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상한 목공방 1]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
3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남편도 있는 여자가 혼자 유학을 갔다며 "야! 걔 이혼하는 거 아냐?"라고 떠들었지만, 그들의 걱정과는 달랐다. 남편은 여행하는 마음으로 나를 찾아왔고, 미지근하던 우리 사이는 도리어 애틋해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첫날 남편은 아침 일찍 나를 깨웠다.
"지아야!! 일어나 봐! 우리 드라이브 가자!"
"뭔 소리야~ 아침부터 무슨 드라이브를 간다고 그래? 나 더 잘 거야. 깨우지 마!"
"어우~ 야~~~ 나 드라이브 가고 싶단 말이야~~"
남편이 몸을 좌우로 흔들며 전에 없던 애교를 부린다. 익숙지 않은 광경에 잠시 흠칫 놀랐지만 '너무! 심하게! 반가워서 그러는 걸 거야'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따 낮에 가자! 왜 아침 일찍부터 그래?"
"세수만 하고 나가면 되지! 나는 벌써 준비 다 됐는 걸? 커피도 준비할 거야!"
"내 말은 안 듣는 거야? 그 말이 아니잖아!"
"빨리 나와~~~ 얼른 일어나서 세수해~~"
"하... 저렇게 좋아하는데, 면전에 대고 성질부릴 수도 없고... 아 진짜!!"
잠이 깨지 않는다. 더 자고 싶은데 그럴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일단 식탁 의자에 가 앉았다. 남편이 보온병에 커피를 쪼르르 따르며 콧노래를 부른다. 턱을 괴고 멀거니 바라보았다. 내가 없는 동안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며 집돌이로 지냈을 사람이다. 외로웠을 긴 시간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또 나를 이리 반겨주니 퍽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드라이브는 좀 과하지 않은가? 웬만한 커피숍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을 시간이다. 그러니 커피를 손수 타고 있구나!
예전 같았으면 버럭 소리 지르며 화를 냈을 상황이지만, 오늘 나는 말없이 남편의 뒷모습을 감상 중이다. 어쩌면 일본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장면은 아니었을까? 막상 돌아와 보니 그리움만큼 달콤하지는 않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나가자! 나가면 되지! 저렇게 좋아하는데 드라이브가 뭐 어렵겠어? 나는 말없이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서른 넘어 뒤늦게 유학을 결정했었다. 결혼 생활 중 갑자기 유학을 선언한 이기적인 결정이었으니 유학비를 대 달라 할 수도 없었다. 부모의 도움 한 푼 없이 대학을 졸업한 나였다. 까짓 거 유학도 내 힘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예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다. 극한의 연속이었다. 어학연수를 받았지만, 일본어 실력은 금세 늘지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열 살이나 차이 나는 이방인 여자를 친구로 대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아르바이트하며 죽어라 공부만 했다. 하루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작고 초라한 방에 누워 있을 때면 남편이 그리워졌다.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 나는 여기서 뭐 하는 것인가. 한국에서는 남편 덕분에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내게는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일본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동물병원 진료를 하러 갔다가 쁜이와 마르코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비가 걱정이라 일본에서 막 돌아왔지만, 쉴 틈도 없이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일본에서는 시각디자인을 배웠다. 하지만, 막상 신입으로 들어가려니 전에 일하던 경력에 비해 연봉 차이가 크다.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3년 6개월의 타지 생활을 견디고 왔건만, 결국 제자리라는 것이 암담했다.
건축회사 인테리어 그래픽 팀으로 다시 취직했다. 하필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도 작다. 유학은 대체 왜 다녀온 것일까? 한숨만 나온다. 전보다 더 이 일이 싫어지니 벌써부터 큰일이다.
대학 시절에는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미래를 꿈꿨다. 잡지에 나오는 유명 건축가처럼 내 이름을 걸고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대학만 졸업하면 다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사무실에 틀어박혀 주문하는 대로 그려내는 것이 현실이요 나의 일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창의성을 발휘할 준비가 되었건만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 우울하기만 했다.
그동안 별다른 증상이 없었던 마르코는 선천성 혈관 기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간으로 영양이 가지 않고, 해독되지 않은 것들이 몸을 돌아다니면 암모니아 수치가 오르고 경련발작으로 뇌 손상이 온다고 했다. 당장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기침을 오래 했던 쁜이는 노환인 줄 알았는데 심장병이라고 했다. 쁜이도 문제지만 마르코가 더 큰 문제였다. 일단 쁜이는 병원에 두고 마르코를 데리고 신촌의 큰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 절차를 밟고 있을 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쁜이가 이상해요. 힘없는 얘가 갑자기 죽을힘을 다해서 짖더니 쓰러졌어요. 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에??? 쓰러졌다고요? 알았어요. 얼른 갈게요. 여기 서울이라 가는데 30분은 걸릴 것 같아요."
