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쓰기 역량에 대한 스스로의 의심과 함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갔고, C잡지 편집장에게 연락해 더 이상 칼럼을 연재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편집장은 내 말 뜻은 알겠으니 점심이나 같이 먹자며 나를 불러냈다. 편집장 혼자 있을 거라 생각한 자리엔 뜻밖에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자기를 S영화 제작사 대표라고 소개하며 명함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윤 호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그가 재빨리 덧붙였다.
"아, 성이 윤, 이름이 호. 외자예요."
호는 한자로 범 호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맞은편 편집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하 씨. 윤 대표가 지하 씨 칼럼 읽고 깊게 감명받으셨나 봐. 하도 소개시켜 달라고 졸라서 같이 나왔어요. 같이 식사, 괜찮지?"
편집장의 기묘한 반존대. 안 괜찮다고 하면 어쩌려고. 하지만 나는 그저 그럼요. 하고 작은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제작사 대표라기엔 너무 어려 보이는데. S영화사는 영화 업계 종사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지도 높은 제작사였다. 엄청난 동안인 건가.
"지하 씨, 칼럼 진짜 재밌게 읽었어요. 특히 남겨진 사람의 죄책감을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한 글, 진짜 새로운 관점이라 감탄하면서 읽었다니까요."
윤 대표의 텐션이 한껏 올라가 있었다.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해요."
악플로 한껏 위축돼 있던 내게 그 말은 퍽 위로가 됐다.
그날 자리에서 편집장은 칼럼 기고를 중단하겠다는 이유가 혹시 '공포'라는 장르적 특수성 때문이냐, 다른 칼럼(이를테면 로맨틱 코미디 같은)을 연재해 보는 거 어떠냐. 이 주에 한 번이 너무 버거우면 한 달에 한 번은 어떠냐. 끊임없이 나를 설득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당분간은 좀 쉬고 싶었다. 자리가 끝날 무렵, 윤 호 대표는 조만간 연락하겠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 검색해 보니 윤 호는 내 생각보다 훨씬 거물급 인사였다. 말 그대로 금수저 집안의 자제였고,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다수의 영화 제작에 참여해 업계에서 높은 안목을 인정받고 있었다. 나는 공통점이라고는 또래라는 것 밖에 없는 그에게 사뭇 거리감을 느끼며 아까 받았던 명함을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처박아뒀다.
퇴사 후 칼럼 기고까지 그만두자 비로소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다. 부모님은 이때다 싶어 로스쿨 진학을 권유했다. 학교 선생님인 엄마와 공무원인 아빠는 지극히 보수적이었고, 언제나 안정성을 제일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아빠는 '기레기' 같은 걸 도대체 왜 하려고 하냐며 내가 기자로 일하던 시절 내내 못마땅해했다.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네가 선택한 길이란 게 그런 일이다 라며 당장 때려치우라고 했다. 틈만 나면 때려치우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조금의 힘든 내색도 보일 수 없었다. 기껏 S대 나와서 그딴 기레기나 하려고 하냐며, 창피해서 어디 가서 자식 얘기도 못 꺼내겠다고 했다. 그놈의 S대.
내 건강이 악화되는 걸 눈치채고부터는 그만두라는 채근이 더 심해졌다. 아빠가 그렇게 때려치우라고 압박한 탓에 되려 오기가 생겨 더 그만두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은 굉장히 기뻐했다. 이제 그딴 개고생 하는 직업에 눈독 들이지 말고, '라이센스'가 있는 일을 하라고 했다. 오직 라이센스만이 하방을 보장해 준다. 더 이상 떨어지지 못하게 말이다. 그런 직업을 가져야 되는 거다. 새겨 들어라. 아빠는 말했다. 로스쿨, 로스쿨, 로스쿨.
나는 야심찬 포부로 이방인이 되겠다며 회사를 때려치울 때와 달리, 반항할 에너지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열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공부를 하는 게 더 나을 것도 같았다. 그럼 적어도 불안하지는 않을 테니까. 부모님은 내게 로스쿨 학비를 대주겠다고 했고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부모님의 뜻에 따라 로스쿨에 진학했다. 새로운 차원의 불행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생각조차 못한 채.
내가 로스쿨에 진학했다는 걸 듣고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서림이었다.
"갑자기?"
"응, 그렇게 됐어."
"이럴 때 보면 넌 참 모범생 콤플렉스 같은 거 있단 말이지."
"그런가……."
서림은 퇴사 후 제주도로 내려가 제주도 1년 살기를 하고 있었다. 서림은 서울도, P시도 다 싫고 완전히 새로운 곳에 머물고 싶어서 제주도를 선택했다고 했다.
