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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의 시

지금도 무엇인가가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

by Someday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이 시는 <<디 에센셜: 한강>>에 수록되어 있다.




먹어야 산다.

때맞춰 먹는 일은 시기 잘 맞춰 사는 일이다.

늦은 저녁에 넘기는 흰 공깃밥엔 서둘러 살아가는 목멤이 담겨있다.


밥시간이 지났다.

청춘이 흘러갔다.

두 눈 덮은 안경 위로 공깃밥의 김 서림 가득 찼다.

나를 닮은 노인을 앞세우고 지나가 버린 숱한 시간들.

유한한 세월 속에 상실이 쌓인다.

사진출처: 픽사 베이 무료 이미지

오늘도 밥을 먹었다.

흰 공깃밥에서 피어오른 김 서린 안경이 이내 가신다.

뜬금없이, 김훈이 끓여 먹던 라면이 생각났다.

그가 혼자 먹던 김밥, 짜장면, 칼국수, 육개장, 짬뽕, 가락국수가 먹고 싶었다.

그는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즐겨 탔다.

아직 미숙하던 스케이트보드도 탔다.

두 발로,

또 여러 가지 바퀴로 이 땅을 딛고 살았다.


한강도

김훈도

살아가는 일로 시간을 쓰는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때론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그 모습까지 똑같다.

먹고사는 일은 녹녹하지 않지만

땅을 밟고 살아있는 한,

모두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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