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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한 래몽 Sep 03. 2023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기분

REMONG 1 - 프리하게 살고 싶어서



강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보조강사가 아닌 시민단체에서 내 이름을 걸고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집 인원은 고작 1~2명이 전부였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공간에서 강의를 한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1~2명의 수강생에 대한 걱정으로 주변에서는 폐강을 권유할 정도였다.



실제로 주 1회 수업으로 50분 수업으로 10,000원의 수입이고, 한 달에 내가 버는 수익은 20,000원이었다. 기름값도 나오지 않는 수익이었기에, 당시 계속했던 영어과외 아르바이트와 합치면 한 달에 고작 2~30만 원을 겨우 벌어서 기름값과 통신비를 지불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나만의 공간에서 오는 자유로움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수업을 운영한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인 일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항상 현실적인 벽인 '돈'은 나의 발목을 잡았다.  

문화센터는 당시 5:5 수익구조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100만 원 근처에 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방과 후 강사'였다. 초등학생들이 정규수업을 끝나고 학교 내에서 돌봄과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방과 후 수업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마침 '주산'이라는 과목도 다시 인기가 있었던 시기라서 대부분의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시간대비 수익을 높일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주 1회 수업으로 25,000~30,000의 수강료로 25명을 저학년과 고학년을 나누어서 50명을 가르쳤다고 가정했을 때 5일을 수업하면 대기업의 월급 부럽지 않게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인기 있는 강좌는 70명이 넘는 수강생을 받는 경우도 있어 수익의 편차는 다양하다. 학교마다 정해진 요일, 수업 시수, 수강료가 다르기에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시간을 늘린다면 얼마든지 더 벌 수 있다.



사진: Unsplash의Mukuko Studio



하지만 누구나 처음엔 그럴듯한 계획이 존재한다. 나의 여정도 그랬다.

문화센터에서 1~2명이었던 수강생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10명씩 늘어나자 자신감이 생겼고, 이력서를 넣기만 하면 합격이 되는 줄 알았지만 큰 착각이었다.



이력서를 제출하면 불합격 통보는 당연했고, 어쩌다 10개 중에 1개의 합격의 문자가 오면 2차 면접에서 시원하게 떨어졌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던 나는 취업의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그리고 취업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청바지를 입고 면접을 보거나, 짧은 바지를 입고 갈 정도로 '면접'에 기본 상식도 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방과 후 강사를 준비했을 때 정보가 너무 없었다. 그 흔한 책도, 면접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운영제안서와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기에 이 모든 것을 혼자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미 경력과 경험이 풍부한 강사들이 수업을 운영하고 있고, 어느 면에서도 나의 실력이 많이 부족하고 면접의 기본자세도 되어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합격의 문을 열었을까?


사진: Unsplash의Kaleidico



바로, 공략집을 만든 덕분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반복되는 내용을 모아서 나만의 공략집을 만들었다. 방과 후 강사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운영제안서와 자기소개서로 1차 서류심사를 진행한다. 그때 사용하는 운영제안서는 학교에 정해진 규격에 맞는 내용을 작성하게 되어있다. 



처음 이력서를 작성했을 때 해당 분야의 자격증과 경력의 칸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런 불안감은 누구나 사회초년생이었을 때 겪어 봤을 것이다.     

관련 학과를 나오지 않고, 경력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안서에 영혼을 갈아 넣기로 결심했다. 그나마 잘할 수 있는 포토샵과 파워포인트를 다루는 능력을 활용해서 눈에 띄도록 했다.

     


내가 아직은 부족해 보일지라도 자신만의 차별화된 강점으로 합격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   








프로그램 운영제안서는 학교에서 정해준 양식대로 작성하면 된다. 프로그램 운영 계획에 관련하여 ‘페이지 추가 가능’이 명시되어 있기에 본인이 운영하고자 하는 수업의 내용을 자유롭게 서술하면 된다.           

그중 100개가 넘는 학교에 운영제안서를 제출하면서 깨달은 점은 학교마다 제안서에 요구하고자 하는 내용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대표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제안서의 필수 요소를 정리했다.



그리고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인 효과를 더해주고 수업 활동사진과 자료를 첨부하면 호기심을 자극하게 만들고 제안서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이미지를 통해 어떤 수업을 진행하는지 상상하게 되고 인상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는 효과를 더해준다.




이런 식으로 자기소개서, 면접준비까지 '공략집'을 활용해서 상대방이 질문할 내용을 미리 선수 치는 것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면접관의 말이 있다. 매번 보는 면접이지만 항상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을 마쳤을 때, '더 추가 질문 있으신가요?'라는 면접관의 말에 부장님이 '이미 질문할 내용을 다 답해주셔서, 더 이상 물어볼 내용이 없네요'



사진: Unsplash의Mark Fletcher-Brown



이 공략집 만들기를 알고부터는 많은 곳에서도 도움이 됐다. 반에서 꼴찌였고, 편입한 학과에서도 5년이나 걸렸던 학습부진에서 공략집을 적용하고 만점을 맞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책이든 인터넷 정보든 반복되는 내용을 수집하고 모아두고, 공략집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처음 방과 후 강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다. 수백 번 이력서를 넣어서 탈락하기도 하면서 어두운 길을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출구로 향하는 빛이 생겼고, 합격의 결실을 맺었다. 프리한 삶을 살기 원했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제로부터 시작했다.

첫 디딤돌이 된 '방과 후 강사'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매 순간 성장하는 기분이다.


사진: Unsplash의Zakaria Ahada



온실 속의 화초라고 불릴 정도로 새로운 것에 대한 겁도 많고, 발표만 하면 울던 내가 지금은 강사를 하면서 살고 있다.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 따라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움직였을 뿐인데, 그토록 퇴사하고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도 내가 특별해서도 아니다. 흙수저라고 인정하기 싫지만 흙수저였던 내가 과거에서 벗어날 방법도 아무것도 없었다. 뛰어나게 잘하지도, 잘난 것도 없었지만 좋아하는 것은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경험했고, 빠르게 실패하고 다른 길을 찾아냈다. 그 당시 내가 과거에 얽매여서 부모님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한 채로 계속 멈춰있었다면, 지금의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깜깜한 터널 속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출구는 나올 것이다. 나 같은 쫄보도 해냈으니 여러분은 훨씬 더 잘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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