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라 두렵고, 오랜만이라 어색했지만

by 예서연

사랑이와 만나기로 한 날, 나는 거울 앞에서 수없이 웃어봤다. 어떤 표정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무엇을 입을지, 어떤 말을 건넬지, 심지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까지 고민되었다. 4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사랑아!" 하고 불러도 달려와 안겼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조차 볼 수 없었던 시간, 어느새 4년이 흘렀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사랑이는 초등학교 4학년의 앳된 모습이었다. 그 사이 아이는 사춘기를 맞이했고, 나는 갱년기를 맞이했다. 각자의 시간을 따로 살아낸 만큼, 우리 사이의 거리는 분명해졌다.


약속 장소는 사랑이가 고른 맥도널드였다. 아이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20분 일찍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매장 안으로 들어서니,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4년 만의 재회를 준비한다는 게 어딘가 모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가 편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약속 시간 5분 전, 매장 입구로 까만 긴 생머리에 까만 반팔 티와 통 넓은 까만 바지를 입은 아이가 들어왔다. 키가 훌쩍 자랐고, 얼굴은 앳된 티를 벗었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사랑아!"

내가 옆으로 다가가 인사하자, 아이는 무표정으로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엄마!" 하고 소리쳤을 텐데, 지금의 사랑이는 조용했다. 사춘기의 변화인지, 4년의 시간이 때문인지, 마음 한켠이 서늘해졌다.


"잘 지냈어?"

"응, 잘 지냈어."


짧고 건조한 대답. 예전의 사랑이라면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를 쏟아냈을 텐데 지금은 내가 물어야만 대답을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뭐 먹을까?"

"프렌치프라이."

"햄버거는 안 먹어?"

"아침 먹어서 배가 안 고파."


키오스크 앞에서 실랑이를 피하고자, 맥너겟을 먹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는 프렌치프라이 L 사이즈와 맥너겟 4조각을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어색함은 계속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웃으며 일상을 물어봤다.


"아침은 뭘 먹었는데 아직 배가 불러?"

"던킨 도넛."

"아침으로 도넛을 먹었어?"

“아빠가 사줬어.”

무표정하게 말하는 사랑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음식이 나오고 함께 먹으면서 조금씩 대화가 늘어났다.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이도 경계심을 조금 내려놓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화 속에서 아이의 일상이 드러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빠는 어때? 잘 지내시지?"

"음... 바빠."

"많이 바빠?"

"응. 밤늦게 들어와."

아빠는 보통 밤 11시 반에서 새벽 1시 사이에 들어온다고 했다. 사랑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을 혼자 먹고, 혼자 숙제하고, 혼자 잠든다고 했다.


"무섭지 않아?"

"아니. 아빠가 없는 게 더 좋아."

“밤에 스탠드를 켜고 잘 정도로 무서워했는데 이젠 괜찮아졌어?”

“응.”


아빠가 없어서 더 좋다는 말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자기 전에 꼭 "손 잡아줘"라고 했던 아이가, 이제는 혼자서 모든 걸 해내고 있었다.


"엄마랑 살겠다는 이유가 아빠 때문이야?"

사랑이는 잠깐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한테는 말했어?”

“응. 아빠한테 말하고 엄마한테 전화한 거야.”


아이의 표정에서 단호함이 읽혔다. 나와 살겠다고 결심할 때까지 아이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 놀라운 건 유튜브는 하루 1분, 게임은 5분만 허용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유튜브도 못 보고 게임도 못 했어?"

"아니. 유튜브는 네이버로 들어가면 볼 수 있어. 게임은 친구들이랑 PC방에 가서 하고."

"그럼 아빠도 없이 하루 종일 집에서 뭐 하면서 보냈어?"

사랑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네이버 웹툰 보고,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했어."

체념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예전의 사랑이라면 "싫어!", "왜?"라고 따졌을 텐데, 지금은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순응적으로 변한 걸까.


"카톡은 엄마한테 오려고 차단 푼 거야?"

"차단 한 적 없어. 그때 아빠가 깔아준 거야.”

“엄마랑 연락 못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카톡을 못한 거야?”

“운동하면 중학교 가서 하게 해 준다고 했는데, 안 해주잖아. 그래서 운동도 안 갔어. 그랬더니 이번에 깔아준 거야.”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와 가족들을 차단한 줄 알았는데 아예 연락 수단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가 나를 피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연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겨, 사랑이는 말차 프라푸치노를 마셨다. 녹차를 좋아하는 건 예전과 같았다. 빨대를 입에 물고 생각에 잠긴 모습도 여전했다. 하지만 조용히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사랑아, 엄마는 네가 오는 건 언제나 환영이야. 우리 살던 집 기억해?"

“응.”

“엄마는 아직 그 집에 살고 있어. 네가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방 하나는 장롱이 있고 주로 짐으로 채워져 있어. 엄마는 다른 방에서 생활해. 그래서 사랑이가 오면 엄마랑 같은 방에서 지내야 하는데 괜찮겠어?”


어릴 때는 몰랐지만 중학생이 된 사랑이에게 방이 필요할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살던 곳은 방 2개에 거실이 없는 구조라 한 방에서 지내야 하는 걸 사랑이가 싫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같이 써도 돼.”

"정말? 불편하지 않을까?"

"괜찮아. 지금 사는 집은 방 하나에 거실이 있어."

“그럼 너는 어디서 지내?”

“난 방에서 지내고, 아빠는 거실에서 지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집에서 자기 방을 갖고 넓게 살라고 아빠에게 보내준 건데, 이렇게 사는 환경이 달라질 줄은 몰랐다. 마음이 어느새 싸늘해지고 있었다.


"그래. 네가 괜찮으면 엄마도 괜찮아. 다음에 이사하면 네 방을 만들어줄게. 그때까진 조금 불편해도 엄마랑 지내자."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밝고 자기주장이 강했던 아이는 사라지고, 조용히 순응하는 아이만 남아 있었다.


그날 밤, 사랑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4년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고민했다.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돌아갈 수는 없다. 아이도, 나도 각자의 시간을 살아냈다. 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있다.


사랑이가 먼저 용기 내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내가 용기 낼 차례다.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은 낯설지만, 함께면 익숙해질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예전에 우리가 그랬듯.

이제 정말 다시 시작이다.

keyword
이전 02화2025년 7월 7일 밤 10시 37분에 울린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