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 한반도에도, 내 인생에도.
피해규모 5000억 원, 사망자 23명, 부상자 500여 명, 4000여 명의 이재민 발생.
이렇게 수치화시키니 더없이 잔인했다.
한국은행은 P시 지진으로 발생한 도로와 학교, 공공자산과 주택과 같은 민간자산 등의 피해를 모두 합치면 5000억 원 규모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진 때문에 생긴 소비심리 위축으로 P시 내 수요가 감소하고, 공장설비가 복구되기까지 생산 활동이 줄어드는 등 간접적인 경제활동 손실 비용도 1000억 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일본 사례를 참고해 피해액을 산출했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은 정부의 분석보다 6배 이상 많은 수준이었다. 당연히 복구비용도 훨씬 더 많은 금액이 추산됐다. 사람들은 정부가 피해 규모를 축소해 P시 시민들을 기만했다고 분노했다. 정부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그렇게 큰 일은 아니야, 금방 회복할 수 있어."라고 애써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1111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은 이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또 한 차례 정부에 지진 피해 진상을 규명하는 성명을 촉구했다.
그 사이 나는 졸업을 했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다. 학교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사회인'으로서 세상에 나선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면서도 왠지 모를 부담감과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평소 잘 쪼는(?) 스타일이 아닌데 웬일인지 쫄보가 된 것마냥 갑자기 살짝 위축되기도 했다. '학교', '학생 신분'이라는 울타리는 이제 없다. 막상 닥치지 않으면 모른다더니, 안전지대가 주는 달콤함과 안락함, 소속감이 이렇게 큰 지 미처 몰랐다.
이제 돈 받고 일하는 만큼 프로처럼 굴어야 할 테고 내가 하는 일에 전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막중한 책임감이 수반될 미래. 설레기보다는 어깨가 무거웠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바짝 긴장했던 출근 첫날을 잊을 수 없다.
입사 첫날, 인턴들과 국장, 각 부서 부장들이 같이 회식을 했다. 광화문에 위치한 한 고깃집이었다. 2층으로 올라갔더니 룸이 여러 개 나왔다. 8명의 인턴들이 쭈루룩 들어가 자리를 채웠다. 삼겹살이 불판에서 익어갈 무렵이었다. 국장이 슬그머니 재킷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는 나를 포함한 인턴들 얼굴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시켰다.
다들 동기들이 하는 말은 듣지 않고 자기 차례에 무슨 말을 할지 만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국장은 첫 번째 순서인 인턴이 두 마디 정도 하고 뜸을 들이자, 그게 다야? 성의가 없네. 다시 해 봐. 라고 했다. 두 번째 순서인 인턴이 자기소개를 하자 국장이 중간에 말의 허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야, 너는 너무 길어. 그래서 야마가 뭐냐. 자기소개에 야마가 없어서 네가 어떤 사람인지 들어도 모르겠다."
세 번째 순서에게는 임팩트가 없다고 했고, 네 번째에게는 너무 재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불행하게도 마지막 순서였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으면서 임팩트 있고 재미까지 있는 자기소개를 준비해야 했다. 갑자기 첫 번째 순서가 부러워졌다. 역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은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앞선 순서의 자기소개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꿈, 끼, 깡이니 뭐니 하는 온갖 미사여구가 다 나왔다. 나는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지만(인간은 치욕스러운 기억은 정신건강을 위해 빨리 망각하도로 설계되어 있다), 30초 정도 얘기했던 것 같다. 국장은 얜 차라리 심플해서 괜찮네, 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휴---우하고 안도의 한숨을 뱉을 뻔했다.
우리는 국장이 뻐끔뻐끔 뿜어 대는 전자담배 연기를 얼굴에 정면으로 맞아대며 그 미개함에 (속으로)경악을 금치 못한채 그의 길고 긴 설교를 들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처음 입사해 수습이던 마와리 시절부터 지금 국장 자리에 앉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모조리 얘기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불판에서 고기가 차갑게 식어가는데 대서사시 같은 무용담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얘기가 끝난 후에는 인턴들에게 돌아가면서 질문을 했는데 하나같이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나에게도 여지없이 그런 질문이 날아왔다.
"너 남자친구 있냥."
국장은 술이 들어가니 포켓몬에 나오는 냐옹이처럼 냥냥 거렸다. 대학교에서는 왜 직장 상사가 남자친구 있냐고 물을 때 대답하는 모법답안 따위는 가르쳐 주지 않는 걸까. 없다고 하면 귀찮은 다음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굳이 거짓말하는 것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냥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만나면 뭐 하냥."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냥 똑같습니다.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 가고……."
"밥 먹고 영화 보고… 그래, 그 담에 뭐 하냥."
내 얼굴 근육이 굳는 게 느껴졌다. 어쩌라는 걸까.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걸까.
"집에 가는데요."
국장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5초 정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말했다.
"어미는 다나까로 말해라."
군대도 아니고. 언론사에 이런 구악은 좀 없애면 안 되나. 하지만 네, 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국장이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 라고 덧붙이자 다른 인턴들도 네, 하고 대답했다. 그 와중에 군필인 남자 인턴들의 "예, 알겠습니다!"라는 소리가 유독 우렁차게 울렸다.
이번에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시켰다. 국장 이름으로 지은 3행시부터 불문과 출신의 드숑마숑, 그냥 '청바지'로 하겠습니다 까지……인턴 모두가 제 몫의 수치심을 성실히 적립해 갔다. 나는 재미있고, 건강하게, 축복하며 살자는 '재건축'을 외쳤다. 50대들의 취향에 제법 맞았는지 부장들이 크게 재건축! 재건축! 을 외쳤다.
국장은 기자일이 나랑 안 맞는다 싶으면 서로 시간 낭비하지 않게 오늘 이 자리에서 말하라고 했다. 그런다고 저 안 맞는 거 같습니다!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인턴은 아무도 없다는 걸 잘 아는, 기세 등등한 말투였다. 나는 묘하게 불쾌해졌다.
"너네 중에 2명만 정규직 전환되는 거 알지? 너네 일거수일투족이 평가 대상이 된다고 생각해라. 알겠냥."
국장의 근태 관리 당부를 끝으로 지옥 같은 회식이 막을 내렸다.
그날, 그 자리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야 하나. 그럼 '또라이'가 한 명 있었다고 전설처럼 회자되고, 술자리 안줏거리가 되고 말겠지. 오히려 그게 현명했으려나.
이곳이 내게 새로운 안전지대가 되어 줄 수 있을까.
뉴스에는 50만 명에 달하는 P시 시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지진피해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됐다. 국내 사법 사상 최대의 집단소송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P시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인물과 사건 역시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