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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노릇 ep.4

by 이재이





"아, 도저히 안 되겠어. 이제 더는 안 되겠어."


어느 오후, 나는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될 수준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너무 망가졌고, 피폐해졌고, 이제는 도저히 나 혼자만으로는 버틸 수 없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작업 중인 A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손을 거칠게 이끌었다.

"옷 갈아입어."

단지 그렇게 말했다.

"왜, 나 지금 작업하는 거 안 보여?"

역시나 신경질적인 말투의 A. 그녀의 눈빛은 공허했다. 병원에 가야한다고 하면 A가 또 난리를 피울까봐 나는 일단 갈 곳이 있으니 얼른 옷이나 갈아입으라고 했다.

"왜, 병원이라도 가게?"

A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렇다고 대답해도 되려나. 하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A는 대답 없는 나를 보며 손에 들고 있던 붓을 툭, 하고 내려 놓았다.

"잠깐만 기다려. 손만 좀 씻고, 금방 옷 갈아 입을게."

웬 일인지 A는 더이상 묻지 않고 고분고분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나는 차를 몰고 냅다 병원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싶어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외곽의 병원을 골랐다. A는 말없이 운전에만 집중하는 나에게 우리 지금 어디 가는거야? 혹시 병원 가는거야? 병원? 하고 몇 번이나 물어댔다. 그러다 대답이 없는 나를 보고 그걸 '암묵적인 긍정'의 뜻으로 받아 들였는지, 더 이상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A에게 받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내 상태는 심각해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보면 다크서클과 퀭한 눈빛이 고스란히 비쳤다. 어느 오후부터는 심장이 발작하듯 쿵쿵 뛰었고, 손끝이 저렸다. 아무 일도 안 했는데 온몸이 지친 느낌. 만성피로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서면을 작성하다가도 어지럼증처럼 이유 없는 피로가 몰려왔고, 그럴 때는 방 안의 공기조차 무거워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이미 너무 망가졌다. 견딘다고 견뎠지만, 이제는 무리였다.


사회적 체면이니 위신이니 때문에 A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정신건강의학과였다. 건물 복도를 따라 걷는데 어쩐지 걸음이 맥없이 휘청거렸다. 접수창구 앞에서 내 이름을 말하는 데도 약간의 주저가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알이 작은 금속테 안경을 쓴 의사가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책상 위에는 진료 차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최근 수면 상태는 어떠신가요?”

“그냥……좀 뒤척입니다. 아니, 사실 잘 못잡니다.”

내가 말을 더듬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더 물었다. 식욕, 집중력, 대인관계 따위를 하나하나 대답하는데도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졌다.


내 감정과 상태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다.

A와의 갈등, 그 복잡한 대화, 말 한마디에 생겨나는 오해와 분노, 침묵 속의 피로.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다 대답을 몇 번이나 머뭇거렸다.

“제가요... 사실, 참았습니다. 꽤 오래요.”

마침내 입을 열어 그렇게 내뱉자, 그동안 꾹꾹 눌러두었던 말들이 안에서 끓어 오르듯 튀어나왔다.

“동거 중인 애인, A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처음엔 괜찮았어요. 조용하고 차분하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 같았거든요. 근데 언제부턴가 사소한 걸로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 말을 이었다.

“이를테면 제가 환불 기간을 착각했어요. 일주일인 줄 알았는데 이주일이더라고요. 그냥 그런 일이 있잖아요, 누구나. 근데 A는요. 그걸로 거의 한 시간을 저를 몰아세웠어요. ‘항상 네가 옳다고 생각하지 마라’, ‘변호사라는 사람이 숫자도 제대로 못 외우냐’, ‘자존심이 문제냐’며 끊임없이 말을 퍼붓는데… 정말 피가 마르더라고요.”

의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 공간에 대한 개념도 없어요. 거실 테이블은 제가 주로 일하는 곳인데, 본인 커피 컵을 두고 나가선 자국을 남긴다거나, 물감이 묻은 손으로 만지거나... 그런 게 반복되면 스트레스가 쌓이잖아요. 근데 그걸 좋게 말하면요, ‘그깟 테이블 하나 갖고 왜 난리냐’고 받아쳐요.”

내 말투는 점점 빨라졌고, 호흡이 가빠오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최대한 이성적인 어조를 유지하려 애썼다.

“심지어 캔버스를 찢는 작업을 할 땐, 그 날카로운 칼질 소리가 몇 시간씩 들려요. 문을 닫아도 다 들리거든요. 북, 북 찢어대는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면서 집 안에서 제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도망치고 싶은데, 제 집인데 제가 어디로 갑니까.”

“음…….”

의사는 딸깍딸깍 키보드 위의 손을 움직여 뭔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제가 얘기해도 듣질 않아요. 좋게 말해도 그걸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참으면 ‘왜 무시하냐’고 더 화를 내고요. 그러니까 숨을 못 쉬겠어요. 제 직업상 사건을 맡게 되면 정말 바쁘잖아요. 그런데 일상 속에서도 도무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어요.”

나는 한숨을 몰아 쉬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도 제가 이상한 사람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이건 아닌 데 싶고요. 혼란스럽습니다. 솔직히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제는 그냥 피하고 싶어요. 말 걸기도 무섭고요. 뭐 하나 잘못 말해서 꼬투리라도 잡히면 또 감정의 폭풍이 몰아칠 것 같아서 전전긍긍하고.”

의사는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이게 반복되면 사람이 무너져요. 그리고, 저는 지금,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나자, 어깨에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는 조용히 고개를 몇번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 A분도 같이 오셨다고 하셨죠? 혹시 괜찮으시면 잠깐 같이 들어오시게 해도 될까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A의 상태를 직접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는 간호사를 호출했고, 이내 문이 열리더니 A가 조용히 진료실로 들어왔다.

A는 말없이 내 옆 갈색 의자에 앉았다. 표정은 지쳐 보였고, 눈 밑엔 살짝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의사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