액셀을 연신 밟아대며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보니 쁜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 30분 사이에 쁜이가 죽었다. 하얀 상자 안에 눈을 뜬 채 누워 있었다. 비실거리던 녀석은 죽음을 감지하고 온 힘을 다해 나를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졌고 조금 전 심장이 멎었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오랜 시간 의지하며 지낸 녀석이다. 애교 많은 순둥이. 참 예뻐했는데... 나를 유난히 따르던 녀석이었다. 녀석이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저앉아 한참을 섧게 울었다. 쁜이가 얼마나 아픈지 알지 못하고 마르코가 더 위중하다 생각했었다. 나를 찾으며 죽어갈 때 곁에 있어 주지도 못했다.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쁜이를 그렇게 보냈으니, 마르코는 끝까지 치료해 주고 싶었다. 치료하더라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일어나는 마르코를 병원 사람들은 불멸의 마르코라 부르며 응원했다. 1년의 투병을 끝내고, 3000만 원이라는 병원비를 남기고, 마르코는 떠났다.
마르코가 죽던 날 나는 울지 않았다. 마음은 슬픈데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남편도 울지 않았다.
"왜 쁜이 갔을 때처럼 눈물이 나지 않지?"
"나도 그런데!"
"그래? 왜 그럴까?"
"마르코는 그래도 우리가 최선을 다했잖아!"
"그래서 그런가?"
이미 예고된 죽음이었다. 어쩌면 오늘을 준비하며 매일 조금씩 울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회사를 그만뒀다.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종일 TV만 보고, 또 어느 날은 종일 잠만 잤다. 남편이 갑자기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켜더니 나를 살핀다. 이마에 손을 얹고 뭐라 혼잣말을 떠들더니 나를 흔들어 깨운다.
"지아야! 일어나 봐! 일어나 봐!!! 어디 아파? 열은 없는데?"
조그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이 걱정스럽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어나 앉았다. 머리가 멍했다. 너무 많이 잤나 보다. 남편은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데 귀까지 멍한 것이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다. 시끄럽고 귀찮기만 하다. 그래도 대답해야 할 것 같아 대충 아무 말이나 했다.
"어... 잤어...... 그냥 졸려서 잤다고..."
입을 열고나니 신기하게 귀까지 열렸다.
"계속 잠만 잤다고?"
"어...... 좀... 많이 잤나? 지금 몇 시야?"
아침인지 저녁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저녁 7시야! 전화는 왜 안 받아? 내가 전화를 몇 번 한 줄은 알아? 지아야! 대체 왜 그래?"
"어... 그랬어? 전화기... 전화기 어디 있지? 꺼져있네? 충전을 안 했던가? 아! 미안!!"
무기력증에 빠져 그 뒤로도 며칠 잠만 잤다. 일어나서 움직이려 했지만, 자꾸만 몸이 가라앉았다.
남편이 어디서 듣고 왔는지 버려진 강아지가 있다며 나를 끌고 동물병원을 가잖다. 녀석은 열두 살로 추정되는 노령견 마르티스 수컷이었다. 분리불안이 심해 주인이 외출하면 종일 짖었던 모양이다. 주인은 한밤중에 찾아온 옆집 남자와 시비 끝에 몸싸움까지 벌였다고 했다. 남자는 자꾸 짖어 대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며 병원으로 데리고 와서는 알아서 해 달라고 버리고 갔다며 의사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버려진 거라 분리불안이 더욱 심해진 거 같아요. 4일째 밥도 안 먹어요."
남편이 가까이 다가가 앉자, 녀석이 남편 무릎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오더니 그대로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의사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전 주인도 남자분이었는데 사이가 각별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의사 잘못도 아닌데 나는 괜히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각별했으면 뭐 해? 버리고 갔으면서?"
"그러게 말입니다.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하더니 얌전히 자는 거 봐!"
남편은 녀석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머리털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얘 입양하자!"
"허... 글쎄?? 순하고 예쁘기는 한데... 분리불안이 심하다고 하는데 괜찮을까?"
"그냥 두면... 얘 여기서 굶어 죽을지도 몰라."
"그렇기는 한데..."
섣부른 결정으로 감당 못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했다. 세 번 버려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책임이 네게로 향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의사가 단단히 결합되지 않아 벌어져 있는 나무에 쐐기를 박으며 말했다.
"저희도 버려진 애들을 병원에서 몇 마리 키우고 있기는 한데요. 더 이상 감당이 어려워요. 이렇게 가끔 대책 없이 버리고 가는 사람이 있어요. 파양 된 애들은 입양 가는 것도 어려워요. 여기서 입양이 안 되면 애들은 보호센터로 보내야 하는데, 거기서도 입양 안 되면 안락사시켜요. 너무 안타깝죠."
