 계세요?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벌써 아빠를 떠나보낸 지 5개월이 다 되어가요.
처음엔 시간이 이렇게 흐를 줄 몰랐고,
시간이 안갈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면 슬픔도 옅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제는 눈물이 덜 나는 대신,
그리움이 더 깊어졌어요.
처음엔 매일 울었고,
그 다음엔 매일 아빠를 생각했어요.
지금은 매일... 아빠를 그리워해요.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도 그거였어요.
아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누군가에게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누군가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아빠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더 오래 기억하고 싶었고,
더 선명하게 남기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아빠 얘기 그렇게 자주 하는 거 보니
참 좋은 관계였나 봐요.”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아빠와 나는 살갑게 표현하는
부녀는 아니었잖아요.
그 흔한 “사랑해요” 한마디도 못 했고,
같이 찍은 사진도 별로 없고,
카카오톡 대화창은 늘 비어있었는데.
그런데 이렇게까지 보고 싶을 줄은 몰랐어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너무 늦게 철이 든 건 아닐까.
아빠가 살아계실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아빠가 떠난 후에야 하나둘 깨닫게 되었어요.
그동안 왜 그리 바쁘게만 살았는지,
왜 그렇게 표현에 인색했는지...
지금은 다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아빠, 그동안 제가 연재했던 글들 읽으셨나요?
제가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했는지,
얼마나 후회했는지,
매주 한 글자 한 글자에 담았어요.
병원 복도에서의 짧은 인사,
아빠가 좋아하던 꽈배기,
넷플릭스 영화 목록,
야시장 풍경,
그 모든 것이 글이 되었고
그 글은 결국 아빠였어요.
독자들에게는
그저 감성적인 수필이었을지 몰라도,
저에겐 그게 살아있는 아빠였어요.
아빠가 좋아하던 옷 브랜드,
그때 그 외제차 이야기,
허브 아일랜드에서 꽃구경하며 나눈 대화들...
다 글 속에 살아 있었어요.
그 글들이 있었기에 저는 아빠가 여전히
제 안에 살아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편지는, 연재의 막바지에 다다라서
제가 아빠께 드리는 인사이기도 해요.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었던 아빠.
이제는 더 이상 울지만 않을게요.
라고 약속은 못 해요... 하지만...
정말 가끔 울게요... 정말 가끔...
그리워도, 보고 싶어도,
아빠가 내 곁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대신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아빠랑 대화 나눌게요.
아빠가 거기서도 여전히
‘이건 좀 재미없다’거나,
‘그거 너무 감상적이다’라고
툴툴대고 있을 것 같아서요.
이제 진짜 편지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에요.
이렇게 쓰는 편지도,
매주 아빠 이야기를 꺼내는 일도
이제는 조금씩 멈추려 해요.
아빠와의 추억이 내 삶의 중심이 아니라,
내 삶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될 수 있도록요.
그러니까 아빠,
저 이제 조금씩 더 잘 살아볼게요.
가끔 아빠한테 너무 미안해서,
너무 그리워서,
너무 사랑해서,
그럴 땐… 또 이렇게 몰래 편지를 쓸게요.
그러면… 아빠도 언젠가
내 꿈에 한 번쯤은 와줘요.
보고 싶어요, 아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