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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인생 Jun 16. 2024

미래는 대충대충 정해진다 (2)

1993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명문대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그리고 본인이 나온 대학이 바로 아래 서열의 대학들과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연고대는 우리 학교에서 자기 이름만 쓸 줄 알면 갈 수 있었어."


그렇게 대단한 대학을 나온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람이 세운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이민을 와서는 자기 이름만 쓸 줄 아는 사람이면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샌드위치 가게도 권리금 한 푼 못 받고 날려먹었다. 내가 보기에 아버지의 학벌이 빛을 발했었던 경우는 한인교회 같은 곳에서 누가 '이분은 KS 라인이십니다' 하고 소개를 할 때 말고는 별로 없었다. 그렇게 좋은 학벌로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이십 년도 채우지 못했지만 아버지에게 출신학교는 명예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저렇게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왜 저러고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근래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본다. 첫 만남에서부터 한국에서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 자랑스럽게 강조하는 분들이 있다. 자식들에게도 명문대를 들어가면 사회에서 얼마나 이점이 많은지 귀에 못이 박히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출신학교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치고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이 보지 못했다. 정말로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건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반면에 공부에 뜻이 없었으나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합격의 기쁨을 거머쥔 사람들은 본전을 뽑고 싶어 한다. 아버지도 후자의 경우였다.


나는 캐나다에서 그나마 괜찮다는 토론토 대학을 나왔다. 캐나다에서도 무슨 학교를 나왔는지가 중요한가? 직장생활을 이곳에서 20년 넘게 한 내 경험으로는 기술직이나 IT 쪽은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토론토대에도 멍청이들은 우글우글하고 작은 대학을 졸업해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 2년제 칼리지를 나온 사람들과 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실히 있다. 후자의 경우는 세세한 지도 없이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는 능력이 다소 앞서는 것 같다. 하지만 일단 대학을 나온 사람들끼리는 출신이 큰 변별력이 되지 못한다. 캐나다는 면접을 볼 때 비교적 꼼꼼하게 실무능력을 측정하는 편이다. 회사는 이윤추구가 목적이다. 일만 잘하면 강아지라도 채용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이름 없는 대학을 나와서 취직이 잘 안 된다면 그건 학교 때문이 아니라 그냥 실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나는 학벌이 중요하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본인은 그래도 좋은 대학을 나와서 안 그런 사람들의 비애를 몰라요" 하는 말을 듣는다. 가끔은 "더 좋은 곳을 나온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시잖아요"라고도 한다. 캐나다에서 한국사람들끼리만 몰려다니면서도 그렇게 굳게 믿는다. 아직도 아이들을 의사 변호사로 만들고 싶어 하는 부모들도 많이 보인다. 그들은 "요새 애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몰라서 문제야"라고 말한다.


마치 자기네들은 자기 아이들 나이일 때 목표가 있었던 것처럼.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청소년 때 무엇이 되고 싶다는 확실한 신념이 있는 아이들은 매우 적었다. 캐나다 현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아빠가 그러는데 변호사나 의사 하면 돈 많이 번대" 혹은 "대학 가서 이거 저거 좀 들어보고 결정하려고.. 그냥 남들 버는 만큼은 벌어야지"가 대다수였다. 사실 그 나이 때 뭘 안다고 하고 싶은 게 있겠는가?


교포 아이들의 경우에는 남자는 "취직 잘 되는데 가야겠지" 혹은 "아빠가 그러는데 앞으로는 뭐가 뜰 거라는데..." 식이었다. 자기가 딱히 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열심히 했지만 무슨 특정한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것보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 " 혹은 "결혼해서 애는 셋을 낳고 가정부를 둘 수 있었으면 좋겠어" 식이었다. 대부분 그렇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딱히 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냥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평탄하게 살면서 돈 부족하지 않을 만큼 벌어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인생의 목표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 우르르 가서 줄 서서 해보고 놀 거 다 놀아보고 엄마아빠 말 잘 들어서 나중에 유산이라도 섭섭잖게 받는 게 행복한 인생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사회가 복잡하지 않아서 남 따라서 살기만 했어도 되는 시대였다. 나도 40대 후반이지만 요새 MZ들이 문제야 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을 볼 때마다 '야, 너네들도 저 나이 때는 만만찮았어'라고 말해주고 싶은 걸 참는다. 그들은 "우리 때는 적어도..."라고 항변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기록을 해둬야 한다.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 인생이라는 객관식 문제의 보기가 네 개였다면 지금은 열네 개가 넘는다. 그들도 십 대 때부터 인터넷 되는 스마트폰 쓰면서 학원을 서너 개씩 다녀야 했다면 지금 아이들보다 딱히 나았을 거 같지는 않다.


요새 부모들은 전 세대와는 달리 자기 자식들은 목표와 꿈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들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경험을 많이 시켜줘야 한다면서 많은 돈을 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끔씩 의문이 든다. 제대로 된 목표를 가지려면 얼마만큼의 경험이 필요할까?  이를테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소개팅의 횟수는 어느 정도가 될까? 그리고, 그런 건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꿈이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대학은 가고 싶었지만 딱히 뭘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글 쓰는 걸 좋아했지만 기본적인 문법도 틀리는 주제에 캐나다에서 인문계는 가당치도 않았다. 물리를 잘하는 편이긴 했지만 내가 이걸 대학교에서까지 배울 머리는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화학은 성적이 제일 높았지만 재미가 없었고 생물 쪽은 아예 과목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나는 살아있는 것을 공부하는 걸 싫어했다. 생물은 항상 예외가 있고 그 예외들을 암기로 커버해야 했다. 나는 게을러서 외우는 걸 잘 못했고 뭐든지 법칙대로 돌아가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생물이 싫었다.  수학은 나름 재미있었기 때문에 전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으나 물리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아마 굉장히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무난하게 공대에 지원했으나 나는 공대에 그닥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게 4년 내내 기술만 배운다는 것 때문이었다. 대학 다니면서 공대 학생들을 자주 접했는데, 내 예상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 일단 대학 왔으면 그래도 좀 이거 저거 배우는 게 좋지 않겠나 싶었다.


나는 토론토 대학 문리대에 (Arts and Science) 합격하고 난 후 등록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두꺼운 책자를 받았다. 아버지와 나는 책자를 훏었다. 아버지는 '미래에는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을 한다더라' 하면서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전공이 어떠냐고 물었다. 전산학, 수학, 철학 등을 배워야 하는 통합전공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억지로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대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자식에게는 뭘 배워라 강요할 의도는 없었고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이야기하는 정도였다. 나는 좋아하는 컴퓨터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인문학도 배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름이 길어서 마음에 들었다.


"Artificial Intelligence and Cognitive Science"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단어들만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있어 보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전공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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