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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노릇 ep.2

by 이재이




"벅벅, 지이익 직, 부북, 벅."

어디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집안을 탐색했다. 소리가 나는 곳은 A가 작업을 하는 방이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나.


A는 미친 여자처럼 자기 키보다 훨씬 큰 캔버스를 칼로 찢어대더니 이젠 붓으로 물감을 턱턱 칠하고 있었다. 캔버스를 향해 붓을 거의 던지다시피 했기 때문에 물감이 집안 곳곳에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뭐하는 거야?"

내가 묻자 A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깜짝이야'하고 거의 비명에 가깝게 말했다.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A는 나를 낯선 사람을 보듯 쳐다보며 물었다.

"아까부터. 근데 조심 좀 해. 물감이 다 튀잖아."

"내 작업 공간에서 만큼은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게 둬, 제발.”

A가 앙칼지게 쏘아보며 나를 몰아붙였다. 피해망상이 깊은 걸까. A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짙게 깔려 있었다. 언제는 내가 자신을 아무것도 못하게 감금이라도 한 사람처럼 취급했다.

'제발'과 같은 극단적인 어휘를 쓰는 건 A의 주특기였다. 저런 말을 들으면 억울한 감정이 들면서, 아니 내가 언제 자길 괴롭혔다고 저러지, 나만큼 자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배려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참았다. A와 싸우기 싫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언쟁을 하고 굳이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이제는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나는 최근 중요한 소송을 맡아 잠이 부쩍 부족한 상태였다. 신체적으로도 충분히 피곤한데, 정신적인 피로까지 축적시킬 여유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그 어떤 대꾸도 없이 조용히 방을 나왔다. 자기 혼자 있는 집인양 캔버스 찢는 소리로 나를 성가시게 한 게 누군데.

역시 A의 세계에선 전후 맥락과 원인과 결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자신만 존재할 뿐. 이번에 내 죄명은 뭘까. 자신의 작품세계에 무단 침입해 집중을 깨트린 죄? 아니면 캔버스를 찢고 물감을 사방팔방 튀기는 그 '예술행위'를 가지고 '사방팔방에 물감이 튀니 조심 좀 하라'고 염려한 죄?

알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A의 심기를 건드렸고, 거실에서 장장 3시간 동안 그녀의 예술 행위가 내는 소음을 견뎌야 했다.


A의 신경과민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나는 최대한 A를 이해해주고 싶은데, 갑작스런 순간에 나를 향한 분노의 화살이 날아올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그 상황을 피하는 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러면 A는 더 난리가 나서 분노를 표출하기 때문에 가끔 우두커니처럼 멍하니 서서 A의 분노 섞인 푸념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럴 수 있는 날도 있다.

하지만 오늘처럼 너무 피곤한 날은 그럴 수 없다. 나는 최대한 내 감정상태를 고요하게 유지하려 노력한다. 번번이 무산되지만 최대한 내 의지를 그 쪽으로 집중한다. 아직은 A,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참고 내가 좀 더 노려하면, 그래도 겉으로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래도 가끔은 정말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땐 아무도 없는 방에서 그냥 조용히 혼자 읊조린다.



"미칠 노릇입니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