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벼리 Jul 25. 2024

아빠의 답십리 목공소

소설 [이상한 목공방 1]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제 이야기는 아이고요.^^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은평구 언덕 달동네에 살았다. 아빠가 일하는 답십리 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거리였다. 나는 야무진 아이였다. 공부를 썩 잘하는 못했지만 내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고, 어른들에게도 할 말은 다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답십리까지 반찬 배달 심부름을 다녔다. 엄마가 싸준 반찬 배낭을 메고 정류장에서 157번 버스를 타면 답십리 종점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버스로 한 시간이면 꽤 먼 거리였지만 갈아타지 않고 종점까지 가는 일은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빠의 목공소는 답십리 고가구 골목의 구석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 반지하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팔을 벌리면 벽이 손에 닿을 정도로 좁았다.


 입구로 들어서면 재단을 위해 쌓아둔 나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재단하는 기계 옆으로 자투리 나무와 톱밥들이 모래성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고, 대충 만든 공구 정리대에는 크고 작은 공구들을 걸려 있었다. 완성된 가구들은 한쪽 벽을 따라 줄 서 있었다. 가구 부속품을 넣는 서랍장과 공구 정리대도 모두 아빠의 솜씨였다.


 목공소 안에는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방과 손바닥만 한 부엌과 화장실이 있었다. 부엌에는 연탄보일러가 연결된 낮은 조리대가 있었다. 나지막한 수도꼭지가 있었고, 빨간 고무 대야에 가득한 물 위로 목이 긴 초록 바가지가 둥둥 떠다녔다. 화장실은 바닥보다 반층이 높았다.


 작업실 한쪽에는 화목난로가 있었다. 자투리 나무로 난로를 피우면 난로 주변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후끈했지만 조금만 멀어져도 손 발이 시렸다.


 나무를 재단하는 날이면 천정부터 바닥까지 온통 희뿌연 먼지로 가득했다. 구석구석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가 눈처럼 쌓였다. 창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여름이면 커다란 대형 선풍기가 환풍기를 대신하기도 했다.


 아빠는 보호장비 하나 없이 주름지고 낡은 작업복만 입고 일을 했다. 먼지만 툴툴 털어 벽에 걸어 두었다가 다음 날이면 또 같은 옷을 입고 일을 했다.


 바닥에 앉아 작업을 하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왜 바닥에서 일을 해? 안 불편해?"

"불편하지!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아빠가 일하느라 온몸이 안 아픈 데가 하나도 없다."

"그러면... 의자에 앉아서 하면 되잖아!"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의자에 앉아서 할 수가 없어."

"그러면... 저기 위에다 올려놓고 하면 허리랑 다리가 덜 아플 텐데?"

"거기는 좁아서 일하기 힘들어. 거기서 하나 여기서 하나 힘든 건 마찬가진데. 아빠는 바닥이 더 편해. 바닥에서 일하면 한꺼번에 더 많이 만들 수 있어."


 아빠는 못이나 드릴은 사용하지 않고 나무로만 조립하는 짜맞춤 가구를 만들고 있었다. 오차 없이 정확하게 재단해서 끼워 맞추는 짜맞춤 가구는 제작 기간이 길었다.


 아빠는 힘들게 만든 가구들을 판매상에게 싼값에 넘겼다. 판매상은 값을 후려친 것으로도 모자라 한 술 더 떠 어음으로 결제하기도 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납품 날짜를 맞추기 위해 몇 날 며칠 기계처럼 일을 했다.


 아빠는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우리 집은 쭈욱 가난했다.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일을 마치면 머리까지 뽀얗게 뒤집어쓴 먼지를 씻어내고 목공소 작은 방에 혼자 앉아 술을 마셨다. 술상은 엄마가 담아다 준 장아찌와 소주 한 병이 전부였다. 피곤에 지쳐 소주 한 병이면 금세 잠들었다. 술도 못하면서 어쩜 그렇게 매일같이 술인지...


 가끔 일이 없을 때면 집으로 들어오는데 집에 오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밤 낮 술만 마셨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죽일까 살릴까 매번 고민했다. 답십리 목수 나동일이 술고래인 것은 온 동네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고, 술에 취해 자빠져 머리를 박았다고 해도 아무도 의심치 않을 것이다.

 엄마는 술에 취해 안방에 널브러진 아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인간을 죽였다가는 당장 새끼들이랑 먹고살 것도 걱정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


 죽이네 살리네 말은 그리해도 엄마는 아빠를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결코 고분고분하거나 당하고 살 유선옥 여사는 아니었다. 엄마는 아빠가 깨어나자 미리 끓여 두었던 해장국과 밥 한 그릇을 담아 방으로 들어가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남편이 해장국을 들이켜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 끝까지 지켜본 유선옥 여사는 남편이 국그릇을 내려놓자마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득 담아 욕을 퍼부어 댔다. 엄마의 화풀이를 생각보다 시시하게 끝이 났다. 뭔가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며 긴장했던 우리들은 안도하면서도 왠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해진 것만 같았다.



