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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건넨 말

by 최은녕 라온나비

바람이 건넨 말



나는 기꺼이

말을 아끼기로 했다

정답만 가득한 길보다

흰 도화지 같은 여백에

조용히 발을 디뎠다


들판에 누워

바람이 건네는

투명한 언어를 들었다

스르륵—

풀잎 흔들림이

내 귀에 속삭였다


삶이란

속도를 내기보다

발끝에서 멈칫,

돌아서는 순간들에 가깝다

비워둔 마음엔

오래 끓인 국물처럼

진심이 눌어앉아

깊은 맛을 낸다


침묵이

열 개의 문을 열어줄 때가 있다


이 바람의 여백을 지나며

나는 배웠다—

말보다 먼저

눈빛으로 닿는

조용한 공감의 언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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