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벼리 Jul 18. 2024

목수 아빠와 목수 딸

소설 [이상한 목공방 1]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제 이야기는 아이고요.^^


 봄이다. 공방 뒷골목 오래된 벚나무 길을 따라 출근했다. 나무마다 꽃봉오리가 가득하다. 머지않아 연한 분홍빛으로 가득 찰 것을 생각하니 벌써 설렌다.


 따뜻해진 날씨에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저녁때는 더 그렇다.


 어두워진 골목길에 가로등이 일제히 켜졌다. 공방 앞마당도 환해졌다. 한 남자가 공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다부진 체격에 60대 후반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아직 남편은 퇴근 전인데 낯선 남자가 레이저로 공방을 스캔하고 있으니 문을 잠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문을 열고 그가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한발 늦었다. 어쩔 수 없다. 최대한 상냥하고 간결하게 대답하고 빨리 내 보내는 수밖에...

"옆집 사는 사람인데 구경 왔어요. 들어가도 되나요?"

동네 사람이구나! 이 동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이미 들어와 놓고는 들어가도 되냐고 자꾸 묻는다. 들어온 사람을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네! 어서 오세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남자의 행동을 살폈다.

"나무를 만지시는구나! 목공소예요?"

"아니요. 목공방이에요. 목공소랑은 좀 다르죠."

"그런가요? 요즘은 취미로 이렇게 작은 작업실 차려서 하시는 분들이 많죠?"

 짧게 대답하고 얼른 내 보내려 했건만. 취미라는 말 한마디에 괜히 기분이 상해서는 갑자기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좋아서 하는 거지만 취미로 하는 건 아니고요. 주문 제작도 받고, 수강생도 받고, 시간 날 때면 개인 작업도 하고 그래요.

요즘은 목공방 말고도 취미용 클래스로 수강생 받아서 운영하는 공방들이 많은데.

저는 커리큘럼을 따로 정하지는 않고 수강생이 만들고 싶어 하는 거 1:1 수업으로 만 진행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1:1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고 아직 수강생은 없다.


"옛날 우리 때랑은 많이 다르네... 최신 장비도 많고...

옛날 목수들은 먼지 날리는 공장에서 톱밥을 수북이 쌓아놓고 작업했는데...

음... 여기는 아기자기한 것이. 이쁘게 잘 꾸며 놓으셨네!

나는 고가구 만들던 사람이에요. 지금은 은퇴했고."

고가구 목수였다는 말에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살짝 느슨해졌다.


"아~~~ 그러세요? 어쩐지... 말씀하시는 게 좀 다르다 했어요. 저희 아빠도 고가구 하시는데."

남자가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아이고~ 그래요?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

"저희 아빠는 사람들하고 교류가 별로 없으셔서... 말씀드려도 잘 모르실 거예요."

"에이~ 고가구 하는 사람들끼리는 웬만해서는 다 알아요."

"답십리에서 오래 계셨었는데 지금은 벽제로 내려가셨어요."

"나도 답십리에서 일했어요. 아이고~ 반갑네!"

다 아는 사이라는 말에 갑자기 지인이라도 된 듯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빠 성함은 (나) 자 (동) 자 (일) 자 되세요."

"응~~~ 그... 키 작고 마르신... 그 형님인가? 몇 년 전에 멀리 내려가서 일하신다는... 그분?"

"맞아요! 저희 아빠 키 작고 마르셨어요. 어머나! 말도 안 돼! 저희 아빠를 어떻게 아세요?"

"교류는 없어도 고가구 하는 사람들끼리는 건너 건너 다 알아요."

"그래요? 와~~ 신기해라!"

"아버지는 아직도 일 하시나? 정정하신가 보네?"

"나이 드시니까 몸도 안 좋으시고. 이제 좀 쉬셔야 되는데. 고집이 보통이 아니셔서... 혼자 멀리 내려가서는 그러고 계세요."