 가구를 만들다 보면 사람의 손이 필요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혼자 일을 했다. 여럿이 할 일을 혼자 하려면 힘들었을 텐데 사회성이 많이 부족했던 아빠는 혼자 일하는 어려움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어려움이 더 컸던 것이다. 물론 여러 사람을 벌어 먹일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정 일손이 필요할 때면 엄마를 불렀고 나중에는 아들들의 손을 빌리기도 했다.


 재단하는 날이면 아빠는 아들들을 불렀다. '다른 사람을 비싸게 주고 부르느니 애들에게 용돈 몇 푼 쥐어주면 될 일이고, 애들은 또 용돈벌이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빠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재단은 날카로운 톱날이 돌아가는 위험한 작업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차 실수 했다가는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느리고 말귀 못 알아듣는 아들들이 답답했던 아빠는 어마어마한 욕 세례를 퍼부었다. 특히 큰아들에 더 혹독했다. 다 큰 녀석이 힘도 못쓰고 말 귀도 못 알아듣는다. 시킨 대로 움직이지 않고 머뭇거리니 속이 터진다. 아들을 믿을 수 없으니 신경은 더 날카로워질 수밖에...

 대답도 제때 시원하게 하는 법이 없는 큰아들의 태도는 답답한 마음에 불까지 지른다.

 눈치 빠른 남동생은 오빠보다는 덜 혼났지만 그렇다고 욕세례를 피할 수는 없었다. 아들들은 아빠를 더 무서워하게 되었고, 더불어 목공소와 목공도 싫어하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니 아빠가 하는 작업이 가끔 재미있어 보일 때가 있었다.

소나무 가구를 만들 때였다. 아빠는 가스통이 연결된 토치에 불을 붙여 나무를 태우고 있었다.

"아빠! 왜 나무를 태워?"

"어! 이걸 이렇게 살짝 태워서 갈아내고 마감칠을 하면 결이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거야."

불길이 지나간 자리는 결이 진해지고 그 위를 사포로 갈면 나이테가 도드라졌다. 마냥 신기했다. 나도 해 보고 싶었다.

"아빠 내가 도와줄까?"

"네가 인마! 뭘 도와준다고 그래? 안돼! 위험해!"

"아~ 이~~ 내가 도와줄게~~ 나도 해보고 싶단 말이야~~~ 한 번만 해 보면 안 될까? 어? 한 번만~~~"

 다른 것은 몰라도 고집은 내가 아빠를 닮았다. 아빠는 평소에는 없던 귀여움까지 갖춘 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토치에 넘겼다. 빠른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태우며 지나가야 하는데 나름 신중했던 나의 손놀림이 너무 느렸던 모양이다. 나무가 순식간에 타 들어갔다. 목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야! 네가 이렇게 태워놓으면 아빠가 일이 더 많아지잖아! 아빠가 더 힘들어지니까 하지 마 인마!"

말은 그리했지만 욕을 하거나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태워먹을 것을 예상하고도 토치를 넘겼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빠는 까맣게 태워먹은 자리를 갈아내고 다시 작업을 했다.




오빠는 어릴 적부터 아빠를 무서워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빠 눈에 나약하고 어리숙한 큰아들이 성에 찰리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빠는 별스럽지도 않았던 아빠와 내 사이를 질투하기도 했다.

"지아 너는 인마! 아빠가 예뻐했잖아!"

"아빠가 뭘 나를 예뻐해? 나는 특별히 그런 거 못 느꼈는데?"

"야! 나는 아빠가 너한테 욕하거나 혼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야! 안 혼내면 예뻐한 거냐?"

"어! 예뻐한 거지! 나는 맨날 혼나고, 조금만 잘못해도 두들겨 맞고 그랬는데..."

"그건 네가 못나서 그런 거고~"

"말 다했냐? 못나면 두들겨 맞아도 된다는 거야?"

"음... 그건 좀 아닌가 보다... 그래도 아빠가 나를 예뻐했다는 말은 좀 아닌 것 같은데?"

"엄청 예뻐한 건 아니더라도 그래도 너는 딸이라고 예뻐한 거야~ 인마!"

"몰라~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빠가 나를 예뻐했는지도 모르겠고...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이 화목했다거나 따뜻했던 분위기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그렇지..."


 아빠는 장남 콤플렉스가 심했다. 자신의 어깨가 무거웠던 것만큼 큰아들에 대한 기대도 컸던 것일까? 아빠는 유독 큰아들에게 혹독했다.



작가의 말---

너무 여유를 부렸나 봅니다~~ 쓰다 보니 괜히 여유를 부렸구나!  ㅜ___ㅜ  으......
한 시간이나 늦게 올렸네요. ㅎ


이전 06화 목수 아빠와 목수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