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엄마를 흉보지 말 걸 그랬어
앞서 쓴 글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살아온 엄마의 긴 세월을 흉본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하다. 엄마의 DNA를 물려받은 나도 사물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며 잘 못 버리고, 부주의하고 산만한 성격 탓에 주변을 잘도 어지르면서 말이다.
나는 원래 정리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맥시멀리즘을 추구하는 성향에 가까워 책장이나 서랍 안이 무언가로 가득 차 있어야 흡족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방 한 칸 있는 좁디좁은 신혼집으로 이사하면서 내 소유로 끌어안고 살았던 대부분의 것을 버려야만 했다. 책꽂이와 한 세트였던 낡은 원목 책상, 수십 장의 CD와 카세트테이프, 수집하듯 사 모았던 일본 작가의 소설과 수필집, 친구와 주고받은 교환일기장, 대학 전공 서적 등을 쓰레기 수거장에 갖다 버리면서 다짐했다.
'이 기회에 제로(zero) 상태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해야지. 가볍고 간결하게.'
결혼하고 한동안은 딱히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 부부 둘 다 직장 생활을 하여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니 집에 치워야 할 흔적을 남길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신혼집에 정착한 사물은 밥그릇 두 개, 수저 두 벌, 퀸 사이즈 이불 하나 등 2인분의 살림이었다. 이제 막 독립한 성인 두 명 몫의 살림살이를 관리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욕실 청소를 하고 일 년에 네 번 계절에 맞는 옷을 꺼내놓으면 될 일이었다. 평생 집안 정리에 이 정도 수고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때는.
2년 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신혼집보다 두 배 큰 집으로 이사했다. 방 세 개, 욕실 두 개, 광폭 베란다를 보고 있자니 먹지 않아도 배불렀다.
'여백의 미를 즐기며 단정하게 살아야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빠진 퍼즐판에 퍼즐 조각 채우듯 빈 공간에 이것저것 들여놓기 시작했다. 신혼집에 있는 모든 걸 옮겨 놓고도 집이 휑해서 4인용 가죽 소파와 대리석 식탁을 사서 거실과 부엌을 채웠다(이미 2인용 소파와 2인용 식탁이 있었는데 그걸 버리지도 않고서 말이다!).
방 한 칸은 온전히 아기만을 위한 공간으로 쓸 예정이었다. 이 방에 아기 침대와 옷 서랍, 장난감 수납장이 들어올 것이다.
집을 넓혀 이사를 한 현실은 이랬다.
공간이 넓어지면서 빈 공간에 사물을 채워 넣게 되고, 그만큼 내 손으로 관리해야 할 물건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다. 아이가 태어나면 3인 가족이 되는데 육아용품의 세계는 우주만큼 광활하여 실제로 체감하는 살림살이는 결코 3인분의 양이 아니다.
곧 태어날 아기는 내겐 첫 아이지만 양가에서는 제일 막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장난감, 책, 옷이 든 상자들로 베란다가 꽉 찼다.
아직 뱃속에서 나오지도 않은 아기가 두 발 자전거, 영어 원서, 7세쯤에나 맞을 옷을 물려받았으니 엄마로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벽지, 바닥, 싱크대, 조명 등 인테리어 공사를 싹 하고 들어온 새 집을 무질서한 상태로 둘 수 없었다. 한동안 정리하고 꾸미는 재미에 빠져 뱃속 아기와 함께 부지런히 움직였다. 임신 중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시댁 식구들이 '모델하우스 같다'라고 했을 때, '오홍홍, 아니에요'하고 손사래를 쳤지만 가슴에 흐뭇함이 번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난 뒤 '신혼집보다 두 배 넓은 새 집'은 '지금 집의 반밖에 되지 않은 신혼집'보다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 엄마에 그 딸답게 우리 집은 버리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찬 엄마의 집과 닮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