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 인천이기도 하고 신랑이 인천에서 살기를 원했다. '모르는 동네지만 정 붙이고 살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임신을 하니 모르는 동네에서 산부인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동네가 작아서 여자 의사가 없다. 어릴 때 아빠랑 스킨십 없이 커서 남자의 손이 닿으면 불편했다. 소름까지는 아닌데 낯설고 싫었다. 그래서 미용실에 가면 여자 디자이너에게 커트하고 샴푸도 "여자분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요청했다.
남자가 감겨주는 머리도 낯설게 느끼는데 산부인과 진료는 남자의사한테 받을 용기가 없었다. 차 타고 35분 거리인 친정 옆, 여의사가 많은 산부인과로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
마음도 편했고 의사 선생님도 참 친절했다. 아이도 쑥쑥 잘 크고 있고 다이어트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거 먹으니 참 좋았다. 엄마들은 아주 공감하겠지만 낳기 전이 제일 편하다. 결혼해서 그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거 같다.
출산 예정일 5일 전.
나 혼자 있는데 갑자기 진통이 오면 어쩌지
신랑은 회사에서 집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친정엄마도 서울에서 일하고
시댁이 가깝지만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없고
택시 타고 산부인과까지 가는 도중에 낳는 건 아닐까?
양수가 터져서 동네 남자의사한테 가서 낳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쩌지?
예정일이 다가오면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진통이 안 온다...
찌릿찌릿도 없다... 이상하네...
출산 예정일 당일
"선생님 저 진통이 안 오는데요 어떡해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면서 처음 겪어 볼 진통이 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무서웠다. 친정엄마는 15시간 진통하셨다고 한다. 15라는 숫자부터 너무 무섭다.
"음.. 혹시 생리통이 없으신가요?" 선생님이 묻는다.
"네 전혀 없어요" 대답했다.
"아 생리통이 없으면 진통이 안 느껴질 수 있어요 일주일 동안도 진통이 없으면 날 잡고 촉진제 맞고 애 낳읍시다. 계속 기다리기만 하다가 애가 계속 커지면 낳기 힘들 수 있어요"라고 하셨다.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일주일 안에는 낳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진통이 없어 결국 입원 했고 아침9시부터 촉진제를 맞으며 기다리다1시가 되었다. 아직 진통이 없다.
옆에 같이 누워 있는 산모가 계속 바뀐다. 소리도 지르고 어떤 산모는 드라마처럼 남편한테 신경질도 낸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 순위는
1위 불에 타는 고통
2위 손가락, 발가락이 잘리는 고통
3위 출산의 고통
4위 남성이 고환을 맞았을 때의 고통
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로 고환 맞는 건 한 순간이지만 출산은 최소 한 시간에서 열몇 시간인데 순위차이가 너무 안 난다. 내가 안 맞아 봐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겠지만, 남자들도 출산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들은 다 쉽게 견디고 넘어갈 수 있는 고통이라고 생각할 거 같다.
어차피 겪을 고통인데 그것도 인간 고통 3위인 이 녀석이 느껴지질 않는다. 고통 예약이 더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