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비린맛

by 작가미상


2025년 8월 26일


몇 없는 대학 친구들 중 한 명인 W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산업기사 시험을 사이좋게 낙방한 것이 이유였다. 전으로 돌아가 20일, 서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렸을 때 아쉬움도 있었지만 후련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는데, 그 순간 우리는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잠시 W를 소개하자면, 대학교 2학년, 그러니까 같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흔하디흔한 복학생으로 만났다. 178 정도의 평범한 키에 평범한 얼굴, 어디 하나 잘난 구석도, 모난 곳도 없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W는 장난도 잘 받아주면서, 가고자 하는 길을 확고하게 가진 내면이 강한 사람이었다. 특히 장난기가 많은 나와 잘 맞았다. 그도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지, 대화가 잘 통했고 꽤나 친한 관계로 발전했다. 즉, 세모신주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나의 인간관계 가치관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그들을 나는 간단히 '세모신사람'이라고 칭했다.


약속을 잡을 당시, W는 충청도 사람의 특징답게 확정된 약속을 잡기 어려웠다. (본인 또한 충청도 사람이지만, 돌연변이인가보다) 그래서 간단하게 27일 6시 대학교 술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설렜다. 재미있는 대화가 오갈 것이고, 취기가 오르면 즐거웠던 대화도 서로의 상황에 대한 본질적 대화로 익어가, 그것을 파고드는 맛이 요즘 맛보지 못할 그런 감칠맛이랄까.


2025년 8월 27일 13시쯤


나와 W는 컴퓨터 게임도 좋아했다. 그래서 같이 게임을 하고 싶어 4시에 만나자는 목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W의 일정은 13시, 학교 도서관에 도착해 공부를 한 후 6시에 나를 만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 4시에 게임을 하는 것에 의견을 물었고, 그는 말했다.


"게임? 나 요즘 잘 안 하는데."

"오버워치? 그거 같이 했잖아. 하자 그러고 술 먹자."

"모르겠다. 일단 보고 말해줄게."


만나는 당일이 오늘이고 4시까지 두 시간 반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냥 지금 정하자고 나의 주장을 던졌다.


"근데 우리 만나서 뭐해?"


말투에는 '만나도 재미없을 것 같고 시간이 낭비일 것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만나기 싫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근데 우리 어차피 개강하기 전에 과 애들이랑 한 번은 만나지 않을까?"


W는 만나기 싫었던 것이었다.


다음에 만나기로 했지만, 그는 "왜?"라는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물었다. 이유는 알지만 말이다.

나는 이미 그의 말투에서 만나기 싫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으니 개강하기 전에 애들이랑 만나든, 개강 후에 만나든 하자"라고 말했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미안해하진 않아."


하루가 힘들었다. 내가 '세모신사람'이라 부르던 사람 한 명 때문에 말이다. 이것이 세모신주의의 단점일까. 그 범주 안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결정하는 건 오롯이 나였고, 나는 그를 믿고 모든 정과 신뢰를 쏟았지만, 그 '세모신사람'이 나를 그들의 인간관계 가치관에 들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진정 세모신사람이라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음 날 나와도 친한 과 친구들과 총 4명이서 술을 마시고, 그 다음 날엔 또 다른 친구 한 명과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내가 미안해하진 않아'라는 말은 나란 존재가 W의 인간관계 가치관에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강 시간에 함께 게임을 하고 밥을 먹으며 다졌던, 감칠맛이 물씬 풍기던 추억은 이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쓰디쓴 비릿한 향만 느껴진다.


나는 세모신사람으로 들인 한, 그의 가치관을 알았다 해도 멀어지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렇게 W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멀어지겠지. 나는 그것과 더해 쓰라림을 안고 멀어짐을 당할 것이다.


시원한 물 1.5리터를 벌컥 마시며 뜨거운 머리 대신 식도를 식힌다. 맞다. 그렇게 큰 효과는 없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아니었거늘 이란 생각으로 떠나보내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사랑을 주기 바쁜 세상에 미움을 주긴 싫었던 모양이다. 어떤 길이든 지름길은 없다지만, 인간관계의 길이란 참 여러 갈래이기도 하며 울퉁불퉁, 오르락내리락, 추적추적 하기도 하네.

월, 화, 수,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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