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신병에 걸린 오줌싸개

소설 [이상한 목공방 1]

by 온벼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제 이야기는 아이고요.^^


엣지를 데려온 지 1년이 넘었다. 부슬부슬하게 자란 털이 보기 싫고 털이 길면 피부병이 생기는 녀석이라 자주 미용을 해 주어야 한다. 녀석은 발톱을 깎거나 털을 깎을 때마다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댄다. 건방진 녀석. 그래도 예전보다는 공격성이 줄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녀석은 아직도 전주인을 기다리는 눈치다. 길을 가다가 중년 남자를 보면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가련한 마음이 들어 나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 준다.


방마다 안전문을 설치했다. 엣지는 유독 안방에 집착이 심하다. 안전문을 열어보겠다고 나무를 물어뜯고, 뛰어오르고, 모서리 벽지를 다 긁어놓는다. 베키는 고양이라 가볍게 뛰어넘지만, 녀석은 아무리 힘껏 뛰어도 역부족이다. 자신이 개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모양이다. 약이 바짝 올라 쉴 새 없이 도전한다. 집착도 병이다.


목공방으로 출근한 지 세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어라? 아래층 사람이네? 무슨 일이지?'

반상회를 하면서 전화번호를 주고받기는 했어도 연락하며 지낼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다.

"여보세요!"

"나 301호."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무슨 일이세요?"

"401호 출근한 거야?"

"네! 공방에 왔어요."

"빨리 집에 좀 와봐야 쓰겠는데?"

"왜요? 저희 집에 무슨 일이 있어요?"

"그 집 개가 말이야. 지금 몇 시간째 짖고 있어!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하도 짖어대서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걱정돼서 전화해 봤지!"

"아... 그래요?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는데?"

"아무튼! 빨리 와 봐! 얼마나 짖어대는지. 온 빌라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짖어대고 있다니깐. 얼른 와!"

"아... 알겠어요. 제가 얼른 가볼게요. 감사합니다!"

개가 짖는다고 항의 한번 한 적 없는 아래층 사람이다. 그러니 단순히 짖는다고 전화했을 리도 없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엣지는 안방에서 여전히 짖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이 녀석 사지가 멀쩡한 걸 보니 큰일은 아닌 것 같다. 어쩌다 안방에 들어가서는 나오지도 못하고 몇 시간째 꺼내달라며 짖고 있었다. 아래층 아주머니의 전화에 가슴이 철렁했었는데 큰일은 아니어서 안심했다. 마음이 놓인 것도 잠시다. 방안이 난장판이다.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후로도 엣지는 우리가 출근하고 나면 안전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가서는 나오지 못하고 짖어대다가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학원 강의가 끝나자 연달아 카톡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사진 한 장과 함께 올라온 메시지는 (나 가출할 거야)였다. 사진에는 난장판 된 안방에서 반가움과 난처함이 공존하는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엣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평소와는 좀 달랐다. 이것저것 작은 물건들을 꺼내 놓는 것은 물론이고 구석에 있던 홍삼 팩을 죄다 끄집어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이 지랄 맞은 놈이 꺼내는 것으로 모자라 홍삼 팩을 물어뜯어 흔들어 사방에 뿌린 것이다. 벽과 바닥 그리고 새하얀 침대 이불과 소파 위까지 진하게 달여진 홍삼액으로 온 방 안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불 위에는 누런 오줌 자국까지 보인다.


엣지가 몰래 안방에 들어가면서부터 거의 매일 이불 빨래를 돌려야 했다. 두툼한 이불은 하루 만에 마르지도 않는다. 사람은 둘만 사는 집이다. 사회성이 심하게 떨어지는 우리 부부는 손님을 집에서 재울 일은 없다. 나름 미니멀리즘까지 추구하는 나였기에 이불장이나 옷장을 단출하게 유지하고 있었건만 이제는 여분의 이불이 이불장으로는 모자라 옷장까지 가득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장 친구들이 들이닥쳐 재워달라 해도 잠자리 걱정은 없을 만큼 이불 부자가 된 것이다. 이게 다 정신병에 걸린 오줌싸개 덕분이다.


집에 돌아와 보니 세탁기는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고, 남편은 욕실에서 엣지를 씻기고 있었다. 다행이다. 남편이 가출이라도 했다면 내가 이 많은 것들을 혼자 다 치워야 할 뻔했다.

겉옷을 대충 벗어두고 이미 말라 끈적거리는 홍삼액을 걸레로 닦으면서 오늘도 분노의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내가 저놈에 개새끼를 집에 들이지 말아야 했는데. 아이고! 저 지랄 맞은 새끼를 도대체 언제까지 품어줘야 되는 거야? 하루이틀도 아니고... 아이고! 벽지까지 다 물든 거 봐! 미치고 환장하겠네!!!

