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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한 Nov 21. 2023

장남인 남편이 아들을 원할 때

# 8화.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 더니...

결혼식 3일 전이었나

달달한 감정과 사랑스러운 표정을 장착하고 예비 신랑에게 물었다.

"우리 애는 몇 명이나 낳을까?"

극 T인 그가 답했다.

"한 명만 낳자 요즘 애 키우는데 돈도 많이 들고, 딸이면 서울로 이사 갈 필요 없이 인천에서 계속 키워도 되고"

(이게 무슨 말이야 막걸리야.)


한 명만 낳자 돈이 많이 드니까 까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딸이면 인천에서 계속 키워도 되고는 해석이 좀 필요했다.


아들이면 서울로 가서 힘들게 공부를 시켜야 된다는 뜻인가?

딸이면 학구열이 덜한 인천에서 편하게 키우자는 뜻인가?

딸이면 공부시키려고 아등바등 서울로 이사 갈 필요 없단 뜻인가?


물어봐도 속시원히 대답해 줄리 없기에 아직까지도 이 대답은 속시원히 해결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대하는 남편을 보고 '아 그때 한 말은 본인 아이를 실물 영접 하지 못한 어리석은 남자의 헛소리였구나' 생각할 뿐


당시에 저런 대답을 듣고 서운했다.

서운 했지만  결혼 전에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말싸움하고 싶지 않아서 듣고 넘겼다.

말을 예쁘게, 듣기 좋게 못하는 남자구나.

앞으로 달달함으로 무장한 질문은 절대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가족계획을 하자마자 허니문 베이비가 생긴 우리는 첫 아이가 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첫 딸은 재산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시댁에서는 내심 아들을 바라신 거 같다.

먼 친척의 결혼식에 시댁 식구들과 함께 갔는데 시이모님께서  아버님께 그런다 "형부 요즘은 딸이 더 효도한대요 딸이 더 좋지 뭘~"

아버님이 앞에 뭐라고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이 말을 듣고 앞에 '아들을 바라신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셨나?' 짐작만 했다.


나한테 한 번도 아들을 낳아야 하지 않겠니 등 그 비슷한 말도 하지 않으셨다. 첫째가 딸인데 아빠를 너무 닮아 아들 생각은 안 나신 거 같았다.




그런데 점점 딸이든 아들이든 둘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혼자 자라기도 했고 딸이 남편만 닮아서 나 닮은 둘째를 낳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신랑을 닮아서 무뚝뚝하게 말할 때나, 종일 온갖 수발 다했는데 아빠가 오면 강아지처럼 달려 나가 아빠만 기다렸다는 듯이 안길 때

나만 그 둘과 다른 편인 것 같았다.


혼자 생각만 하고 있는데 신랑이 언제부턴가 아들 있는 집  얘기를 자꾸 한다.

"딸만 있는 집에서 자란 형수가 아들 둘을 낳고 우울증이 싹 사라졌대" ,"우리 원 아들이 애가 참 똘똘하네"

말 주변 없는 남편이 남의 얘기를 대강 했을 텐데 아들이라는 단어가 더 크게 들렸다.


세상이 바뀌어서 요즘은 며느리에게 아들, 딸 타박을 하지는 않는다.

시댁에서 장손을 낳아야 한다, 맏며느리이니 서열상 둘째 며느리 보다 네가 아들을 낳아야 하지 않겠니 라는 말은 안 했지만 눈치 빠른 나는 왜 이런 말들을 다 들은 것 같은지...

 

'그래 그럼 이왕 둘째 낳을 거 아들로 낳아보자!'

딸만 둘이면 엄마가 비행기 타고 가다 죽는다며 그만큼 호강을 한다던데

나는 딸 둘 낳고 도련님이 장가가서 아들 낳으면 괜히 지는 느낌일 거 같다 안 되겠다.

남매로 키우기 좀 힘들어도 집안과 우리 가족의 밸런스를 위해서 첫째 딸, 둘째 아들 딱 좋다.

둘째는 아들이어야 한다 주문을 걸었다.


친정엄마는 딸 하나 나만 낳고 시댁에서 시달리고 시댁 식구만 31명이 모이는 큰집에 가서 시달렸다.

혼자 외롭다 아들 하나 더 낳지 그러냐 소리를 추석, 설, 가족행사 내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상을 팍 쓰고 "저 동생 싫어요"를 외쳤다.

그래서 내가 말 안 들으면 '애하나라서 저런다', '외동딸이라 그런다' 소리 들을까 봐 눈치 보며 말썽 없이 얌전히 지냈다.


친정엄마가 겪은 설움을 나는 겪지 않으리! 목표가 있으면 한 곳만 보고 돌진하는 나는 큰 눈을 더 크게 부릅뜨고 아들 낳는 법을 검색했다. 어? 진짜 아들 낳는 법이 있다. 식사부터 운동량 부부관계 방법까지


허니문 베이비를 갖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나 닮은 아들을 상상하며

아들 낳는 법 책에 밑줄을 그어갔다. 밑줄 그은 그 부분에 적힌  대로 살았다.

밑줄 아래에는 이것이 아들을 갖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글귀도 꽤 많았다.

그래도 확률상 어쩌고만 쓰여있어도 그게 어디인가


책 대로 열심히 살았더니 정말 아들이 나에게 와주었다.

결혼 전까지 '살면서 맘대로 되는 게 없다 없다' 했는데 임신만큼은 내 뜻대로 되는 행복한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낳았더니 남편을 똑 은 첫째와 달리 얘는 완전 내 판박이다.

'아.. 날 닮은 자식을 낳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찐 행복이 한번 더 와주었다.


신생아를 안고 시댁에 갔는데 시아버님이 아파트 앞에서 누군가와 얘기 중이시다.

"오늘 큰아들이 집에 오는데 아들을 낳았네 아들을 허허허허 아이고 저기 오네 저기"

그날 처음 출근하는 경비아저씨를 붙잡고 얘기 중이셨다.


난 이제 맏며느리로서 할 일 다 했다. 친정엄마처럼 설움 당할 일도 없고 누가 아들이 어쩌네 딸이 어쩌네 하는 소리에 움츠러들 필요도 없다.


남편이 서운하게 하면 꼭 하는 마무리 멘트

나 안 만났으면 딸도 없고 어? 아들도 없고 어? 나한테 잘하란 말이야


.

.

.

토끼 같은 9살 딸 강아지 같은 5살 아들 얼마나 좋은가

데리고 놀아주라고 했더니 몇 시간째 아이들을 쳐다만 보던 남편이 말한다.  우리.......... 셋째?

.

.

.

쫌!!!!!







# 9화 예고.

성실한 건 좋은데 성실하기만 하잖아요 네?

-꼰대남편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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