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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편] 隱退 말고, 銀退하겠습니다.

은퇴 아닌 금퇴로 사는 삶

by 은퇴설계자

은퇴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서늘하다. 숨을 은(隱), 물러날 퇴(退). 조용히 물러나 숨어 지내라는 뜻이다. 인생을 여기까지 치열하게 버텨온 사람에게 ‘숨어 지내라’니, 어쩐지 섭섭함을 넘어 야속하기까지 하다.


‘은퇴설계자’라는 필명을 쓰면서도 이 글자의 진짜 무게를 미처 몰랐다는 것이 더 놀랍다. 물러나는 것도 서러운데 숨어 지내라는 명령까지 덧붙여 있을 줄이야. 한자어는 가끔 이렇게나 직설적이고 잔인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적어도 나의 은퇴만큼은 ‘隱退’가 아니라 ‘銀退’이기를. 조용히 사라지는 대신, 은은하게라도 빛을 내는 존재. 어둠 속에 자신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은은함을 품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시대는 이미 바뀌었다. 한 직장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물러나는 시대는 아니다. ‘퇴’는 끝이 아니라 전환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노려야 할 것은 ‘金退’, 삶의 후반부가 의외의 황금기로 바뀌는 반전의 시간일 것이다.


이 금빛 시간은 무엇으로 가능해질까. 건강, 재무 안정, 경험의 확장… 많은 요소가 필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지탱하는 기초는 결국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무너지면 건강도, 통장도, 사람도 의미를 잃는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은퇴 준비에서 가장 소홀히 하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다. 자존감은 홀로 자라지 않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회사라는 커뮤니티 속에서 내 이름과 역할을 확인받아왔기 때문이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찾아오는 상실감은 생각보다 깊다. 직책을 내려놓는 순간, 이름에서 빛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그 공허함.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인생의 이력이 회사로만 채워졌던 시간이 끝났다는 건, 이제 내 이름 석 자로 채울 새로운 페이지가 열렸다는 뜻이다.


숨어 지내는 隱退(은퇴)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銀退(은퇴)로, 그리고 마침내 찬란한 金退(금퇴)로 가는 길.


그것은 은퇴가 아니라, 잃어버린 나를 다시 세우는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다.


Gemini_Generated_Image_vtpk6vtpk6vtpk6v.png By 나노바나나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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