아니! 사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이 지랄 발광을 하고 난리지???

아오~~~~!!! 돌아 버리겠네! 이 썅놈의 새끼!! 살다 살다 저렇게 지질맞은 놈은 처음 보네!"




오늘은 학원 강의가 두건이나 있는 날이다. 공방 일을 일찍 마치고, 학원 강의를 마쳤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집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유독 몸이 무겁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코를 찌르는 오줌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감기 때문인지 독한 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피곤하고 힘든 날이다. 이불 빨래를 돌릴 힘도 없다. 오늘은 남편이 야근하는 날이라 혼자 다 치워야 하는데 기운도 없다. 대충 옷만 갈아입고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있다가 잠들어 버렸다. 한참을 자다가 더 이상 지린내를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일어나 앉았다. 새벽 5시다. 젠장! 아침밥도 안 먹고 늦잠을 자는 내가 이불을 빨겠다고 새벽 5시에 일어나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몸이 아프니 인내심도 바닥이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다. 아무리 파양견이라지만 1년 넘도록 계속되는 정신병을 참아주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긋지긋하다. 그만큼 했으면 됐지! 왜 아직까지도 그 모양인 걸까? 하고 많은 곳 중에 꼭 안방 이불에 오줌을 싸는 이유는 또 뭔지. 그리고 지금은 새벽 5시다. 이 새벽에 내가 빨래를 돌린 적이 있던가?

피곤하지만 냄새 때문에 더 이상 잘 수가 없다. 물에 젖은 솜 같은 몸을 일으켜 이불을 바꾸고 빨래를 돌리려는데 분노가 점점 차올라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어섰다. 세탁기 안에 이불을 신경질적으로 던져 넣었다. 감기약에 취해 감정 조절 기능까지 고장이 난 나는 세탁기 버튼을 누르다 말고 결국 화를 터뜨리고 말았다.

"으악~~~~~~~!!!"

"이놈에 개! 새! 끼!!! 내가 왜! 이 새벽부터 빨래를 돌리고 있냐고!!!

엣지 이 개새끼 어디 갔어? 어? 내가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세탁실 슬리퍼 한쪽을 벗어 들고 자고 있던 엣지를 사정없이 때렸다. 놀란 베키는 후다닥 침대 밑으로 숨는다.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엣지는 이리저리 도망치려 했지만, 나는 구석까지 쫓아가 때렸다. 녀석은 벌벌 떨면서 오줌 싸고 똥까지 쌌다. 하나도 불쌍하지 않았다. 아직도 분노가 풀리지 않는다. 녀석의 목덜미를 거칠게 집어 들고 빌라 밖 1층으로 내려왔다. 출입문 밖으로 녀석을 던지듯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나가!! 이 새끼야!!! 나도 이제 지쳤어!! 도대체가 정이 안 가는 놈이야! 너는!

나가!! 나가서 새 주인을 찾든가 말든가 알아서 해!!

운 좋으면 멋모르는 착한 놈이 데려갈지도 모르지!

버려지는 건 다 네 탓이니까! 이제는 네가 알아서 살아!! 나도 할 만큼 했어!!"

엣지를 밖에 버려두고 씩씩거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급속 코스로 이불 빨래를 돌리고 거실에 앉아 TV를 틀었다. 아무도 없는 집이지만 음 소거를 누르고 멍하니 앉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거실에 TV 화면은 반짝거리고 조용한 새벽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하다. 하필 몸도 안 좋은 날 남편의 야근까지 걸릴 건 또 뭐람. 혼자 치우려니 더 화가 치밀었던 것 같다. 세탁 완료 메시지를 듣고 몸을 일으켰다. 빨리 이불을 널고 다시 자고 싶었다. 아직 해도 안 뜬 베란다에 빨래건조대를 펼치고 이불을 널었다. 세탁이 다 되기까지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나 보다. 얼굴이 벌겋도록 달아올랐던 분노가 이제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구석에 몰려 무서워 벌벌 떨던 엣지 모습이 떠오른다. 덩그러니 버려져 오도 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며 주변을 살피던 눈빛까지 떠오른다. 잠을 잘 수가 없다.

"에이 씨! 내가 너무 했나? 내쫓을 것까지는 없었는데. 아오! 짜증 나!!"

벌떡 일어나 그대로 다시 빌라 1층으로 내려갔다. 엣지는 쪼그리고 출입문 앞에 앉아 있었다. 저놈의 화상을 들여? 말어? 문을 열기 전 잠시 고민에 잠겼다. 한참을 째려보다 출입문을 열었다.

