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예쁨의 기준
운전을 하고 있는데 뒷좌석에 앉은 소은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엄마가 예쁘다고 생각해?"
"응, 그럼. 엄마는 예쁘지."
"소은이도 소은이가 예쁘다고 생각해"
"응. 난 예뻐."
"맞아. 그렇게 자기 자신을 예쁘다고 여기는 마음이 중요한 거야."
나는 룸미러를 통해 소은이를 바라보며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며 말했다.
"그럼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도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해?"
소은이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요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즐겨 보더니, 상상력이 풍부해진 걸까?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이라니.
여태껏 살면서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을 상상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괴물의 입장에서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도 없기에 소은이의 질문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괴물은 정말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할까?
"글쎄? 소은이가 머리 세 개 달린 괴물이라면 어떨 것 같아?"
이럴 땐 거꾸로 질문을 던지는 게 최고이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질문을 넘겼다.
"난 예쁘다고 생각해. 여기에도 눈이 있고, 여기에도 눈이 있고, 여기에도 눈이 있으니까 이것도 볼 수 있고 저것도 볼 수 있고 저것도 볼 수 있잖아. 많이 볼 수록 좋은 거야."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그러나 진지하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소은이의 태연함에, 그리고 괴물을 예쁘게 바라봐주는 아이의 마음에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나는 아이에게 자기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괴물이 예쁘냐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예쁘다는 게 결코 겉모습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괴물이 예쁘다고 말할 수 없던 것이다.
과연 '예쁘다'의 정의란 무엇일까. '예쁘다'는 사전적으로는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소은이의 대답에서 '예쁨'을 판단하는 기준은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남이 나를 예쁘게 봐서 내가 예쁜 게 아니라, 내가 여러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으니 예쁜 것이었다.
하긴,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도 우리에겐 괴물이지만 머리 세 개 달린 나라에서는 그게 정상일 것이고 미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예쁘다는 기준도 결국 우리가 만든 것에 불과하니 소은이 말처럼 머리 세 개 달린 괴물의 입장에서는 자기도 충분히 예쁘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닐는지. 심지어 우리보다 더 많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지혜롭고, 행복할지도 모른다.
아이의 말을 통해 또 한 번 배우게 되는 요즘, 아이는 말하고, 엄마는 쓰는 이 작업은 언제나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