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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Jul 11. 2024

목공방 첫 번째 고양이

소설 [이상한 목공방 1]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제 이야기는 아니고요^^


 월요일 오후 2시. 인터넷 라디오 컬투쇼를 들으며 바닥에 쌓인 먼지를 쓸고 있었다. 백발에 키 작은 할머니가 공방 밖에서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여기 뭐 하는 데예요?"

"목공방이요."

"아! 그래요? 그러면... 혹시... 접시 받침대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접시 받침대요? 접시 진열할 때 세워 두는 받침이요?"

"응! 진열한때 쓰는 거 그런 거! 우리 딸이 프랑스 여행 갔다가 엄마 준다고 찻잔이랑 커다란 접시를 하나 사 왔는데 아까워서 쓸 수가 있어야지~ 찬장에 이쁘게 진열해 놓고 싶은데..."

할머니는 공방을 휘 둘러보더니 진열대 위 도마 받침대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이런 거 하나 있으면 돼요. 이거 접시 받침대 아니에요?"

"아니요. 그건 도마 받침대예요."

"뭐가 좀 다른가? 그럼 접시 받침대는 없어요?"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응! 목공방이니까 만들 수 있구나! 그럼 돈을 얼마에 줘야 돼요?"

"글쎄요...... 접시 받침대는 아직 안 만들어 봤는데... 재료가 얼마 안들 것 같으니까... 싸게 해 드릴게요."

"그래서 얼마 주면 돼요?"

"음...... 10,000원? 아니다. 동네 분이시니까 8,000원에 해 드릴게요."

"얼레? 그렇게 싸요? 잘됐네! 그럼 하나만 만들어 줘 봐요!"

"집이 어디세요?"

"응! 바로 여기 뒷골목에 동아빌라 알죠? 거기 3층에 살아요."

"언제까지 만들어 드리면 돼요?"

"내일? 아니다... 내일은 바쁘니까. 모레 저녁때 다시 올게요."

"네! 수요일 저녁때까지 만들어 놓을게요."

할머니는 접시 받침대를 주문하고 사라졌다. 공방으로 찾아온 첫 번째 손님이었다. 지인들을 위한 물건이나 내가 쓰려고 만든 물건들은 많았지만 주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첫 주문에 가슴이 설레었다. 하지만 실수를 이내 깨달았다.

"미쳤네... 근데 내가 왜 8,000원이라고 했지? 아... 미친다... 갑자기 들어와서 물어보니까 당황해서 계산을 제대로 못했네... 나무값만 계산한 거지."

"첫 주문이라고 기분 좋았는데... 아이고~ 이런!"

"그래! 그래도 자투리 나무로 만들면 되니까... 크기도 작고... 금방 뚝딱 만들면 되겠지?"

앞에서는 말도 못 하고 멀어져 점이 되어가는 할머니의 뒤통수에다 대고 혼잣말로 또 속풀이를 했다.

"할머니~ 첫 주문이라서 싸게 드리는 거예요~ 어디 가서 주문제작 접시 받침대를 8,000원에 했다고 절대 소문내시면 안 돼요!! 그리고! 싸게 해 드렸으니까~ 여기! 목공방 있다고! 소문 많~ 이 내주셔야 돼요~"



다음날 아침 커다란 접시를 하나 들고 공방으로 출근했다. 접시를 대고 크기를 가늠해 도안을 스케치했다. 간단한 작업이지만 첫 주문이라고 쓸데없이 의욕이 넘친다. 기왕이면 정성스럽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 주문받으면 이렇게 배우면서 작업을 하는 거지! 오늘은 트리머를 써 봐야겠다."

조각 나무에 나사를 박아 조립하면 금방 끝날 것을 조금 더 큰 나무를 꺼내와 홈 파기 트리머로 각진 부분을 직접 파보기로 했다.


 트리머에 먼지를 흡입해 주는 집진기를 연결하려는데... 이런! 집진기와 연결하는 트리머 호스의 크기가 맞지 않는다. 연결이 매끄럽지 않으니 자꾸 바람이 샌다. 집진기 없이 작업하려니 톱밥이 마구 날린다. 어쩔 수 없이 집진기 호스를 억지로 끼우고 투명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값비싼 장비에 박스 테이프 떡칠이라니... 영 보기 싫어 짜증 나지만 눈 질끈 감고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스렸다.

내가 모르고 주문한 것을 누굴 탓하겠는가? 오늘의 어설픔을 누구에게 들킨 것도 아니고, 들켰다 해도 토다는 사람 하나 없을 텐데... 괜히 혼자 자존심만 상해서 또 긴 숨을 내쉬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후~~~ 그래! 처음에는 다 그렇지 뭐! 초보의 어설픔은 참고 견뎌야지 고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거야!"


