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가 아닌 예쁜 표준말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달콤한 꿈이었나봐.
십여년 전 외국계 보험이
T.V에 광고를 많이 하였을때
나도 가입하게 되었다.
요즘은 어플로도 계약내용이나
증권을 볼수 있었지만 그때는
종이나 컴퓨터c.d로 확인가능했다.
어느날 보험증권이 없길래,
본사에 전화해서 증권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안내직원이 "고객님 다른 문의사항
없으신가요?주소변경도
없으시구요?"
"네에 맹00리로 보내주시면 되요"
그리고 잊어버렸는데 며칠후
증권이 왔는데, 난 한참을 웃었다.
주소에 경북00시 00면 맹00리
이라고 적혀있었다.
'맹'은 경상도 사투리로
'마찬가지'라는 뜻인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서
안내직원이
그대로 적었던 거였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상고였다.
고등학교 졸업전에 이미 취업한
친구들도 많았고,나 또한 그랬다.
나는 중3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 할려고 준비를 했다.
특히 연극반이 있는 학교로 가기위해
대구에 외사촌 언니와
미리 학교를 가보았다.
연극배우가 되는게 나의 꿈이어서
난 준비를 열심히 하였다.
부모님과 오빠도 진로를 알고있어서
대구 외갓집에서 기거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한 상태였다.
그런데,오빠가 가을에 교통사고가
크게나서 혼수상태가 되었다.
부모님은 나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그 후로 오빠는 1년간을 병원에
있어야만 했다.
대구고등학교 진학은 포기해야 했고,
(오빠를 사고냈던 화물차는 보험에
들지 않아서 개인으로 합의 했어야
했는데,그 집 형편도 좋지않아
큰 돈을 요구할수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오빠 병원비는
끊임없이 들어가야만 해서
우리집은 경제적으로 휘청거렸다.)
여기있는 상고로 입학 해야했다.
상고는 나와 맞지 않았다.
내 꿈을 처음으로 좌절시킨 여기가
맞지 않았던 거였다.
겨우겨우 학교는 다녔고, 고3되기전
몇 몇기업체들이 학교에 인원
뽑으러 다닐때였다.
수원 삼성반도체에서 10명의 직원을
뽑으러 왔을 때,학교성적 우선 순으로
서류를 본다고 했지만 일단 지원했다.
나는 어떻게든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던 거였다.
(중학교때는 공부를 꽤 잘했다
고등학교때는 성적이 엉망이었지만
기본 성적이 되었는지 뽑혔다.)
10명 전원 통과되어서 수원으로
면접을 보러가게되었다.
수원 가는 친구들이 모여서
"야들아.우리 거기가서 절대로
사투리 쓰면 안된데이"
그날부터 우리는 열심히 표준말
연습에 돌입했다.
면접보는 날 6명씩 앉아서 보았는데,
다행히 우리학교 애들이었다.
연습한대로 차례대로 면접을
잘 보았다.
면접관이 끝날즈음 수고했다면서
공지는 학교측으로 연락하겠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우린 일어나서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수고하이소"
면접관들이 엄청 웃었다.
우린 아차싶어서 머쓱하게 나왔다.
10명이 다 뽑혀서 우리는
삼성 반도체에 입사했다.
한달간 교육기간 이었다.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수원 매탄시장에 구경갔다.
농촌이랑 비교가 안 될만큼
큰 시장이었다.
지금은 여기서도 '정구지(부추)'
라는 말을 잘 안쓰지만,
그때 우리는 부추보다 정구지
라고 이야기했다.
좌판에 '부추500원' 적혀있었다.
우리는 겨울에 신는부츠인 줄 알고
왜이리싸노?보았더니 정구지였다.
우린 웃으며"이야!정구지도 파는가베?
촌에는 정구지 널렸는데"
시골엔 사지 않아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식재료들이 있어서
우린 재미있어하며 구경했었다.
사내에서 처음으로 커피 자판기를
보았다.
어릴때 이모가 자주 먹던 커피를
보아서 거리낌은 없었고,
나도 이제 성인이고 직장인이니
마셔보자 하며 돈을 200원 넣고
커피를 뽑았다.
입술에 닿는순간,얼른 뱉었다.
"이 뭐꼬?아이고 씹어라."
옆에 있는 직원들이 엄청 웃었다.
그때부터 내 별명은 씹어라 되었다.
표준말을 적응하며 서울쪽사람
될려고 했던 꿈도 날아가버렸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장기화 되면서
아버진 막내딸이 끔찍이 걱정되어서
1년도 안되어서 아버지손에
끌려 내려와야했다.
그때 삼성반도체에 계속 근무
했더라면, 내 인생은 더 좋은 방향
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친구 대부분은 계속 근무를 했고
사내결혼한 친구도 몇명 있다.
그 친구들은 골프치러 다니며,
자기들끼리 모여 해외로 놀러
가기도 하면서 열심히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한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나에겐 한 낮의 달콤한 꿈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애들을 가끔 여기에
친정에 와서 만나게되면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로
조용조용하고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하는 말하는게 이뻐보이고
그건 조금 부럽기도 하다.
오늘부터 다시 서울말을
연습해야겠다.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