"로스쿨 선배로서 조언 좀 해줄까."
"크하하. 좋지."
"서울 가면 재워주나."
"당연하지."
그렇게 서림이 제주도에서 올라왔다. 아이패드 하나 달랑 든 에코백을 메고서.
집에 기자로 일할 때 선물 받았던 와인이 있어 서림을 위해 개봉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좀처럼 마실 일이 없으니까. 서림은 와인을 홀짝이더니 금세 취했고, 센티해졌다.
"난 내 이름이 참 마음에 안 들어. 임서림. 임으로 시작해서 임으로 끝나는. 결국 임으로 돌아오는, 도돌이표 인생. 나는 어쩌면 내 이름처럼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딛지 못한 채로 말야. 어쩌다 앞으로 가면 또 무서워서 다시 되돌아오고. 임서림처럼. 임서림서림서림서림서림!"
나야말로 성 문을 열면 언제든 지하로 가는 길이 열렸다. 문지하.
智夏, 지혜로울 지, 여름 하. 지혜로운 여름. 한 여름에 태어난 나를 위해 부모님이 지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한자 뜻이야 어찌 됐든 문지방, 반지하, 지하실 등등 수없이 많은 유치한 별명을 양산해 온 이름이기도 했다.
문이 열린 지하는 밑도 끝도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 나는 언제고 내 안의 성을 부숴 문을 열고 지하로 침잠했다. 지하는 언제나 음습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둡고 축축했다. 내 성이 문 씨인 것도, 이름이 지하인 것도 어쩌면 다 운명인 걸지도 몰랐다.
"야, 나 근데 요즘 제주도에서 뭐 하는지 알아?"
"뭐 하는데."
"브이로그 찍어. 하하하."
"오, 뭐야. 유튜버가 되시겠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재미로. 근데 벌써 하나 올렸어."
"뭐야, 진짜? 왜 얘기 안 했어! 나 구독할래."
"안 돼. 비공개로 올렸거든. 사실 하나 아니고 두 개. 영상 볼래? 너한테만 친히 내가 공개할게."
서림은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냈다. 영상에는 제주도 협재 해변의 모습과 그걸 보며 앉아 있는 서림의 뒷모습이 보였다. 철썩철썩하는 파도 소리가 듣기 좋았다. 영상은 배경음악이나 자막을 과하게 쓰지 않아 깔끔했다. 영상이 전환되더니 섭지코지의 신비한 노을이 나왔다. 제주도의 노을은 보라색, 노란색, 핑크색, 주황색 참 다채롭고 예뻤다.
"뭐야, 벌써 끝났어. 너 제주도에서 매번 이런 좋은 것만 보면서 지내는 거야? 진짜 힐링 그 자체다."
"진짜 이쁘지? 아름답지? 내가 혼자 보기 아까워서 영상으로 남겼다니까. 아야, 근데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나머지 영상 하나 보고 있어."
"그래."
나는 서림에게서 아이패드를 넘겨받았다. 서림은 많이 급한지 엉덩이를 쭉 뺀 채 화장실로 달려가고 있었다. 다음 영상을 누르기 위해 뒤로 가기를 눌렀다. 그때, 너무 놀라 아이패드를 떨어뜨릴 뻔했다. 나도 모르게 헙하고 숨을 삼켰다.
로그인 돼 있던 서림의 계정은 alskdjfh123.
지속적인 악플로 나를 미세하게 진동시켰던 alskdjfh123. 에이, 설마. 임서림이 왜. 그럴 이유가 없잖아. 확실하게 알고 싶어 나는 C잡지 웹사이트에 들어가 내 칼럼 중 아무거나 하나를 눌렀다. 휙휙 내려 제일 아래 위치한 댓글창을 확인했다.
이 정도 수준의 글이나 싣는 거보니 C잡지도 이제 맛탱이 갔네. [수정/삭제]
악플 오른쪽 옆에는 댓글을 쓴 사람에게만 보이는 버튼이 있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다른 글을 확인해도 수정/삭제 버튼은 선명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지금까지의 우정이 부질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진짜 친구는 힘든 순간에 위로해 주는 게 아니라, 좋은 순간에 같이 기뻐해 주고 축하해 주는 거라고 했다. 누구나 타인의 불행에서 안도의 씨앗을 줍기 마련이니까.
