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렸다.
마치 금요일 같은 피곤함에 그냥 자려던 참이었다. 혹시 부모님께 걸려온 전화일까 하는 마음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면을 확인했다. 곧 몸이 굳은 듯 잠시 통화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발신자 이름에 ‘내 사랑이~♡’라고 떠 있었으니까. 그 이름을 내 휴대폰에서 본 건 무려 4년 만이었다. 사랑이는 하나뿐인 내 딸이다. 나는 아이를 ‘세상에 내어 놓은 내 심장’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그 마음을 담아 이름도 내가 직접, 한글로 지어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4년 넘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10년 전 이혼 당시, 사랑이는 온전히 내 편이었다. 심리검사에서 가족 그림을 그리라고 했을 때, 엄마와 자신만을 그렸던 아이였다. 상담사가 아빠도 그려야 한다고 하자 종이를 뒤집어 아빠를 그린 뒤, 엄마와 자신이 그려진 쪽만 선생님께 보여줬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나는 아이와 아빠의 관계가 좋아지길 바랐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아이를 키워야 할 사람이 아빠이기 때문이었다. 6살 아이가 꼭 아빠를 만나야 하냐고 물었지만 아빠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재미있을지 모른다며 면접을 이어가게 했고, 시간이 흐르자 둘은 정말 많이 친해졌다.
2020년 2월, 사랑이는 말했다.
“아빠와도 살아보고 싶어.”
다들 내게 괜찮냐고 물었지만 나는 어른이니까, 엄마니까, 사랑이가 좋다면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애착은 사랑이가 나에게 형성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이에게 형성한 것이었다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다.
사랑이가 있었던 자리에 사랑이가 보였다. 등 뒤에서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게 두려웠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 숨을 쉬기도 어려웠으니까.
1년 후, 사랑이 아빠와 크게 다퉜다. 그는 내 감정의 한계점 버튼을 눌렀다. 나는 사랑이와의 만남 일정을 정해달라고, 직접 조율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모든 걸 거절했다. 결국 그날, 감정이 폭발한 나는 말했다.
“사랑이와 일정을 조율해서 만날 때까지 면접은 안 하겠다.”
연락을 끊겠다는 뜻이 아니라, 만나지 않겠다는 뜻이었지만 그는 나와 내 가족 모두를 차단했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로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유리멘탈’을 바꾸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대학원에 진학해 경영코칭컨설팅을 공부했다. 그 여정에서 나는 유리를 아예 깨버렸다. 이제는 ‘멘탈갑’, ‘여전사’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올해 4월, 카톡에 아이 이름이 떴다. 드디어 연락이 올 거라 기대했지만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기프티콘을 보내도, 생일 선물 사라고 돈을 보내도, 직접 선물을 보내도 받지도 않았고 답도 없었다. 나는 좌절했다. 아이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누르고 웃는 목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잘 지냈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저 “응”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본론을 얘기했다.
“엄마한테 가도 돼?”
진짜 큰일이 생긴 건가 너무 불안했다. 하지만 티 내지 않기 위해 웃으며 다시 물었다.
“가도 된다는 건 엄마 보러 오겠다는 거야? 같이 살겠다는 의미야?”
아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살겠다는 뜻.”
1분 32초의 짧은 통화였는데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4년 만에 들은 아이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용건만 간단히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내 그리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무적인 느낌이어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아, 아이도 나처럼 조심스러웠겠구나.’
4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만 길었던 게 아니라,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아이의 거절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아이도 나의 거절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담담하게, 더 사무적으로 말했을지도 모른다.
중학생이 된 사랑이가 “엄마한테 가도 돼?”라고 묻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용기를 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아이였다.
복잡한 마음에 피곤함은 한 번에 날아가고,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채 뒤척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단단해진 내 마음으로 아이를 맞이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나에 대한 감정이 어떻든 상관없이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그리움이나 서운함보다는 아이의 마음에 먼저 집중하기로 했다.
일요일 만남을 위해 조용히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가 좋아하던 음식들을 떠올려보고, 어떤 대화를 나눌지 생각해 봤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가기로 했다.
그 시간의 무게는 엄마인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학생이 된 사랑이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엄마한테 가도 돼?”
이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 이제 일요일까지, 설렘과 두려움 사이에서 아이를 만날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