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머신이 있어서 아메리카노는 자주 먹었지만 나는 아이스 라떼를 제일 좋아한다. Strong 버튼을 눌러 진한 아메리카노에 우유를 타먹기도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꼬순라떼라기보단 옅은 밀크티 같달까. 아무튼 오늘은 아이스 라떼가 너무 먹고 싶어서 작년에도 네댓 번 이상 갔었던 그린 플래시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우피아(코코넛) 라떼가 맛있는 곳인데 나는 무조건 아이스 라떼다.
아이를 뮤지컬 캠프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그린 플래시에서 만나자고 하고 콘도 정문을 나섰다-사실 정문인지 후문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게 정해 부르기로 했다-.
Ali'i Drive를 걷고 있는데 길 한쪽에 할머니 한 분이 자전거를 앞에 두고 이마에 땀을 닦으며 앉아계셨다. 쉬고 계신 듯하여 그냥 지나가려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젊은 청년이 할머니께 도와드릴지 묻는 것 같아 멈춰 뒤돌아 보니 할머니가 기력이 없으시다. 어지러우신가 해서 '아유 오케이?' 했더니 '오케이'라고 하시기에 다시 가던 길 가려는데K아줌마 파워 E 오지랖 김미써니가 할머니 손에 들린 티슈에 묻은 피를 보고 말았다. 땀을 닦는 것이 아니라 피를 닦고 계신 신 거였다. 아까 그 청년도 할머니가 잠시 기력을 찾고 계신 줄 알고 그냥 간 듯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리와 손바닥에서도 피가 상처가 있었다. 할머니를 보고 너무 당황해서 가방에서 물티슈, 손소독제, 밴드를 꺼내드렸다. 너무 놀라셨을 것 같아 등을 토닥여드리면서 다시 한번 아유 오케이? 물었더니 주름진 눈가에 고인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써 참으며 남편이 오고 있다고 괜찮다고 하신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를 살짝 안아드리며 손을 잡았다. 주름진 노인의 손에서 오랜 인생 선배로서의 강인함이 느껴졌다.
이따금씩 지나가던 운전자들이 차를 멈추어 할머니께 도움을 드리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내가 있어서 괜찮다고 하며 차들을 보내셨다. 뭔가 더 도와야 할 것 같은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가지고 있는 인공눈물로 손이랑 다리를 조금씩 헹궈보았다. 몇 방울 나오지 않는 일회용이라 별 소용이 없었다. 손소독 스프레이는 겁이 나서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씻지 않은 채 습윤 밴드도 무용지물이었다.
할머니는 감싸고 있던 티슈를 떼고 눈썹 옆에 난 상처를 보여주셨는데 깊이 패인 상처였다. 꿰매어야 할 것 같은 상처였다. 목에 걸린 할머니의 안경을 보니 한쪽 렌즈가 깨져있었다. 괜찮냐 여쭈니 눈썹만 다친 것 같다고 하셨다. 다리도 다시 보니 상처가 깊진 않지만 길쭉하게 나서 쓰라릴 것 같았고, 손바닥도 돌에 찢겨 많이 아파 보였다. 당신이 괜찮기를 바란다는 말 밖에는 내 짧은 영어로 어떤 위로도 전할 수 없어서 또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근방이어서 곧 도착했다. 숙소에 가서 비상약을 좀 챙겨 오라고 보냈다.
렌트카 후방 카메라에 담기다니...
남편이 다시 오기 전에 할머니의 남편분이 먼저 도착하셨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설명하는 걸 들어보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물병이 튕겨져 나와 바퀴 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넘어지신 거다.
부축을 받고 일어나 혼자 걸어가서 차에 타시는 것을 보니 다행히 골절 같은 뼈 부상은 아닌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써니, 고마워! 하시고 남편과 떠나시는 모습에서 아까의 불안은 찾아볼 수 없어서 또 한 번 마음이 놓였다.
내 남편도 곧 도착했다.
나도 늙으면 이 사람과 의지하며 살게 되겠지? 지금은 육아 집중기간이라 서로의 대화 주제가 먼 미래보다는 아이들을 잘 키워낼 매일의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우리 둘에게 집중할 이야기도 좀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근데, 나 아까 왜 주책맞게 눈물이 난거지?
여전한 그린플래시에서 큰 사이즈 아이스 라테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나도 상처 입었어요
코나에 사는 한국인 친구와 밥을 먹으려고 돼지갈비를 하고 있었다. 설탕보단 양파 단 맛이 좋아서 양파를 갈다가 손가락도 같이 갈았다. 엄지 손가락 바깥마디 피부가 슬라이스 되었는데 떼어내려고 보니 치즈두께 정도 떨어져 나간 거다. 달랑거리며 붙어있는 끝부분에 맞추어 다시 곱게 얹어서 약을 바르고 습윤밴드를 둘렀다. 오래가지 않아 피가 흥건해서 밴드가 헐거워졌다. 다시 약을 바르고 일반 밴드로 바꾸었다. 맨날 큰 아이에게 덜렁거린다, 사고뭉치다, 칠칠맞다 놀리기도 하고 꾸짖기도 했는데, 나는 대형사고를 치고도 걱정해 주는 남편만 있지 꾸짖거나 놀리는 사람이 없네. 우리 이수 뭐 묻히고 떨어뜨리고 부딪히고 까지고 다쳤을 때 서러웠겠다.
그나저나, 미국에서 얼렁뚱땅 만들기 좋은 돼지갈비 레시피
돼지갈비는 나름 맛있게 되었다.
1. 코스트코에서 산 돼지고기(장조림 감이었던 것 같다)를 설탕 조금, 통후추와 양파껍질을 넣고 겉이 살짝 익도록 삶는다.
2. 약간의 육수를 압력솥에 붓고, 삶은 고기들에 붙은 부산물들을 씻어서 육수 넣은 솥에 함께 넣는다.
3. 시판 갈비양념을 조금 붓고, 간장, 맛술, 설탕 약간 넣고 생강가루를 넣고, 물을 살 양파 간 것을 넣고 버무린 후 깍둑 썬 감자와 슬라이스 한 피망을 넣고 끓인다(고추 대체)
(나는 샘표 양념이었는데 고기 5 양념 1 비율이라 적혀있는데 다른 양념을 넣을 거라조금 넣었다)
4. 인덕션이라 7 정도의 세기로 끓이다 추가 흔들리면 3으로 맞춰놓고 15-20분 동안 더 졸여준다.
5. 뜸 들면 열어서 고기 잘 익었나 확인, 간 맞나 확인. 싱거우면 간장 조금 더 붓고 몇 분 더 조리해 주면 된다.
내 맘대로 한 거라 감자는 으스러졌다.
상처엔 역시 후시... No! 바나나 머핀!!!
지인이 빵을 만들어왔다. 이름부터 건강한 글루텐 프리 바나나 머핀.
점심을 먹기 전이었는데 밥이고 뭐고 빵인데 어찌 지나치랴, 하나 집어 들어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쫀득한 식감에 달콤한 바나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데 심지어 빵이기까지 하니... 막 손가락 살이 떨어져 나가 쓰라리던 차에 하나의 머핀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내 상처엔 후시딘이 아니라 이 바나나 빵이면 되겠다 싶다. 먹고 있는데 먹고 싶은 맛. 남편은 물론 아이들도 너무 맛있다고 좋아하는 그 맛.
내일 간식으로 싸주려고 세 개 남겨놨는데 아침까지 남아있을지 미지수다.
얘들아, 천국 같은 하와이라도 다치면 피나고 아픈 건 똑같으니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남은 여행 건강하게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