 몇 시간째 트리머와 씨름 중이다. 직선으로 파야 하는데 자꾸 옆으로 비뚤어진다. 뭘 잘못하고 있는 건가? 괜히 홈파기를 한 건가?

테이블쏘로 홈파기를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거침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톱날은 사고의 위험이 크다. 조그만 나무를 자를 때면 더욱 그렇다. 행여나 다칠까 봐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숨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작업을 하다 보니 진땀이 다 난다.

재단을 마치고 목공풀로 붙인 뒤 접시를 올려 봤다. 어라? 앞부분이 살짝 뜬다. 뒷받침이 작은 건가? 무게 중심이 맞지 않는 건가? 뭐가 잘못된 거지? 종일 씨름을 했건만 어처구니없는 결과다. 큰일 났다. 할머니가 내일 저녁때 가지러 온다고 했는데... 학원에 강의를 갈 시간이다. 답답한 마음은 일단 접어두고 대충 정리하고 급하게 학원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도안을 변경해서 스케치하고 어제 했던 작업을 다시 해 보기로 했다.

테이블 쏘 톱날이 밤사이 커진 것도 아닐 텐데 오늘따라 유난히 크고 튼튼해 보인다. 보호장비를 철저히 갖춰야겠다. 귀마개를 하고, 안전 고글을 쓰고, 공업용 마스크를 끼고, 작업용 두꺼운 앞치마를 두 겹 두르고, 팔 토시에 장갑까지 무장한 뒤 조심스럽게 재단을 시작했다. 테이블 쏘는 톱날이 제일 무섭지만 작은 나무를 재단할 때면 잘린 나무가 갑자기 튀어 오르는 사고가 많다. 그러니 조심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드디어 재단을 마쳤다. 사포로 샌딩을 하고 조립을 하니 벌써 오후 3시다. 점심도 못 먹고 밥값도 안 나오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 속이 부글거린다. 어느새 나는 사바나의 코뿔소가 되어 뜨거운 콧바람을 연신 뿜고 있는 중이다.


 마감 칠 하기 전에 접시를 조심스레 올려 보았다. 어제와는 다르게 앞이 뜨지도 않고 안정적이다. 다행이다.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니 가슴 한가운데 걸려 답답했던 덩어리가 쑤욱 내려가며 속이 시원해졌다.

"아... 드디어 해냈어! 어머! 깔끔하고 예쁘기까지 하네! 이 와중에 나는 또 이렇게 심플하고 깔끔하게 잘 만든 거지..."

"아~~ 이놈에 타고난 능력을 감출 수가 없네?"

흐뭇함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공방 마크 불도장을 예쁘게 찍고 마감칠까지 마쳤다. 잠깐의 만족모드를 끝내고 곧바로 현실모드로 돌아왔다.

"이걸 8,000원에 판다고? 아... 내가 미쳤지... 며칠 동안 이거 하나 만들겠다고... 그 고생을 했나?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8,000원이면 공임비도 안 나오는데? 더 달라고 해야 되나? 아...... 짜증 나!"

"에잇! 쯧! 이미 8,000원이라고 말을 했는데 어떻게 해 그럼?"

"에이~ 모르겠다! 배우는 과정이니까... 투자했다고 치자!"

3일 동안 기계와 씨름하며 만든 첫 번째 주문제작 접시 받침대는 그렇게 8,000원에 할머니 품에 안겼다.




 작업을 하다 보면 공방 앞을 지나다니는 고양이들과 눈이 자주 마주친다. 먹을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녀석들이다. 안쓰러움에 밥을 챙겨 주기 시작한 것이 공방 앞은 어느새 고양이 급식소가 되어버렸다. 많은 고양이들이 공방 급식소에서 배를 채우고 간다.


 길고양이들은 밥을 먹을 때 사람이 지나다니면 불안해한다. 밥을 먹다가도 사람들이 보이면 숨느라 바쁘다. 먹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공격에 대비하기 어렵다. 본능적으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입간판을 만들어 안쪽에 사료와 물을 넣어 주었더니 한결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작업하다 밖을 내다보니 한 녀석이 공방 앞 입구에 앉아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 어제 왔던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 녀석이다.

할머니는 내가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 주는 것을 보고 동지라도 만난 듯 반가워했다. 자신도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고, 이 동네에는 길고양이들이 많고,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많다며 문 앞에 서서 한참 반가움을 표현하고 갔다. 할머니는 자기가 밥을 주는 녀석인데 이렇게 자기를 따라다닌다고 자랑했다. 녀석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얌전히 앉아 할머니를 기다렸다.

