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믿음
며칠 전 친구들과 술 한 잔을 하고
기분 좋게 집으로 가는 길에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날 몇 개 보이던 별도, 크게 떴던 보름달도
까만 하늘에 가려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 아무도 날 마중 나오지 않았구나.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며
천천히 놀이터로 걸어갔다.
아무도 아무도 없는 놀이터 미끄럼틀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술은 깨고 집에 들어가야지.
5분쯤 흘렀을까. 모르겠다.
10분일지도 모르겠다.
안 마시던 술을 마시고 취했더니
시간 감각이 영 신통치 않다.
기억나는 거라곤 내 눈앞에
구름 다섯 개 정도가
둥둥 떠다니는 것 밖에 없다.
한참 있으니 어디선가 새우깡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아, 새우깡 먹고 싶다.
아까 편의점에서 과자 사 올걸'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나의 대각선에 있는 벤치에 시선이 갔는데
거기에 어떤 고등학생이 앉아있었다.
안경 쓴 남학생이었는데, 한 손에는 새우깡,
다른 한 손에는 종이를 들고 있었다.
새벽 시간이었고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빨리 일어나서 가려다 그만뒀다.
그것보다 지금 후다닥 뛰어간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
조금 더 머무르기로 했다.
쟤는 정말 내가 안 보이는 걸까. 훠이훠이.
뚫어져라 쳐다보니 바람 사이로
작은 흐느낌 같은 게 느껴졌다.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도 아니고
모래바람이 이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제야 그 애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순간 그 애가 들고 있는 저 종이는
성적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 그래서 내가 보이지 않았구나.
나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모래를 털고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 애의 세상에서 지금 여긴
아무도 아무도 없는 놀이터일 테니까.
오늘 도서관에 있는 카페에 갔다가
우연히 두 여학생이 대화하는 걸 들었다.
선생님 얘기, 모의고사 얘기,
그리고 시험 얘기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멘트.
나 이번 시험 망했어.
지구를 돌고 돌아 시험이 있는 나라의 학생이라면
언젠가 꼭 말했을 한 마디.
어렸을 때 나는 이 문장에서
벗어난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평생의 꿈을 적으라고
종이를 내밀었다면 나는 정말
그렇게 적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겨우 이 문장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또 다른 문장이 나를 가로막았다.
이번 생은 망했어.
학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그걸 이제 와서 깨닫는다.
인생은 망함의 연속이라는 것을.
고민 끝에
문장을 바꿀 수 없다면
의미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망할 망(亡)이 아니라 바랄 망(望)으로.
그래. 네 이번 시험도 다음을 위한 희망이 있고, 이번 생도 아직 희망이 있다.
망하는 게 이런 뜻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희망이라는 믿음.
그래서 내 남은 생은 기대를 걸어볼까 해.
이걸 믿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