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던 사람이 사라졌다
대학 살사들 이야기, 친구
초등학교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헤어졌다. 사실 헤어졌다기보다는 잊고 지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내가 잊힌다는 것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입장에 따라 달라져 낯 간지럽기는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잊고 지낸다는 것은, 굳이 생각해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니, 기분 나쁠 일은 아니다.
'역시 친구는 어릴 적 친구지, 나이 먹어 친구 사귀는 것은 불가능해'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온라인 위키백과에서 친구를 찾아보니, '친구(親舊, 문화어: 동무) 또는 벗은 보통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은 지음(知音)이라고 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 친하게 어울리며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진짜 친구라는 얘기다. 그런 의미라면, 나에게는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은 그런대로 몇 있는데, 지음이라 할만한 친구가 아내를 포함해서 손가락 두세 개로 꼽을 수 있으니, 진짜 친구는 아주 적은 편이다.
직장(학교)에서 보고 지내던 사람이
하나 둘 사라 지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늘 그래 왔다.
식당에 같이 가서 밥(학식)을 먹고, 체육행사가 있을 때에는 줄다리기 동아줄을 함께 잡아당겼다. 회의장에서 만나서는 다른 견해로 말다툼을 하기도 했고, 맥주잔을 함께 기울이며 선배의 험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는 한 울타리에서 일하고 살아가며 서로를 만나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학교 밖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는 뜨문뜨문 전해 듣고 있지만,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는 부족하다.
돌이켜보면, 입사해서 10년 정도는 전혀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이후 10년 정도는 '어! 안 보이네' 했고, 그 후 10년은 '그 선배가 나라면 이럴 때 어찌했을까?' 하며 가끔씩 떠올리며 지냈다.
요즈음 나는 그 들이 없는 빈 벤치가 더없이 허전함을 차츰차츰 알아가고 있다.
나의 기억 속에 그들과의 이야기는, 처음 만남부터 죽 이어지는 스토리를 엮어내는 연속극이 아니라, 한 장면 한 장면으로 구성된 짤방으로 남아있다. 풀스토리가 아닌 짤방이기에 나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나쁜 일보다는 즐거운 일이 많았다 생각하는 나의 기억이 왜곡이라 하더라도,
지금 나를 미소 짓게 만드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친구라는 정의에 '친하게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못 보게 되면 아쉬울 사람'도 추가해보면 어떨까? 그리하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친구 삼아도 되지 않을까?
거기에다 '못 보게 되어 아쉬운 사람'까지 보탠다면, 지난 세월 같이 지냈던 사람 모두를 친구 삼을 수 있겠다.
내가 세상을 지나온 흔적이, 꼭 커다란 집이나 통장 속 숫자일 필요는 없겠다.
그 흔적이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친구라면 더~좋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