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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커줘서 고마워.

'예쁘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 대신

by 강진경

"예쁘게 커줘서 고마워."

해야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나한테 '예쁘게 커줘서 고마워.' 해야 한다고."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고 있던 소은이의 느닷없는 말에 나는 당황해서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뿜을 뻔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거울을 보니까 내가 너무 예뻐서."


"'그럼 소은이가 엄마에게 예쁘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아니야. 난 원래 엄마에게 안 태어날 수도 있었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난 원래 다른 집에서 태어날 뻔했는데, 내가 엄마 아빠한테 온 거거든."


천역덕스러운 아이의 말에 기가 막혔지만 나는 뒷 말이 궁금해 계속 대화를 이었다.


"그래? 그럼 소은이는 왜 엄마, 아빠에게 왔는데?"

"엄마, 아빠가 가장 착해 보여서. 내가 하늘에서 보니까 먼저 태어난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막 혼나고 있었어. 그런데 엄마, 아빠는 화도 안 내고 착할 것 같아서 하느님한테 엄마, 아빠한테 가겠다고 한 거야."


소은이의 말을 듣고, 거울에 비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영을 막 끝내고 온 탓에 뽀얀 얼굴이 평소보다 더 뽀얘 보였고, 긴 갈색 머리카락은 촉촉하게 젖어 어깨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밝고 맑았고, 머리카락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물방울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세상을 맑게 바라보는 그 눈빛, 자신이 우리 집에 태어난 이유를 특별한 곳에서 찾는 그 마음이 예뻤다.


나는 문득 아이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소은이의 말대로 원래는 우리에게 올 아이가 아니었다면. 정말 아이가 부모를 선택해서 우리 가족 모두의 운명이 바뀐 거라면. 그리고 만일 내 삶에 이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소은이의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걸 내가 확인할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믿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과 아이들이 스스로 부모를 선택해서 온다고 믿는 그 특별한 상상력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곁에 와 준 소은이에게, 나는 과연 착한 엄마, 좋은 엄마가 맞는지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혹시 아이가 아니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면서 새삼 아이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나를 믿고, 나를 선택해 준 아이에게. 나는 얼마나 잘해 주고 있을까. 어쩌면 소은이의 말대로 내가 아이에게 '예쁘게 커줘서 고마워.'라고 말을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은이가 내 손을 잡으며 싱긋 웃는다. 나는 소은이와 맞잡은 손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앞으로도 이 아이가 마음껏 예쁘게 자랄 수 있도록, 매일매일 더 사랑하고 아껴줘야지.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아이가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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