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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한 Oct 10. 2023

선생님! 5시 50분까지 낳아볼게요

#6화. 진통이 안 온다...

인천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시댁이 인천이기도 하고 신랑이 인천에서 살기를 원했다. '모르는 동네지만 정 붙이고 살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임신을 하니 모르는 동네에서 산부인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동네가 작아서 여자 의사가 없다. 어릴 때 아빠랑 스킨십 없이 커서 남자의 손이 닿으면 불편했다. 소름까지는 아닌데 낯설고 싫었다. 그래서 미용실에 가면 여자 디자이너에게 커트하고 샴푸도 "여자분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요청했다.

남자가 감겨주는 머리도 낯설게 느끼는데 산부인과 진료는 남자의사한테 받을 용기가 없었다. 차 타고 35분 거리인 친정 옆, 여의사가 많은 산부인과로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

마음도 편했고 의사 선생님도 참 친절했다. 아이도 쑥쑥 잘 크고 있고 다이어트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거 먹으니 참 좋았다. 엄마들은 아주 공감하겠지만 낳기 전이 제일 편하다. 결혼해서 그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거 같다.




출산 예정일 5일 전.

나 혼자 있는데 갑자기 진통이 오면 어쩌지

신랑은 회사에서 집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친정엄마도 서울에서 일하고

시댁이 가깝지만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없고

택시 타고 산부인과까지 가는 도중에 낳는 건 아닐까?

양수가 터져서 동네 남자의사한테 가서 낳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쩌지?


예정일이 다가오면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진통이 안 온다...

찌릿찌릿도 없다... 이상하네...


출산 예정일 당일

"선생님 저 진통이 안 오는데요 어떡해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면서 처음 겪어 볼 진통이 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무서웠다. 친정엄마는 15시간 진통하셨다고 한다. 15라는 숫자부터 너무 무섭다.


"음.. 혹시 생리통이 없으신가요?" 선생님이 묻는다.

"네 전혀 없어요" 대답했다.


"아 생리통이 없으면 진통이 안 느껴질 수 있어요 일주일 동안도 진통이 없으면 날 잡고 촉진제 맞고 애 낳읍시다. 계속 기다리기만 하다가 애가 계속 커지면 낳기 힘들 수 있어요"라고 하셨다.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일주일 안에는 낳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진통이 없어 결국 입원 했고 아침 9시부터 촉진제를 맞으며 기다리 1시가 되었다. 아직 진통이 없다.

옆에 같이 누워 있는 산모가 계속 바뀐다. 소리도 지르고 어떤 산모는 드라마처럼 남편한테 신경질도 낸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 순위는

1위 불에 타는 고통

2위 손가락, 발가락이 잘리는 고통

3위 출산의 고통

4위 남성이 고환을 맞았을 때의 고통

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로 고환 맞는 건 한 순간이지만 출산은 최소 한 시간에서 열몇 시간인데 순위차이가 너무 안 난다. 내가 안 맞아 봐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겠지만, 남자들도 출산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들은 다 쉽게 견디고 넘어갈 수 있는 고통이라고 생각할 거 같다.


어차피 겪을 고통인데 그것도 인간 고통 3위인 이 녀석이 느껴지질 않는다. 고통 예약이 더 끔찍하다.


3시 20분

"담당 주치의 선생님이 6시에 퇴근하시면 당직 선생님이 출산 도와주실 거예요"라고 간호사가 말하고 퇴장한다.


잠시 후

저쪽에서 "안녕하세요~고생이 많으십니다." 연륜이 느껴지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내가 누워있는 커튼을 젖히고 그분이 들어온다. 벗어진 이마가 반짝 거린다.

"안녕하세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제가 오늘 야간 당직 담당 의사입니다. 담당 선생님 퇴근하셔도 편안하게 출산하실 수 있게 도와 드릴테니 힘내십시오" 나긋나긋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대머리 지만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인상도 좋으시고 병원에서 가장 경력이 많은 대표 원장님이시란다.





영화 도가니 교장 선생님


그. 런. 데

나는 왜 영화 도가니 교장 선생님이 생각난 걸까(교장이 학생들에게 성폭력과 학대를 저지름)

초초초 예민한 상태라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머리가 살짝 이상해졌나 보다.

대표원장이고 나발이고 나는 내 주치의 여의사 한테만 다리 사이를 보일 거다 이 사람은 안된다!


호출버튼을 미친 듯이 눌렀다

"왜요 이제 좀 진통이 오세요?" 버튼을 너무 눌러서 간호사가 놀랬나 보다.

"아니요 제 주치의 선생님이 퇴근하시기 전에 낳고 싶어요. 5시 50분까지 낳아 볼게요 제발 도와주세요" 약간 울먹이기까지 했다.

간호사는 내 생각을 눈치채지 못하고 수간호사를 콜 다.


"많이 힘드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는 있는데 좀 아플 거예요 괜찮으시겠어요?" 한눈에도 출산의 달인처럼 생기신 분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아파도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출산의 달인이 진통을 수차례 유도해 주셨고 신랑과 함께 폭풍 배마사지 등등 한 시간 동안 그간호사님이 시킨 대로 반복 또 반복했다. 아파죽겠는데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소리 지르다 힘 빠지면 6시 전에 애 못 낳으니까


아랫배에 힘이 들어간다 흡!


5시 17분

정서한 산모 담당 선생님 콜해주세요!


5시 28분

축하합니다~ 예쁜 공주님입니다~


성공이다. 주치의 퇴근 전에 애를 낳았다.





#7화 예고

애를 재우다 짐볼이 터졌다... 방방방 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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