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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

오후 대부분의 시간 혼자 책을 읽었다

by 이보정 해피피치

Unfadable... (#3)⁣ ⁣


시간이 가도 잊을 수 없는

순간, 장소, 사람에 대한 기억




어릴 때 엄마는 아버지 가게 일을 도우시느라 집에 없는 때가 많았다. 내가 필요할 때 쓰라고, 가계부에 끼워두신 지폐 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빼어 들고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당장 돌아가시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연로하신 할머니가 앉아 있는, 조그마한 구멍가게에서 라면 하나, 계란 하나, 새우깡을 샀다. 가게는 너무 작아 할머니가 앉은자리에서 모든 물건이 손에 닿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라면에 계란 하나 톡 깨어 넣어 끓여 먹고, 오후 대부분의 시간 혼자 책을 읽었다. 1년에 100여 권의 책이 뚝딱 읽혔다. 내 인생에서 고통 없이 큰 성과를 거둔 일이 책 읽기였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 갈 시간에 혼자 방바닥에 누워 읽었던, 그 많은 책들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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