"야 인마! 너는 나가라는데 왜 안 가고 거기 있어?"

엉덩이를 손으로 세게 치자 깜짝 놀라며 소심하게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에이그... 이놈에 새끼! 그렇게 맞고도 뭐가 좋다고 꼬리를 흔드냐? 빨리 들어와! 집에 가게!"

집에 가자는 소리는 잘도 알아듣는다. 엣지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벌떡 일어나 따라온다.

데리고 들어오긴 했지만, 미운 마음이 가시지는 않는다. 아는 척도 않고 안방 안전문을 닫고 들어가 누웠다. 엣지가 들여보네 달라며 낑낑거린다.

"아... 꼴도 보기 싫다!"




잠금장치를 어떻게 여는지 알아내기 위해 홈캠을 안방 앞에 설치해 두었다. 범인은 베키였다. 베키는 안전문을 그냥 뛰어넘지 않고 일부러 위에 올라앉았다가 힘차게 걷어차며 내려갔다. 그 충격에 잠금장치가 풀리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기다리던 엣지가 안방으로 들어간다.

"어머나! 베키가 그런 거였어? 아니! 베키는 충분히 넘아갈 수 있는 게 왜 그랬지?"

베키가 정말 엣지에게 문을 열어 준 걸까? 둘 사이가 그리 좋았던가? 시끄럽게 짖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열어준 걸까? 설마 엣지가 혼나기를 바라면서 열어준 것은 아닐 테고.


사방으로 날리는 장모종인 베키의 털을 감당할 수 없어 일 년에 두 번 털갈이 시기에 맞춰 털을 밀어준다. 베키는 그래서 나를 싫어한다. 이 녀석이 내가 미워서 엣지를 이용하는 걸까? 말이 통하질 않으니, 녀석들의 속내를 알 방법은 없다.

뒷발질의 충격으로도 열리지 않도록 나무젓가락을 얇게 깎아 안전고리 사이 틈에 끼웠다. 빡빡하게 만들어 놓으니, 이제는 충격에도 열리지 않을 것 같다.

저녁에 돌아와 보니 안전문도, 엣지도, 안방도 그대로다. 녹화된 홈캠을 돌려보았다. 오늘도 베키는 뒷발질로 안전문 열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문이 열리지 않자, 안전문 위에 올라앉아서는 앞발로 잠금장치를 열어 보겠다며 살살 건드린다.

"우와!! 베키 왜 이렇게 똑똑해? 일부러 그런 거 확실하네? 저걸 올리면 열린다는 걸 또 어떻게 알았지?

저 새침데기가 엣지를 위해서 문을 열어 주는 건 아닐 테고... 도대체 왜 문을 열려고 하는 거지?"

의도적으로 열려고 한 것은 알겠으나 베키가 왜 문을 열려고 하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이후로 안전문은 잠겨있었지만 어딘가에서 가끔 오줌 냄새가 풍겨올 때가 있다. 냄새를 찾다 보면 베개나 소파 쿠션에서 나기도 한다. 나는 오줌 빨래를 돌리면서 파양 된 개를 다시는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작가의 말 ---

12회 출판프로젝트 응모를 준비 중입니다.
10월 말쯤 마감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전까지 (이상한 목공방 1권)을 끝낼 예정입니다.
50%의 완성으로 입상이 가능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10개만 써도 자격은 된다니 도전해 볼 만합니다. 12월 말의 발표까지는 그래도 70%는 완성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엄마 없는 밤)도 다시 퇴고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가능할까요? ㅜㅜ 그래도 해 보렵니다.
이미 여러 번 퇴고를 거친 (엄마 없는 밤)의 퇴고가 지겨울 만도 한데 오랜만이라고 또 괜히 설렙니다. ^---^ ㅎㅎ

이번에 떨어지면 더 여유를 두고 천천히 퇴고를 진행해 봐야겠습니다.

에세이, 소설 부문에 총 4권을 응모합니다.

구독자분들의 수상을 기대하면서 응모 준비하시는 모든 작가님들을 응원합니다~!!!
〜( ̄▽ ̄〜) (〜 ̄▽ ̄)〜

--------------------------------------------------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ㅠㅠ
아침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다가 약 먹고 일어나 글 쓰는 걸 보고 남편이 그러더군요.
"야! 자기는 아프다면서 어떻게 글이 써지냐? 천직이네?!"
"응... 너~무 바빠서 그래요."
그래요. 글 쓰기는 코로나에 걸려도 가능하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
keyword
이전 08화장남 콤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