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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Oct 04. 2023

노총각 모독

결못남은 반성할 게 많아서

결혼하고 싶은 노총각을 위한 규칙들


  단체 채팅방에서 타인의 결혼을 기쁜 척 축하해 줄 것

  지인들의 육아 인스타그램을 살피고 반드시 댓글을 달아줄 것

  오랫동안 기록해 둔 축의금 지출명세서를 한 번씩 살펴볼 것

  따뜻한 햇살 아래 한강 공원에 가득한 연인들을 관찰할 것

  결혼정보회사 커플매니저와의 대화를 떠올릴 것

  나날이 바뀌는 어머니의 안색에 주의를 기울일 것

  나는 솔로 기수별 출연자 중 나의 배역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것

  퇴근 후 별다른 약속 없이 집에 돌아와 이 글을 읽기 시작할 것




이것은 일종의 감상문입니다.


  환영합니다. 당신은 이곳 결혼시장에서 환영받을 것입니다.

  사실 그 나이까지 아직 결혼 못 한 것은 그다지 환영받을 일은 아닙니다. 자랑이 아닙니다.


  당신은 결혼을 기대했습니다. 당신은 사랑을 갈구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맵니다. 이곳에는 당신이 찾는 형태의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그간 겪어본 유형의 사랑이 이곳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순수함은 없습니다. 타협이 필요할 뿐입니다. 끊임없는 비교와 환승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그래도 과거만큼의 사랑을 기대합니다. 그런 결혼을 원합니다. 그래서 실패합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흘러간 인연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실패한 관계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조금씩 약해지는 육신과 무뎌지는 정신만이 당신의 동반자로 함께할 뿐입니다. 시간이 중요합니다. 아니 시간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곧 나이입니다. 나이는 한계가 아닙니다. 단지 가끔 한계가 될 뿐입니다.


  가늘어진 모발을 느낍니다. 늘어난 뱃살을 인지합니다. 피부조직 군데군데의 변질을 살펴 봅니다. 못생겨진 발가락을 감지합니다. 애초부터 못생긴 얼굴로 주의가 돌아옵니다. 그러다 머리를 긁적입니다. 거북목을 뒤로 재낍니다. 끝까지 읽어야 할지 고민합니다. 이것은 어떤 감상문입니다. 또는 반성문입니다.


  당신은 흘려보낸 시간만큼의 돈을 썼습니다. 감정을 지출했습니다. 결혼을 닦달하는 부모님과 맞서 싸웠습니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 한 것이라는 세간의 조롱 섞인 시선에 대항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충분히 어른이지만 사회적으로 어른인 척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정을 이루지 못 했습니다. 선배란 호칭에 모순을 느낍니다. 중요한 것은 역시 시간입니다. 부모는 어느새 노인이 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 하는 당신 때문에 아직 부모로 머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입니다. 감정보다는 결심입니다. 결심해야 합니다. 결심이 중요합니다. 아니 결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행동이 필요합니다. 결혼을 위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결심이 없더라도 행동해야 합니다. 행동하다 보면 인연을 만나 어떤 결심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감정이 없더라도 행동해야 합니다. 감정은 생길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호르몬 장난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시장에 우선 뛰어듭시다. 여자를 적극적으로 찾으십시오.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십시오. 어린 시절이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방법까지 실행하십시오. 당신은 그럴 나이입니다. 나이가 중요합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마음은 바뀌게 마련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나이입니다.


  매력이 중요합니다. 눈높이가 중요합니다. 달성 가능한 목표의 설정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이상형이 있지만 동시에 없기도 합니다. 그때그때 바뀝니다. 타협이 중요합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분노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유형은 분명히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제각각의 이유로 매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가끔은 그저 말이 통하는 여자면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비슷한 아비투스를 가진 상대를 찾아 헤맵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매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매력은 현실입니다. 현실은 냉정합니다. 눈높이가 중요합니다. 거울을 보십시오. 당신은 이상형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날 수가 없습니다.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전부 결혼당했거나 만나주지 않습니다. 당신에게는 이상형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결혼한 만큼의 감정을 사용했습니다.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이곳저곳에 돈을 치렀습니다. 뇌내 시뮬레이터를 수없이 돌려봤습니다. 그렇게 결혼식부터 신혼 초기의 시절을 향유했습니다. 낳은 적 없는 자식의 이름까지 지어버렸습니다. 당신은 흡사 결혼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기에 고통을 느낍니다. 무력감을 느낍니다. 결혼까지는 가지 못 한 수많은 이별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결혼부터 이혼까지 해버린 것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꿈입니다. 꿈으로 믿고 싶은 슬픈 현실입니다.


  당신의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욕을 좀 들려드리겠습니다. 곱게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노총각에게는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노총각에게 눈을 낮추란 말만큼 많은 욕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정신 차리십시오. 당신의 수준에 알맞게 눈을 낮추십시오. 아직도 눈이 거기에 있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주변 사람들은 다 하는 데 못 하는 이유가 별 거겠어. 베타메일 같은 녀석아. 아직도 인생이 네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냐. 제발 어른이 되어라. 선택받지 못  녀석아! 이 노총각아!



  30대 남성의 미혼율은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달성되지 않는 것에 자꾸 도전하는 것이 애처롭습니다. 당신은 저의 동지입니다.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무한한 동료애를 느끼고 있습니다. 아니 이 글을 통해서 우리는 함께 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만났습니다. 이 무례한 글에 상처받지 않으셨길 바랍니다. 애초에 모독이라고 밝혀 놨는데 당신은 기어이 읽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노총각들의 상황에 관한 감상입니다. 사실은 자조적 반성문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추천을 누르십시오. 애정의 댓글만을 남겨주십시오. 인연을 꼭 만나십시오. 당신은 결혼시장에서 환영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 페터 한트케 <관객모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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