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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룬 새벽, 엄마는 (1)

by 춤몽


우리 엄마는 물건을 못 버리는 사람이다.

이건 비싸게 주고 샀으니까, 저건 지인에게 선물 받은 거니까, 그건 나중에 쓰려고 아껴 놓은 거고. 물건마다 못 버리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과거에 비싸게 주고 샀다는 체크무늬 모직 코트를 입은 모습을, 언젠가 쓸 거라는 미니 오븐을 사용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엄마는 빈 공간이 생기면 좁은 틈 사이사이에 테트리스하듯 물건을 잘도 채워 넣었다. 내가 보기엔 수납이라기보다 '욱여넣기'에 가까웠다. 그렇게 자리 잡은 물건은 아주 오랫동안 한 곳에 눌러앉았다.

베란다 구석에 있는 매실청 다섯 통은 10년이 지나도 개수가 줄지 않고 그대로다.



작년 어느 날, 엄마네 냉장고에서 나온 굴소스의 유통기한을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연도를 착각한 게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두 번 보고, 세 번을 봐도 소스의 유통기한은 2012년 8월까지였다.

매실청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엄마의 말은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지만, 굴소스에 담긴 스토리 따위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반이나 남아있는 굴소스 병을 들고 벌벌 떨며 말했다.


"엄마, 이건 먹으면 죽어요..."


멋쩍게 웃으며 내 손에서 병을 낚아채 남은 소스를 싱크대에 버리는 엄마에게 설마 이걸로 만든 반찬을 내가 최근에 먹은 적이 있냐고는 차마 묻지 못했다.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픈 건 기분 탓이었을까.


이밖에도 엄마 집 안방 욕실에는 색깔이 제각각인 플라스틱 욕실 의자가 세 개나 있고, 사용기한이 한참 지난 세안제와 로션도 여러 개다.

싱크대 상단 수납장에는 사이즈가 다양한 텀블러가 스무 개도 넘게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살림 참견하는 것만큼이나 싫은 게 딸이 친정엄마 살림 훈수 두는 게 아니겠는가.

하고 싶은 말 열 개 중에서 아홉 개는 삼키고 겨우 입을 뗐다.


"엄마, 정 힘들면 정리 업체 부를까? 엄마 칠순 기념으로 공간 리셋하자. 직원 여럿이 와서 반나절 수고해 주면 새 집 같이 바뀐다는데..."


예상대로 엄마 마음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돈이 썩어 났냐며 결국 한 소리 듣고 돌아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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