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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Sep 25. 2023

나는 친구가 없다.

결못남은 결핍된 게 많아서

  나는 친구가 없다. 예전에는 분명히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


  공교롭게도 내 친구들은 전원이 결혼했다. 결혼하지 않는 이 시대에 너무나도 놀랄 일이다. 왜곡된 통계 집단 속에 살아가는 셈이다. 유부 세상으로 떠나버린 친구들과의 접점은 점점 사라져갔다. 아이라도 낳으면 그것은 더욱 가속했다. 친구 모임은 어느새 부부 동반 모임으로, 그리고 그것은 곧 아이 동반 모임으로(내 친구들은 2세도 잘만 낳았다, 정말 희한한 친구 집단을 만나게 된 나의 가혹한 운명), 싱글 노총각에게 허용된 자리는 없었다.


  사정은 회사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만든 친구들도 아주 끈끈했었는데, 이직을 몇 번 반복했더니 멀어졌다. 신입사원 연수 받으며 동고동락하며 평생 친하게 지낼 것 같은 전우애를 느꼈었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은 같은 집단 속에서 공감할 것이 있어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거다. 공동의 대화 주제가 없다면, 같이 분투하는 어떤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난다면, 헤어지게 되는 거다. 회사라는 단어의 어원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됐다. 심심한 주말에 연락할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연락했는데 상대가 연락받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그런 걱정도 마음 한편에 있었다. 유부남을 귀찮게 해서, 신혼부부 생활도, 결혼생활도, 육아생활도 아무것도 모르는 노총각 주제에 공감해줄 거리도 없는 인간이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할까 싶다. 결국 나 외로우니까 상담해줘. 얘기해줘. 해줘. 애정을 달라고. 이것밖에 더 되나 싶다. 그래서 전화를 못 했다. 새로운 관계를 얻기는커녕 있는 관계도 유지하기 힘든 것이 나이를 먹는 일인가 보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 관계를 만드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애초에 30대만 되어도 사람의 어떤 형태랄까, 틀이랄까, 그게 빈틈없이 꽉 짜여 버린 느낌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마다의 본질. 나도 바뀌기 힘들고 그들도 바뀌기 힘들다. 사회생활에 찌들어 여유도 없는데 서로를 배려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하하호호 재밌게 지내기란 힘든 거다. 상처 주고받고 실망하느니 애초에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 낫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살다가 MBTI 성향검사 결과도 E에서 I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주말에 연락할 사람이 없는 사태가 되어버린 거다. 아 이런.


  그래서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혼자 사는 법을 연구하고 연습하는 일이다. 혼자 쇼핑을 하러 갈까 영화를 보러 갈까 생각을 하며 역시 혼자 산책로를 걷다가 주인과 함께 나온 를 봤다. 만지고 싶었지만 허락받기란 번거로운 일이다. 제법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아직 충분히 E 성향이던 시절에, 길에서 만난 잉글리쉬 코카스파니엘의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고 마음껏 만져본 일을 떠올렸다. 를 만지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나도 를 키우는 게 좋을까. 아니 는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외로움을 느낄 테니 힘들겠지. 그러면 역시 고양이일까. 아니 고양이도 사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거라고 한다. 도도한 척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에게도 사랑을 주고받을 생명체가 필요한데. 유명한 박수홍씨의 고양이 같은 초희귀 생명체를 만날 수는 없을까.


  연애를 하면 되지 않냐는 따위의 조언이 제일 한심하다. 평생 서로를 구속하지 못하는 휘발성 관계에서 파생되는 추억 나부랭이들 이제는 줘도 안 갖는다고. 언젠가 헤어질 사이라면 시작도 하고 싶지 않다고. 헤어지면 그녀와의 추억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꾸 생각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말이다. 모 연예인이 결혼 뒤에 가장 좋은 변화로 ‘수면 장애가 사라졌음’을 꼽았다. 지극히 공감이 가고 부러웠다. 나도 평생의 사랑이라 믿었던 그녀와 교제하던 시절에는 수면 장애가 없었다. 충분히 꿀잠 잘 수 있었다고. 그런데 이제는 잠을 뒤척이고 숙면을 못 한다. 새벽에 깬다. 다시 잠들기 어렵다. 생각이 많아졌다. 옆으로 자는 버릇이 생겼다.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의 미신 때문에 똑바로 누워서 자는 습관을 길렀던 것 같은데, 이제는 외로운지 웅크려서 옆으로 누워 잔다. 방바닥을 끌어안고 자는 셈이다. 최근 어깨가 아파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의사가 나에게 옆으로 자냐고 물었다. 라운드 숄더를 고치게끔 잘 관리해 보자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정형외과에서 고칠 것이 아니라 정신과에서 고쳐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심리적 원인에서 비롯한 물리적 결과라는 말이다.


  친구 집단에서 멀어지고, 연인들과는 결국 헤어지게 되고, 수많은 관계에서 단절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어찌 보면 모든 것을 잃고 있다고 여길 수 있겠다. 게다가 부모님도 머지않은 미래에 영영 나를 떠나시게 되겠지. 나 고양이도 나보다 빨리 죽게 되겠지. 생각해보니 그렇다. 오늘은 똑바로 누워서 자야지. 빨리 출근이나 해야지. 외로워서 일하러 가는 거다.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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