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노릇 ep.3
이렇게 사소한 일로도 싸움이 되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네'다. 나도 처음엔 한쪽이 일방적으로 져주면 싸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하지만 이젠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안다. 이번엔 ‘책상 위 커피 자국’이 화근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거실 한쪽에 놓인 내 작업용 책상 위에 커다란 원형의 갈색 자국이 선명했다. 분명히 내 컵이 아닌, A가 놓고 간 자국이었다. 그 순간 묘한 신경질이 아지랑이 피듯 기어 올라왔다. A는 늘 이런 식이다. 몇 번을 말해도, 아무리 좋게 타일러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남의 공간에 침범해서 아무렇지 않게 그 공간을 더럽혀 버리는. 그 배려 없는 행동과 무심함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나는 천천히 책상으로 다가가 그 자국을 손끝으로 훑었다. 손에 묻어나는 축축한 흔적이 마치 ‘네가 같은 말을 몇 백번 반복하더라도 나는 철저히 당신 말을 무시할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자기가 작업할 때 옆에 서 있기만 해도 그렇게 짜증을 내면서, 매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몇 시간 전, 중요한 서류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도 A는 그 옆을 지나가면서 내 컵을 아무렇게나 책상 가장자리에 올려놓았다. 평소 같으면 괜찮았을 텐데, 중요한 사건을 맡았으니 집중 좀 하게 해달라고 충분히 양해를 구한 직후라 그런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꼭 내가 집중해서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 내가 일 하는 공간에서 그런 번잡스러운 일로 내 신경을 분산시켜야만 하는 걸까.
나는 그때부터 온 신경이 곤두섰다. A가 일부러 나를 불편하게 하려는 건 아닌지, 순간순간 그녀의 눈빛과 행동을 살피며 긴장했다. 이렇게 바쁜 날 만큼은 절대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감정적, 정서적으로 소진하고 나면 다시 일에 집중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걸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그녀는 발소리를 턱턱 내며 다시 방 안으로 가더니 캔버스를 마구 찢고, 물감을 튀기며 작업을 해댔다. 그 소음이 심해질수록 나는 더 괴로워졌다. 단지 그녀의 행동 자체 보다도 조금도 나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났다. 참다못한 나는 쓰던 문장을 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그녀의 작업실 방으로 갔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 문득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녀가 미친 것 같았다.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녀가 나를 흘끗 보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왜 또, 뭐가 문제야?”
A의 목소리는 무심하고도 날카로웠다.
“책상에 커피 자국 봤어?”
그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
“그게 왜, 뭐.”
그게 왜라니. 나는 할 말을 잃는다.
"나 없을 때 내 공간에 오지 말아 달라고 했잖아. 나 이번에 맡은 사건 때문에 바빠지니까 신경 좀 써달라고 좋은 말로 부탁하기도 했고."
"그깟 커피 자국 닦으면 그만이잖아. 그게 그렇게 거슬려?"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 한 순간에 '그깟 커피 자국' 하나 때문에 또 여자를 들들 볶는 이상한 남자가 되어 버렸다. 그녀의 태도가 너무도 당당해서 순간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도리질을 치며 '아니다'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매일 쌓여가는 스트레스와 불안이 이제 내 판단력까지 흐리게 하고 있구나.
언제부터인가 A는 이렇게 매일 야금야금 나를 갉아먹고 있다. 그녀가 일부러 내 질서를 파괴하고, 나를 시험하고, 내 심기를 거스르고, 신경을 긁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정신없이 바쁘고 피곤할 때일수록 더더욱. 도대체, 왜, 왜.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밀어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자꾸 A를 원망해 봤자 나만 힘들어지니까. 최대한 A를 이해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매일 그녀가 내 방을 ‘엉망’으로 만들거나, 나를 무시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면 나는 그 부정적 에너지를 온몸으로 감내하면서 꾹꾹 참아야 했다. 나는 언성을 높이기도 지쳐 그저 말없이 A의 작업실 방 문을 스르르 닫고 나왔다. 책상에 앉아 작성 중인 서면이 떠있는 모니터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리고는 누구든 들어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허공을 향해 버릇처럼 말했다.
“미칠 노릇입니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