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하는 인간 - 한강의 단편소설

회복되지 못한 채 떠난 언니 모습에서 또 다른 당신의 모습이 보였다.

by Someday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느끼는 육체적 통증이 치유되길 바란다. 원치 않는 심리적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욕구다.

그러나 회복의 자정 과정은 더디다.

물리적 치료와 화학적 약제 조절로 이런 상황을 누그러뜨리지만, 정신적 회복은 육체적 회복보다 더 느리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통증과 불안을 방치하는 사람도 있고, 회복하지 못하는 인간도 있다.

<<회복하는 인간>>의 당신과 당신의 언니도 이런 부류가 아닌지.


'언니의 관'을 산에 묻고 내려오는 길, 당신은 발목을 삐었다.

닷새 후에야 동네 한의원을 찾았다.

살갗이 탈 때까지 불붙은 쑥을 얹어두는 뜸을 받았는데,

그 자리에 수포가 부풀고 터지고 세균이 감염된 것을 다시 닷새 후, 정형외과에 가서 알게 된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이틀 뒤 두 번째로,

이틀이 더 지나 세 번째로,

당신의 왼쪽 발목 구멍부터 서서히 회복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의사는, 아주 더디긴 하지만, 수술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했다.

아주 더딘 회복을 부추긴 것은 당신 스스로였다.

그런 두 발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강변길을 달리다 고꾸라지기까지 하지 않았나!


당신의 언니는 작은 키의 왜소한 당신과 달리 후리후리하게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녔다.

'사람들은 평범한 외모의 당신이 언니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성장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열등감을 가졌던 쪽은 언니였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그녀가 질투한 것들이 어김없이 당신의 결점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신이 고지식하고 고집이 센 것을, 그래서 신통찮은 전공을 택한 것을, 서른을 넘기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것을, 부모와 - 특히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아 경제적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 것을, 그래 저래 그 나이 먹도록 원룸 월세를 내며 불안정하게 살고 있는 것을 그녀는 질투했다. 그녀 자신은 견실한 사업체를 가진 여덟 살 연상의 잘생긴 형부와 결혼했고, 거실에서 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살았고, 먼 나라의 왕실에서나 사용할 법한 식기들을 장식장에 진열해 두었지만, 마치 냄새가 싫은 음식을 꺼리듯 자신의 인생을 멀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 본문 227쪽


당신이 대학 1학년이었을 때, 졸업반이었던 당신의 언니는 당신을 호출했고, 그냥 따라만 오라고 했다.

눈발이 쏟아질 것 같던 그날 오전, 당신의 언니는 소파수술을 마치고 나왔다.

'당신의 언니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당부할 필요가 없었다. 당신이 그 비밀을 언제까지나, 부모는 물론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끝까지 짊어질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을 만큼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당신의 언니는 그날 이후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 당신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고, 눈조차 제대로 맞추려 하지 않았다.' - 본문 229쪽


당신은 그 후 수년간 언니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애썼지만, 그 모든 노력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당신도 당신의 언니에게 향하던 마음을 한순간에 접어버렸다.


당신의 언니는 아이를 갖기 위해 십 년 가까이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잔혹하게 계류유산이 반복되었다.

가족 모임에 당신이 나타나면 언니의 얼굴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당신뿐이었다. 당신은 활짝 미소를 지은 채 당신의 언니를 사랑하지 않으려 애썼다.


당신의 언니는 점점 여위어 갔고,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고통을 호소하다 떠났다.

'언니,라고 마침내 떨리는 입술을 열고 말하려 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 본문 233쪽


당신의 몸엔 몇 개의 흉터가 남아있다.

어린 시절 뛰어내리기 시합을 하다 생긴 무릎의 흉터, 의자의 나사가 빠지면서 떨어져 생긴 정강이와 손등의 흉터, 중학생 때 끓는 기름에 만두를 넣다가 집게손가락까지 담그는 바람에 생긴 화상 자국. 상처는 아물어도 흔적은 남았다.


당신이 탔던 자전거는 천변의 바위 위로 나동그라졌고, 당신은 차가운 갈대밭 가장자리에 누워있었다.

손과 팔꿈치의 피부가 벗겨진 게 분명했다.

땅에 부딪힌 어깨와 골반이 뻐근하게 아팠다.

당신에게 이제 두 발목의 회백색 구멍 속 상처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통증은 더 커다란 통증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나!

'이 모든 통각들이 너무 허약하다고, 당신은 수차례 두 눈을 깜박이며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차가운 흙이 더 차가워져 얼굴과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게 해달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서 모을 일으키지 않게 해 달라고 당신은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기도를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 - 본문 243쪽


왜, 당신은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것인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당신과 언니, 둘 가운데 누가 더 차가운 사람이었는지.' - 본문 228쪽

언젠가 당신은 당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회복되지 않은 채로 영원히 떠난 당신의 언니 모습에서 또 다른 당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 단편소설은 디 에센셜: 한강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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