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과 ㄴ 사이 지워지기 전 비어있는 틈을 보면, 쉽게 쓰인 글은 없었다.
한강
지워진 단어를 들여다본다
희미하게 남은 선의 일부
ㄱ
또는 ㄴ이 구부러진 데
지워지기 전에 이미
비어 있던 사이들
그런 곳에 나는 들어가고 싶어진다
어깨를 안으로 말고
허리를 접고
무릎을 구부리고 힘껏 발목을 오므려서
희미해지려는 마음은
그러나 무엇도 희미하게 만들지 않고
덜 지워진 칼은
길게 내 입술을 가르고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질치는 나의 혀는
한강 작가의 '작품 쓰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작가는 자신의 뜨거운 심장에서 걸러낸 단어들로 글을 쓴다.
그가 집필하는 공간은 그의 '뜨거운 심장'이 아닐까?
ㄱ과 ㄴ 사이 지워지기 전,
비어있던 사이(틈, 공간)을 들여다보노라면, 쉽게 쓰인 글은 없었다.
뒷걸음질 치는 한강의 혀는 '표현의 한계'를 드러내지만, 우리는 짧고 유려한 그의 글에 전율하기도 하고, 심오한 결론에 이르러 때론 모호한 매력에 빠지기도 한다.
'덜 지워진 칼'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5.18의 악몽과 상처가 아닐까?
'그날의 상처가 남겨진, 덜 지워진 칼'로 결국 한강은 자신의 입술 길게 가른다.
한강이 13살 때 받은 깊은 내면의 상처를 함께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워버리고 싶지만 더 선명하게 남은 흔적들을 내내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를 쓰던 당시,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질 치던 그의 혀는 결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심장에서 울린 노래를 글로 옮겼다.
때론 잠깐씩 혹은 길게 글쓰기를 멈추기도 했지만
결국,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인의 위상을 드높이지 않았던가!
그의 입술은 계속 창작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이시는 디 에센셜: 한강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