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상
*표지사진: 버지니아대 요가실에서 내려다본 작은 연못
오는 11월 3일, 요가 시작한지 5년 8개월이 지났다. 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동안 나에게 상을 준다면, 개근상이겠다.
어렸을적 개근상하고는 거리가 좀 멀었지 않나싶다. 초등학교때는 잔병치레가 좀 있어서, 개근상은 커녕 정근상도 5,6학년때가 되어서야 겨우 받지 않았나 싶다. 중.고등학교때는 정근상은 받은 기억이고.. 대학교때는 1-2학년때 하도 땡땡이를 많이 쳐서 학사경고를 받지 않은 것이 기적이랄까? ㅋㅋ
개근상에 해당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4학년때부터 이었던 기억이다. 나의 인생에 무엇을 하며 살지를 결정한 후 말이다.
원래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에 몰두하는 성격이다. 쓰고 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나. '꽂히면'이란 단어에 '몰두'라는 의미가 내재해 있으니까.. 하나마나한 문장이다.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꽂히는' 무언가를 찾거나 만나는 행운 혹은 의지를 가져보았는지가 더 적절한 질문이겠다.
내 인생엔 '꽂히는' 경험을 여러번 했었다. 어릴적 지독한 (어쩌면 어리석은) 짝사랑도 두세번 했었고, 다행히 늦지 않게 물리학에 꽂혔고, 그리고 지난 6여년 전부터 아쉬탕가요가에 몰두해오고 있다.
어느 분야이든 수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당당함 혹은 여유 혹은 자존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사회에서 타인들의 인정도 인정이지만, 자신에게 내재해있던 깨알같은 가능성을 지난한 노력으로 거대하게 꽃 피웠다는 자신에 대한 놀라움 혹은 뿌듯함이랄까.
이제는 카포타사나에서 양손이 두 발꿈치를 움켜쥘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중급시리즈에서 가장 어렵다는 카란다바사나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초보수준은 훨씬 벗어났다고 해도 되겠다.
요가수련에서 개근상의 결과다. 역시 '99% practice, 1% talent' 다.
혹은 우디 알렌이 한 말: 'Ninety nine percent of success in life is just showing up.'
지난달 9월 말, 하루는 요가수업을 마치고 존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선생 대리 (substitute)가 되어달라고. 공식적으로. 그러니까, 자신이 여행을 가거나 하여 수업을 할 수 없을때, 나다러 요가수업을 진행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식적이니, Contemplative Science Center 에서 그 시간만큼 수당을 지불해 줄 거란다.
이제부턴, 내가 속한 이 대학에서 본업인 물리학만이 아닌, 가끔 요가도 가르치며 며칠 마차라떼 값도 부수적으로 벌겠다. 언젠간, 요가가 나의 주업이 될까?
5년 8개월. 먼길을 왔다. 아직 갈길은 더 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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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8.
오늘 버지니아대학에 아쉬탕가요가 이벤트가 있었다. Contemplative Science Center 빌딩의 완공을 기념한 이벤트였다. 아쉬탕가요가의 창시자 파타비 조이스의 손자이자 현재 아쉬탕가요가를 이끌고 있는 사라스 조이스가 방문을 하여 새로운 요가시리즈를 소개하는 이벤트였다. Active series라는 시리즈인데, 초급시리즈를 좀 쉽게 변형시킨 시리즈다. 아쉬탕가요가가 일반인들에게 너무 어려운 요가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좀더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시리즈를 쉬라스가 만든 것이다.
그 이벤트 후에 사진을 찍었다. 나의 선생 존과 존의 선생 사라스와 함께. 존의 키가 너무 커서, 사라스와 나는 난장이처럼 보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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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1.
사라스가 쉐난도 산맥에 하이킹 중 세상을 떴다.
2024.11.24.
지난 주에 버지니아대학 요가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난 금요일은 선생 존의 구령수업이 있었고, 그 수업 후에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매주 금요일의 요가 일정이다. 린다가 가져온 자신이 만든 쿠키를 차와 마시며 존과 대화를 나누었다. 앞으로 인도 마이소어에 있는 아쉬탕가 요가 본부는 누가 어떻게 이끌어갈지.. 존에 의하면 여러 의견들이 리더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같은 일개 아쉬탕기들의 요가수행에는 별로 영향이 없지 않을까. 아쉬탕기들은 여전히 매일 새벽이 일어나 매트위에 서서, 자신들의 요가루틴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일상을 꾸려간다.
오늘 일요일에는 Ashtanga Yoga Charlottesville (AYC)에 가서 캐롤앤의 구령수업을 들었다. 오늘은 내 바로 옆에 전에 본 기억이 없는 30대 중반의 여성이 수련을 했다. 수리야 나마스카라 동작부터 그이의 아사나는 수준이 매우 높음을 보였다. 아마 고급시리즈 A 전체를 수행하는 요기니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캐롤앤이 그 여성을 앞으로 불러내어 소개를 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사라스에게 요가를 배웠고, 오랫동안 플로리다에서 요가를 가르치다가 최근에 이곳에서 한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이사를 왔단다. 그래서 가끔 이곳 샬롯스빌에 와서 요가를 해왔고, 지금부터 시간이 허락하면 캐롤앤이 여행중일때 AYC에서 마이소어수업을 진행할 거란다. 음.. 훌륭한 선생이 왔군.
AYC를 나서려는데, 우연히 그 요기니가 바로 옆에 있어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이름을 묻더니, 나를 버지니아대학 요가모임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을 했다. 응? 난 본 기억이 없는데..
수준이 높은 대다수의 요기 요기니들의 공통점은 한가지다. 대부분 20대 중후반에 요가를 시작하여 30대 중후반까지 높은 수준으로 올라오고, 그때부터 요가선생을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으로 한다는 것이다. 나같이 50대 중반에 시작하여 60대 까지 꾸준히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래서, 눈에 띄나 보다.
오늘도 아쉬탕기, 아쉬탕기니들은 변함없이 매트에 서서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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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타사나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yStr256f-g
카란다바사나 영상:
https://www.youtube.com/shorts/hGdeittpP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