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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Doe May 02. 2022

진부하지만 언제나 마음을 빼앗기는 블루


    2020년은 아마 파란색일 것 같다. 어쩌면 빨간색일 수도 있고. 나에게도 작년은 파랗다. 그러나 우울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살면서 가장 오래 하늘을 봤다. 잠들기 전에 해가 뜨는 것을 구경하고, 일어나서 저무는 것을 구경했다.


    ‘그해에’라고 첫 문장을 시작하고 싶다. 소설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지만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게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 혼자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 기억에 하나 정도 리본 같은 것을 장식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해에 내 삶은 아주 먼 곳에 있었다. 그곳은 서울에서 6시간 거리다. 일본이나 러시아보다 멀다. 게다가 아무 때나 갈 수 없다. 서울에서는 완도에 가는 버스가 하루에 두 대뿐이다. 심지어 배 시간 때문에 두 번째 버스는 탈 수 없다.


    완도 공용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500원짜리 농협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 버스의 종착역은 화흥포항구다. 배를 타고 소안도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작은 섬. 그러나 나는 차가 없기 때문에 30분가량 시골길을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내가 그 집에 가기 5년 전까지 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었다. 파킨슨과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기 전까지 거기 계셨다. 어느 날 할아버지의 산소에 들를 겸 다녀온 작은아버지가 빈집의 소식을 전했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라. 시골집에 가보니 마당에 죽은 새 한 마리가 있었어.”     


    당장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반쯤 무너진 을씨년스러운 폐가의 모습이었다. 동시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된 충동. 거기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한 것은 충동 때문이었다. 내 기억에는 스물다섯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더 오래전일 수도 있다.

    막상 도착했을 때 집이 생각보다 멀쩡해서 놀랐다. 물론 벌레와 쥐의 배설물이 먼지에 섞여 끔찍한 참상이긴 했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한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다. 적어도 직접 망치와 톱을 들 필요는 없었다.

   

    3월이라 날이 참 좋았다. 그곳의 공기는 가볍고 서늘하다. 나는 파란색 28인치 캐리어와 녹색 배낭을 들고 갔다. 겨자색 후드 위로 두툼한 보아 플리스 점퍼를 입고 있었다. 해안 도로를 따라 노란색 콘크리트 블록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와 대비되는 바다의 파란색이 마음에 들었다. 기억 속의 모든 색이 아주 선명하고 강렬하다.



    바다 바로 앞에 있는 시골집은 대문이 파란색이다. 낡은 돌담 가운데에 대문만 어제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보였다. 녹슨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니 마당 군데군데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오른쪽 담벼락 앞의 늙은 동백나무를 구경했다.

    황폐하거나 을씨년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절간처럼 고요한 분위기였다. 집 밖으로 멀리 수평선이 보이고 노을이 질 때면 내 숨소리까지 잦아들었다.

    당시에는 1년이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를 그곳에 붙잡아두고 지금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은 그 고요함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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