"요즘은 고가구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밥벌이도 안되고, 고가구 하는 사람들도 없고, 우리 때는 많았는데... 아버지가 목수인데 따님도 목수시네? 아버지를 닮았구나!"

자신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이미 확신한 듯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에게 차마 아니라는 말은 못 하고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

 남자의 말에는 '네가 목공을 하는 이유는 아빠를 닮았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이 숨어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왜 목수가 됐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아빠가 목수라고 대답을 한다.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이내 수긍을 하고 왜라는 질문은 더 이상 던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너는 아빠를 닮아 목공을 하는 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내가 목수가 된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다.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고,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이너로 수년간 일을 했는데, 일본 유학을 가서 시각디자인을 배워왔다. 그런 내가 목공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말이 길어진다. 짧고 굵은 대답을 원하는 상대방은 괜히 물어봤다고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목수가 된 이유를 설명하자니 주절주절 길어지는 말들이 변명 같아서 싫다. 그래서 생각해 낸 대답이 아빠가 목수라는 대답이었다. 그리 답변을 하면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은 듯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으니 버튼만 누르면 덜컹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나오는 자판기 음료처럼 나는 대답을 툭 뱉어 낸다.


 나는 외모도 성격도 아빠를 닮지 않았다. 굳이 엄마와 아빠 둘 중 누굴 닮았는지를 가려야 한다면 엄마 쪽이 더 가깝다고 해야 옳다. 우선 내 단단한 골격을 보면 마르고 왜소한 아빠의 체격을 닮은 것 같지는 않다. 불같은 성질머리는 엄마나 아빠나 막상막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한수 위다. 봐줬으면 봐줬지 절대 지지는 않은 근성도 엄마를 닮은 것이 확실하다. 손재주가 좋은 것을 보면 아빠를 닮았나? 싶다가도 얼굴 생김새는 누구 하나 닮은 것 같지 않으니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나도 아리송하다. 사회성이 부족한 것은 자라온 환경 탓이라고 해 두자.


 어릴 적 아빠의 직업이 멋져 보였다거나, 나도 커서 아빠처럼 목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해 본 적도 없다. 오히려 왜 저러고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직접 팔면 더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을 판매상에게 헐값으로 넘기는 아빠가 어린 내 눈에도 답답해 보였으니 목공이 좋아 보였을 리 없다.


 나는 왜 목수가 되었는지 속 시원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목공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우지 않아도 척척 해내는 천재성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물론 천재성 까지는 아니더라도 디자인 감각이 남들보다 우월하고 뭐든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금손을 타고난 것은 사실이다.

 목수는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다. 아빠를 통해서 알게 된 진리는 이미 뼈에 새겨졌다. 그러니 돈을 벌기 위해서 선택한 것도 아니다.

 그저 좋아서 하는 것이다. 나는 나무가 좋다. 나무를 만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혼자 조용히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들을 좋아한다. 목공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어 성취감이 크다.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인을 하면서 배운 프로그램들도 목공 작업을 할 때 유리하게 쓰인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결국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나는 목공을 한다.


 이렇게 긴 이유를 매번 설명하는 일은 꽤나 귀찮은 일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누가 "왜 목수가 됐어요?"라고 물으면 "아빠가 목수예요."라고 대답을 한다.




작가의 말----

이제부터 과거 회상이 추가됩니다. 오늘은 그 연결 고리를 썼네요.
약간의 아픔이 있어도 지아의 성격처럼 특별한 동요 없이 덤덤하게 흘려보낼 생각입니다.

기존에 에세이로 써왔던 글에 비하면 굉장히 심심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이번 소설의 콘셉트는 질리지 않는 심심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 (재미도 있으면 좋고요~ ^^)

이번에 지아 아빠의 목공소 이야기까지 썼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반으로 뚝 잘라 버렸습니다.

덕분에 다음 주는 작업이 쉬워질 것 같습니다~ 아이고~ 좋아라~~~

아이들 방학입니다. ㅠ.ㅠ
길고 긴 방학에 지칠 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이전 05화 목공방 첫 번째 고양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