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아이는 불면증인걸까?

영유아기 수면장애에 대하여

by 강진경

육아를 할 때 아이가 잠을 안 자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없다. 나 역시 소은이를 키우며 잠과의 전쟁을 벌였고, 5살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보통의 아이처럼 재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당시 힘들어하던 내게 시간이 약이라며 조언을 해준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시간이 대체 나에게 언제 오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대부분 아이는 두 돌 정도만 되어도 잘 자고, 세 돌이 지나면 쓰러져 잔다고 한다. 그러나 소은이는 네 돌을 넘기고, 유치원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잠 문제에서 조금 살 만해졌다.


이 세상에 잠 못자는 아이가 소은이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분명 어딘가에는 지금도 아이의 잠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부모들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 기약없는 시간이 올 때까지 부모가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기에 그런 부모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수면 문제는 아이의 기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나는 소은이를 키울 때 내 아이의 기질에 대해 전혀 몰랐고, 엉뚱한 수면 교육으로 삽질만 반복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소은이는 아기때부터 잠이 없는 아이로 유명했다. 잠이 드는 것도 어려웠고, 잠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웠다.

두 돌까지 아이를 안거나 업어 재워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재워 바닥에 내려 놓는 순간 아이는 다시 잠에서 깨어 인정사정없이 울었다. 하룻밤에도 10번 이상 깨서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 아이가 13개월이 되었을 때 모유수유를 끊으며 비로소 통잠을 자기 시작했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잠 드는 것을 힘들어했다. 과장없이 단 하루도 혼자 누워서 잠이 든 적이 없었고, 잠이 오면 무조건 악을 쓰고 울었다. 안아주거나 업을 때까지 울고, 때론 안겨서도 울고, 밖으로 나가야 비로소 울음을 그쳤다. 그냥 잠을 안자는 것이라면, 집에서 밤을 새서라도 놀아주겠지만 문제는 잠이 오면 우는 상황이 매일같이 공식처럼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할 수 없이 날이 좋은 날은 유모차, 비가 오면 차를 타고 나가서 길에서 아이를 재웠다. 아이가 잠드는 시간은 늘 밤 12시가 넘었다. 겨우 잠든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히면 성공보다 실패하는 날이 더 많았다. 성공했어도 한 번에 두 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었다. 새벽에 아이가 깨면 다시 안아 재우기를 반복. 그렇게 우리 부부는 2년을 거의 산송장처럼 살았다.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두 돌 무렵 이사를 하면서 잠자리가 바뀌자 아이는 비로소 누워 자기 시작했다. 물론 잠드는 데까지는 2시간, 많게는 3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이가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28개월에 어린이집을 보내며 다시 고난이 찾아왔다. 어린이집 적응기간에 담임교사가 우는 아이를 한 시간 동안 방치했고, 아이는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밤이면 밤마다 경기를 일으키며 울었다. 당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목놓아 울던 장면은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 일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우리 가정에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그 날 이후 울며 깨기를 수십 번. 아이의 눈이 뒤집히고, 비명을 지르고, 공포에 사로잡혀 벌벌 떠는 아이를 보며 가족 모두 절망하던 날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한의학의 관점으로 보면 소은이는 영아기에는 야제증을 앓았고, 좀 더 커서는 야경증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야제증은 밤에 운다는 뜻으로 신생아부터 만 2세 미만 아기에게 주로 나타난다. 별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우는 아이라면 기가 정체되어 순환이 안되고 몸의 한 곳에 열이 뭉쳐져 있는 상황, 즉 기체증을 야제증의 원인으로 본다. 그리고 야제증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상초기체증이 그대로 남아 호흡기 질환이나 소화기 질환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야경증은 밤에 놀란다는 뜻으로 갑자기 잠에서 깨어 비명을 지르거나 악몽을 꾼 것처럼 놀라서 우는 증상을 말한다. 주로 3세 이후의 유아에서 8세 미만의 아동에게 나타나며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몸부림을 치는 등 공포나 공황상태처럼 보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경증은 차츰 나아졌지만 잠 못드는 밤은 여전했고 결국 아이가 36개월이 되었을 때 우리는 소아한의원을 찾아갔다. 소은이를 진맥한 한의사 선생님은 소은이를 체력이 좋고 에너지가 많은 아이, 아래 기운보다 위에 기운이 많고 특히 머리 쪽 기운이 강한 특징이 있으므로 아래 기운을 강화하여 몸의 균형을 회복시키자고 하셨다. 그러면 기운이 뱃 속으로 잘 돌아오게 되어 지금보다 잘 잘 수 있을 거라고.


그럼, 드디어 우리 아이의 수면 장애가 해결되었을까? 수십 만원의 돈을 주고, 한약을 지어왔지만 아이는 약을 먹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아이가 안 먹으면 끝이다. 설탕도 타보고 주스에도 넣어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보았지만 아이는 끝내 약을 거부했다. 만 3세면 갖난아기 때처럼 입을 벌려 억지로 먹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의원 프로젝트도 수포로 돌아갔다.


여기까지 읽고 이해가 안가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아이를 왜 이렇게 힘들게 재우지? 그냥 놀다보면 아이가 자는 것 아닌가? 불 끄고, 자장가 틀어주고, 그림책 좀 읽어주면 아이가 뒹굴뒹굴하다 잠이 드는데?


보통의 아이는 그럴 것이다. 지금 5살이 된 소은이는 그렇게 재운다. 그러나 내게는 이런 평범한 일상이 허락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아이 머리를 쓰다듬고, 뒹굴거리다 함께 잠이 드는 것. 얼마나 평온하고 행복한 풍경인가. 운이 좋으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이게 가능하겠지만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은 아니다.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든다? 우리 가족에게 그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상상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물론 시간의 힘을 빌린 것이 가장 크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쉬움도 많이 든다. 그 당시 '내가 이렇게 했었더라면, 엄마도 아이도 힘들었던 그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알 수 없는 사명감으로 굳이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다보면 결국 생각이 정리되고, 그 과정에서 소은이를 키웠던 힘들었던 지난 날도 치유되리라 믿으며.


미리 밝혀두지만 보통의 아이를 키우는 분들에게는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아이를 키우기 힘들었다는 얘기를 참 길게도 적는다.'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의 수면 장애로 고통 받는 분들에게는 내가 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소망으로 글을 쓴다. 부디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헛되지 않을 것 같다.


(소은이의 수면 장애 극복 이야기가 궁금하신분들은 아래 순서대로 읽어주세요. 연령별로 총 네 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돌 이전의 영아 수면 이야기

https://brunch.co.kr/@ella1004/80



영아기, 밤중수유와 수의 상관관계

https://brunch.co.kr/@ella1004/81



12개월에서 36개월 수면 이야기

https://brunch.co.kr/@ella1004/84



36개월 이후 수면 이야기

https://brunch.co.kr/@ella1004/79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