생각해 보니, 서림은 항상 내 성취에 대해 인색하게 평가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내 기분을 상하게 하곤 했다. 나는 '친해서 그래'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친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삼수를 하겠다고 했을 때, 또 하려고? 너 그냥 현역 때 성적이 제일 잘 나오지 않았어? 그냥 이번에 성적 맞춰서 들어가고 반수를 하던지 해. 그렇게 말하던 서림의 표정. 결국 삼수에 성공해 S대에 합격했을 때 축하한다는 말 대신, 어우 근데 3살 어린애들이랑 어떻게 학교 다녀. 그렇게 말하던 말투. C잡지에 기고된 글에 적힌 내 이름을 사진 찍어 보내면서 이거 너야? 묻길래 그렇다고, 앞으로 C잡지에 코너를 연재하게 됐다고 했더니 니가 왜? 라고 묻던 그 짧은 한 문장. 니. 가. 왜.
언론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을 때도 축하한다는 말 대신, 혹시 기레기 닷컴이라고 알아? 기레기 같은 기자 기사랑 신상 박제하는 사이트인데 그거 조심해. 라고 말하던 서림. 퇴사했을 때도 그럴 거 같더라고 말하던 그녀. 로스쿨에 다니게 됐다고 말하는 나에게 결국 너도 이렇게 될 거 였네, 라는 어떤 조소. 나는 왜 그런 걸 그냥 다 모른 척 넘어가려 했던 걸까. 이따금 나를 지하의 문턱 앞으로 데려가던 너의 말들과 표정.
돌이켜 보면 서림은 고등학교 때부터 내 취향을 훔쳐가는 취향도둑이었다. 인디음악과 힙합에 골몰하던 시절, 열심히 디깅해 이 음악이나 아티스트가 좋다고 추천하면 서림은 다음날 공부하듯 앨범을 전부 듣고 와,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로로스도, 푸른 새벽도, 버벌진트도, 소울컴퍼니도 다. 같이 좋은 걸 나누고 그저 즐기고 싶었던 나는 '이제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알아', '내가 더 잘 알아'하는 식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감상까지 토씨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자기 감상처럼 여기저기 말 하고 다니고, 심지어 글을 써서 올리던 서림.
"에밀 아자르 알아? 혹시 로맹가리랑 에밀 아자르 같은 사람인 거 알아? 에밀 아자르는 한 작가에게 일생동안 한 번만 주어지는 공쿠르 상을 2회 수상한 유일한 작가야.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죽을 때 남긴 유서에 에밀 아자르가 로맹가리의 필명이란 걸 밝혔어."
나는 서림에게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자기 앞의 생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추천하면서 말했다. 이후 서림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인생 책이라면서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녔다. 몇 달 후엔 나한테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알아? 라고 묻길래 "당연하지." 대답했더니, "니가 어떻게 알아?" 라고 했다. 니가 어떻게 알아라니. 어이가 없어서 "그 책 내가 너한테 추천해줬잖아." 라고 했더니 "아 그래?"하고 까먹은 척을 했다.
그런 일들은 이후에도 몇 차례 반복됐고, 서림이 음악도 책도 취미가 아니라 전부 공부처럼 접근해 버리는 탓에 나는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이유를 상실해 버렸다. 나는 더 이상 서림에게 내 취향을 공유하지 않게 됐다. 그때 일찌감치 우리 사이의 균열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너의 무시하는 뉘앙스를 놓치지 않고, 그때 도망쳤어야 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서림을 떠날 수 없게 하는 건 어떤 죄책감이었다. 남들에게 좀처럼 속 얘기를 잘 하지 않는 그녀의 깊숙한 비밀을 아는 사람이 나라는 것. 그걸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림의 가장 약한 부분을 엿본 사람이 그걸 외면해 버리면 너무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 부분은 필연적으로 더 약해지고 말 거니까. 내게 저렇게 구는 것도 일종의 결핍에서 오는 거라 생각해 이해하려 했다. 서림은 나에게 자기 내면의 치부를 알려줬는데 내가 서림을 떠나버리면, 버려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설픈 책임감과 죄책감. 어쩌면 조금은 시혜적인 태도. 그게 내가 서림을 손절하지 못하고 매번 다시, 다시 하면서 '친구'라는 울타리에 가둬뒀던 이유라면 이유였다. 참 오래도 걸렸다. 그게 멍청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
적은 늘 가까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생각하자.
나는 배신감이 들었지만 치가 떨리는 분노보다는 일종의 공허함이 일었다. 임서림. 이름처럼 항상 제자리 걸음하는 너를 그 자리에 남겨두고, 그냥 거기 두고 나는 저 멀리 사라져 버릴 것이다. 어쩌면 지하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P시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인물과 사건 역시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