이렇게 멀쩡한 생명을 안락사시킨다니 충격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은 낯선 사람 무릎에서 잘도 자고 있었다. 불쌍했다. 안락사라는 말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냉정해질 수 없었다. 나는 녀석의 입양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분리불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질투도 심하고 성질머리도 대단했다. 내가 남편 근처에 가기만 해도 천사같이 예쁘고 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댄다. 조그마한 몸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다. 두 번이나 버려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까탈스럽고 성질도 지랄 같은 녀석이지만 그래도 '엣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남편은 사실 엣지를 데려온 것은 나 때문이라고 했다. 잠만 자는 부인에게 활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벌인 일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괜한 짓을 한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 갔다 온다. 집에만 있지 말고! 엣지 데리고 동네 산책이라도 하고 와! 같이 산책도 다니고 해야 친해지지!"
"알았어. 잔소리 그만하고 얼른 출근해!"
남편 말처럼 나는 움직여야 했다. 엣지와도 친해져야 했다. 다행히 엣지는 남편이 없을 때는 고분고분했다. 녀석을 데리고 동네 골목으로 나왔다.
우리 동네는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지 한참 됐지만 소문만 무성하지 아직도 재개발 소식은 없다. 오래된 빌라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있는 빌라촌의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발바닥이 뻐근하도록 걸었다. 걷다 보면 우울함이 좀 덜할까 싶어 걷고 또 걸었다. 산책을 하니 엣지도 좋아했다. 남편 말대로 자주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멀리까지 걷기로 했다. 마음에도 바람이 통하는 것 같았다.
남부역 쪽으로 내리막길을 따라 걸었다. 낯선 길이다. 오래된 동네라 길도 삐뚤고 복잡하다. 연식을 가름할 수 없는 연립주택들은 담장도 없다. 목련연립은 1층 길가 쪽 벽을 뚫어 상가를 만들어 놨다. 간판은 없고 유리 벽에 이삿짐센터라고만 쓰여 있다. 불 꺼진 상가 안을 들여다보니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창고에 가깝다. 바로 옆 작은 꽃가게를 지나 걷다 어느 공방 앞에 멈춰 섰다. 오밀조밀 꾸며놓은 조그맣고 예쁜 향초 공방이었다.
"이런 골목에 공방이 다 있었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딸랑하고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던 여자가 나를 보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알 수 없는 향들이 뒤섞여 코를 자극했다. 향초가 켜 있는 4인용 테이블 옆에는 길쭉한 작업대가 있고, 벽을 따라 나열된 진열대 위 알록달록한 초로 가득했다. 모양을 낸 방향제도 포장되어 있었다. 진열대를 둘러보다 파란 눈의 고양이 그림에서 시선이 멈췄다. 고양이가 그려진 공방 마크였다. 순간 놀라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마르코와 똑같다. 고개를 돌려 대뜸 여자에게 물었다.
"사장님. 이 고양이 혹시 히말라얀이에요?"
"네? 아~~ 그 그림이요? 네! 제가 키우는 고양이인데 히말라얀 종이예요."
"그래요? 흔한 종은 아닌데..."
"손님도 히말라얀종 키우시나요?
"네...... 얼마 전에 별나라로 갔어요."
"아이고...... 마음 아프시겠네요."
"네...... 그렇죠. "
"......"
괜히 말을 꺼냈다 싶었다. 얼른 향초를 하나 들고 가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이거 주세요"
"포장해 드릴까요?"
"아니요. 그냥 주세요."
공방을 나와 몇 걸음 걷다 다시 뒤돌아 생각했다.
'이렇게 골목에서 혼자 공방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그날 이후 나도 공방을 차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마르코 얼굴이 그려진 간판을 달고 싶었다.
유학 시절에 목공 수업을 들으며 나무의 매력을 알았다. 거친 표면을 사포로 곱게 갈고 나면 부드러운 촉감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조각도를 사 조그만 목조각을 깎고, DIY 목공예 키트를 조립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목공을 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어디서 솟아난 용기인지 모르겠지만 향초 공방을 다녀온 후로 나도 목공방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목표가 생기자 갑자기 의욕이 넘치기 시작했다. 향초 공방의 히말라얀 고양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마치 마르코를 만난 듯 반가웠다. 마르코는 너도 할 수 있다며 응원하는 것 같았다.
마르코의 병원비로 3000만 원을 썼다. 그런데도 우리는 망하지 않았다. 평생을 넉넉하게 살아 본 적 없는 삶이지만 빚지고 사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그런 내가 조금 빚진다고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은 용감해져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