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찐한 F엄마에게 아빠 딸이라 T이고 싶은 딸이 말했다 "돈을 아무도 안 안 벌고 있잖아..."
아이들 뮤지컬 수업을 마치고 잠시 쉬다가 타겟으로 향했다.
타겟은 여자아이들 옷과 수영복이 꽤 괜찮은 편이다. 종류도 많고 세일도 자주 해서 작년에도 몇 벌을 구매했었다. 때문에 이번에 여행 짐을 쌀 때 사게 될 것을 감안해서 딸아이 옷은 좀 부족하게 챙겼다. 작년에 수영복을 일부러 딱 맞게 사서 바로 조카에게 물려줬기 때문에 딸랑 긴팔 래시가드 하나만 챙겨 왔다.
우리가 도착했던 지난 주만 해도 수영복이 40% 세일을 했는데 싹 들어갔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둘러보다가 클리어런스 코너에서 몇 개 건지고 있는데 딸이 수영복을 골라왔다.
"이거 세일할 때 사줄게."
딸은 짠순이라 '세일', '2+1', '1+1' 이런 걸 참 좋아한다. 편의점에서도 뭐 하나 사주려고 하면 꼭 1+1을 찾아서 산다. 이런 아이에게 내가 몹쓸 말을 한 것 같다. 예쁜 옷들을 나름 득템 해서 기분 좋게 잼 하나 사서 나가려고 식품 코너로 옮기는데 나에게 넌지시 묻는다. 돈을 아무도 안 버는데 여기서 계속 쓰기만 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경제 관련 책은 동화도 안 보는 아이라서 만 열 살, 4학년 아이에게는 아주 큰 걱정거리로 박히고 말았나 보다. 괜찮아. 나의 한 마디가 충분하지 않았는지 땅콩 스프레드를 고르고 있는 내 옆에서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 여행할 만큼은 아빠가 돈을 많이 모았어."
"그럼 돌아가면 돈 없어서 어떡해?"
"아니이. 우리가 모은 돈을 여행에 다 쓰는 게 아니라고오..."
세일 품목 앞에서 내가 넘 화색이 돌았던 게냐... 에미가 잘못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 아이들이 뮤지컬 캠프에 간 사이 코스트코에서 장을 봐왔다.
일주일 있을 숙소에서는 쟁이지 못했던 것들을 사느라 300불 정도를 썼다. 남편 폰이 침수돼서 송금을 못하다 보니 환전 수수료가 없는 여행용 체크카드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일갈하고, 돌아온 아이들은 식품 창고와 냉장고가 꽉 찬 것을 목격했고, 코스트코에서 원하는 간식을 사다 주겠다고 했던 아빠가 부탁대로 간식을 사다 놔주었고, 내가 트래블 월렛 못 쓰냐고 물은 것과 우리가 가진 남은 현금을 묻는 것을 들었으니 나름 K장녀는 타겟에 가서 자기 옷만 네댓 벌 사는 것이 복합적으로 마음에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딸아이는시름을 뒤로하고 콘도 수영장 문이 닫힐 때까지 수영을 했다.
남은 30일 동안 어떻게 더 잘 알로하를 누릴까...
오기 전에 마침 집에서 가까운 '수원 컨벤션 센터'에서 '팔도밥상 페어'가 열렸고, 동네 친구가 유모차를 대동해 준 덕분에 쌀과 김치와 김을 잔뜩 사 왔다. 지인들에게 줄 자두청도 다섯 병이나 샀다. 덕분에 하와이 오는 가방도 하나 더 늘었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10일 동안 쌀 4kg, 김치 2kg을 먹었다. 남은 쌀과 김치는 각 2kg. 딱히 맛있는 요리를 해준 것도 아닌데 우리 식구들은 내가 해주는 밥을 참 잘 먹어준다. 게다가 아이들이 컸으니 어릴 적 먹는 양과는 확실히 다르고, 매일 캠프 도시락을 싸다 보니 매일 밥을 지어야 한다.
그래봤자 김밥보다 편한 무슈비. 거의 매일 스팸을 먹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던 차에 숙소도 옮겼겠다, 이제 좀 먹을만한 것을 싸줘 볼까? 갈비찜이나 닭고기 덮밥은 어떨까?
"애들은 식빵에 잼 발라오는데..."
그래도 밥심이 있어야 노래도 하고 춤도 출 테니, 토종 한국인 에미는 한 번의 핫도그를 제외하고는 밥 많이, 스팸 얇게, 치즈와 계란으로 무슈비를 만들었다.
이제 다음 주까지만 도시락을 싸고 나면 밥 할 일이 확실히 줄어들 것 같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는 김에 늘 우리의 점심도 함께 싸게 되는데 남편에게는 사실 좀 미안한 일이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2년 연속으로 한 달 넘는 여행을 미국 고물가의 탑을 찍는 하와이로 데려와 줬는데 매일 무슈비를 내밀고 있으니...(나는 안 먹는다. 둘이 나는 그냥 한 잔의 커피면 된다. 한국에서도 나는 커피가 주식이었어서... 물론 거기에 빵이나 떡으로 주전부리를 쉴 새 없이 한다. 굳이 밝히는 이유는 혹시 내가 삐쩍 마른 사람이리라고 상상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오늘도 참 잘 '알로하'했다
남은 30일 중 12일은 아이들 뮤지컬 캠프로 오늘과 거의 비슷한 주중 스케줄일 것이다.
남편은 지난번에 생각해 둔 서핑 배우기를 추진 중이다. 오아후는 서핑강습하는 곳이 많아서 가격이 참 괜찮은데 빅아일랜드는 그렇지 않다. 그래도 다시없을 기회이니 프라이빗 레슨을 받기로 결정을 내렸다.
나는 그날 나만의 시간에 노트북을 들고 '코나 커피앤티'로 달려가 브런치에 담아둔 나의 동화를 발행하기 위해 마지막 퇴고를 할 예정이다. 생각만 해도 알로하로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알로하를 누릴까, 그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알로하 스피릿이 넘치는 이 여유롭고 친절한 섬에서는 '더 잘...'이라는표현 자체가필요하지가 않다.
나만의 알로하를 누린다는 것, 뭔가 세팅된 배경을 찾아 나만의 허세영역을 찾아 소셜미디어 어딘가에 올리는 것은 알로하가 아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 잠잠했다 거칠었다 하는 사춘기 같은 하와이의 파도를 끌어안는 것, 빅아일랜드 서쪽, 카일루아 코나에서 세계 최고 일몰을 감상하며 가만히 웃음 지어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