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기억만 챙겨갑니다

우리의 시간은 이곳에 남기고

by 단월
헤어지는 날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떠나는 건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의 ‘나’라는 것을.


이사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마음속에서 두 개의 계절을
오가고 있었다.

“떠나야지, 이제는.”
그러면서도
“조금만 더… 여기서 살아볼까.”

사실, 이 동네는
의도해서 온 곳이 아니었다.
우연에 가까운 선택이었고
가까스로 내게 주어진 행운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단 하루도
가벼운 날이 없었다.

첫째가 유치원에 적응해 친구를 사귀고,
둘째가 말문이 트이고,
셋째가 세상에 오기 위해
뱃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던 곳.

이 집은
내 육아의 가장 뜨거운 시기를
함께 버텨준 곳이었다.

밤새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며
베란다 창틀에 기대
깜깜한 산을 바라보던 날들,

아침의 첫 햇살이
아이들 볼을 스치며
생글생글 웃음을 끌어내던 순간들.

모든 풍경이
내 일상 속에 스며 있었다.

이웃들과의 기억도 그렇다.
“우리가 아이 데리고 있을게요.
첫째 하원 다녀오세요.”

“소풍 도시락은 제가 준비할게요.
셋째 보시느라 못 쉬었잖아요.”

친정보다,
가족보다
더 가까이 곁이 되어준 사람들이었다.

그런 일상이 켜켜이 쌓이니
마음이 쉬이 떨어질 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좋았던 기억만 챙겨가기로.

서운함도 있었고
마음이 다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건 이 집의 본질이 아니었다.

정 떼기의 과정 속에서
가려진 온기만
끝까지 밝게 남았다.

이 집은
나의 성장지였다.
아이들의 발자국이
하나둘 새겨진 삶의 교과서였다.

그러니 이별 날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여기서 잘 살았어요.”

덮을 페이지가 있다면
펼칠 페이지도 있는 법.

인생은 그렇게
기억을 옮기며 자라는 것이니까.

좋았던 순간만
조심스럽게 포장해서
다음 계절로 가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