 길 고양이들은 밥 주는 사람을 기억하고 배고플 때면 찾아간다. 대부분의 녀석들은 밥만 먹고 후다닥 사라지는데 이 녀석은 할머니를 따라다니더니 이제는 공방 앞에 앉아 나를 관찰 중이다. 녀석이 신기해 나도 덩달아 녀석을 관찰했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다음날도 녀석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고 싶은 건가? 문을 열고 가만히 기다렸더니 슬며시 안으로 들어온다. 밖이 많이 추웠던 모양이다. 조심스레 다가가 쓰다듬었더니 피하지도 않는다.

"집에서 키우던 녀석인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네?"

"누가 또 너를 버렸구나! 에이그~ 나쁜 놈의 새끼.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키우기는 왜 키워?"

"예쁘게 생겼네? 너는 왜 안 가고 나를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

"밖이 추우니까 여기 들어오고 싶었어? 겨울이 이렇게 추운데... 길에서 사느라 너도 고생이 많다!"

"아! 전기방석 있었지! 그거 깔아 줄까?"

 녀석은 전기방석의 따뜻함에 취해 이내 늘어져 잠들었다. 아직 생후 1년도 안 된 것 같은 작은 체구다. 황토색, 검은색, 흰색이 섞인 삼색이 고양이인데 꽤 귀엽게 생겼다. 늘어지게 한참을 자고 일어난 녀석은 문 앞에 앉아 또 나를 쳐다본다.

"나가고 싶어? 문 열어 줄까?"

문을 열어 줬더니 얼른 뛰어 나갔다.


 녀석은 이제 매일 아침 공방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주인 없는 길고양이지만 매일 나를 찾아오니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덩치가 작은 녀석에게 '꼬맹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병원에 데려가 중성화 수술도 시켰다. 꼬맹이는 암컷이었다. 회복하는 동안 공방 한편에 철장을 설치하고 방을 만들어 보살펴 주었다. 몸이 다 회복되어서도 꼬맹이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공방 안에서 놀았다.


 봄이 되고 날이 따뜻해졌다. 문을 열어 놓으면 밖에서 한참 놀다가 배가 고프면 들어온다. 또 저녁때가 되면 공방으로 들어와 잠을 잔다. 꼬맹이는 공방의 첫 번째 고양이가 되었다. 가끔은 신나게 노느라 밤에도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녀석을 찾아다니느라 퇴근이 늦어진다.

조그만 올리브 나무 조각을 잘라 꼬맹이라는 이름과 연락처를 새기고 뒷면에는 공방 불도장을 찍어 목에 걸어 주었다. 목걸이라도 해줘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꼬맹이는 이 동네의 인기 고양이가 되었다.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길고양이가 신기했던 사람들은 이름표를 보고 꼬맹이를 부르며 따라다니다 공방까지 따라 들어왔다.

"여긴 뭐 하는 데예요?"

"목공방이에요."

"아...... 목공방... 목공방이구나! 꼬맹이 어디 갔지? 꼬맹이가 여기 살아요?"

"네! 공방에서 돌보는 고양이예요."

"오~ 그렇구나! 분명히 길고양이 같은데 목걸이를 하고 다녀서 궁금했어요!"

"원래 길고양이였는데 공방에 들어와 살다 보니까 공방 고양이가 된 거예요."

"아! 그렇구나.... 신기하네... 목공방도 처음 보는데 안에 구경 좀 해도 돼요?"

"네! 구경하세요!"

꼬맹이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마치 시계를 든 토끼라도 발견한 듯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따라다니다 이상한 나라에 발을 들인 앨리스처럼 공방으로 불쑥 들어와서는 신기하다며 구경을 하다가 나간다.


 햇볕이 따뜻할 때면 꼬맹이는 공방 앞마당에서 일광욕을 즐긴다. 바닥에서 뒹구는 꼬맹이를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 쓰다듬는다. 꼬맹이의 팬들은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녀석이다. 어느 날은 막대기를 물고 와 폴짝거리며 장난치고, 어느 날은 참새를, 또 어느 날은 쥐를 물고 와 공방 문 앞에 가져다 놓기도 한다.


어쩌다 이렇게 귀여운 녀석에 내게 온 걸까?


실제 사진을 바탕으로 만든  AI 이미지입니다.


작가의 말-------

목공방의 고양이 1호 귀염둥이 꼬맹이 이야기입니다.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 없던 지아인데 조용한 지아의 목공방으로 꼬맹이는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고양이들의 이야기지만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고양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고양이들을 돌보는 정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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