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지도 몰랐다.

by 자영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정적인 속마음을 말하지 않고 참는 법을 배워왔다. '이게 먹고 싶어', '저게 갖고 싶어' 이런 것은 종종 표현했다. 하지만 '아빠가 이렇게 행동해서 너무 무서워', '수학 선생님이 매번 질문해서 대답 못 할까 봐 무서워', '급식비가 밀린 걸 친구들이 알았을 때 정말 창피했어' 이런 식의 두려움이나 수치심을 꺼내보였던 적은 없었다.


왜일까? 그래봤자 나는 20년도 채 살지 않은 아이였는데 말이다. 당연히 무서운 것이 많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울고 싫다고 발버둥 치는 게 당연한 나이인데 나는 왜 그것들을 말하지 않고 30대가 된 지금까지 가슴에 묻고 살아왔을까? 그것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말해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무서웠다고 말하면 아빤 다시 그때 모습처럼 불같이 화를 낼 거야', '수학 선생님 얘기 해봤자 뭐가 변하는데?', '급식비가 밀렸던 건 우리 집이 가난해 서잖아. 이건 말해봤자 엄마 마음만 아프고 해결되는 건 없어' 이런 식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생각들이 정말 무시무시했다. 새까만 어둠이 나를 잡아먹는 것만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말하지 못한 부정적인 속마음을 밤새 끌어안은 채 끙끙 앓으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내게 벌어졌고 그때마다 나는 겉으로는 침착한 척, 별일이 아닌 듯이 행동했지만 속은 우왕좌왕, 이걸 어떻게 해야 피해 갈 수 있을지 초조해하며 하루를 다 보낸 적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그 수학 시간이 있는 날이면 아픈 척 보건실에 가있거나, 화를 내는 아빠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이것만이 내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을 피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아이는 이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두려움인지 수치심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관찰할 생각조차 없었으니까. 그저 마주하기 싫었던 그 순간이 지나가면 작은 숨을 뱉었을 뿐이다.


이 아이는 커서 20대가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마주해야 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리고 웃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때의 나는 병원 원무과에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밝은 표정과 상냥한 태도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무표정이 일상이었던 나는 이 문제로 적지 않은 컴플레인을 받거나 직장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체력으로 밝은 표정을 장착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노력'한 덕분인지 직장에서 친절 직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잠시나마 기뻤지만 이 훈장은 내가 더욱 두껍고 무거운 가면을 써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 정작 나는 출근길 병원 입구만 보여도 가슴이 답답하고 점심 식사 후 쉬는 시간에는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다시 두껍고 무거운 그 가면을 쓰고 일하면서 상사가 칭찬을 해줘도 잠시뿐, 다시 가면의 무게가 느껴졌다. 퇴근 시간도 즐겁지 않았다. 집에 가서 몇 시간 쉬고 다시 내일 아침이 되면 이곳으로 출근을 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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