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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Jun 01. 2021

보던 사람이 사라졌다

대학 살사들 이야기, 친구

초등학교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헤어졌다. 사실 헤어졌다기보다는 잊고 지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내가 잊힌다는 것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입장에 따라 달라져 낯 간지럽기는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잊고 지낸다는 것은, 굳이 생각해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니, 기분 나쁠 일은 아니다.


'역시 친구는 어릴 적 친구지, 나이 먹어 친구 사귀는 것은 불가능해' 하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온라인 위키백과에서 친구를 찾아보니, '친구(親舊, 문화어: 동무) 또는 은 보통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은 지음(知音)이라고 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 친하게 어울리며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진짜 친구라는 얘기다. 그런 의미라면, 나에게는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은 그런대로 몇 있는데, 지음이라 할만한 친구가 아내를 포함해서 손가락 두세 개로 꼽을 수 있으니, 진짜 친구는 아주 적은 편이다.


직장(학교)에서 보고 지내던 사람이 

하나 둘 사라 지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늘 그래 왔다.


식당에 같이 가서 (학식)을 먹고, 체육행사가 있을 때에는 줄다리기 동아줄을 함께 잡아당겼다. 회의장에서 만나서 다른 견해로 말다툼을 하기도 했고, 맥주잔을 울이 선배의 험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렇게 우리는 한 울타리에서 일하고 살아가며 서로를 만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학교 밖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는 뜨문뜨문 전해 듣고 있지만,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는 부족하다.


돌이켜보면, 입사해서 10년 정도는 전혀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이후 10년 정도는 '어! 안 보이네' 했고, 그 후 10년은 '그 선배나라면 이럴 때 어찌했을까?' 하며 가끔씩 떠올리며 지냈다.

요즈음 나는 그 들이 없는 빈 벤치가 더없이 허전함을 차츰차츰 알아가고 있다.


나의 기억 속에 그들과의 이야기는, 처음 만남부터 죽 이어지는 스토리를 엮어내는 연속극이 아니라, 한 장면 한 장면으로 구성된 짤방으로 남아있다. 풀스토리가 아닌 짤방이기에 나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나쁜 일보다는 즐거운 일이 많았다 생각하는 나의 기억이 왜곡이라 하더라도,

지금 나를 미소 짓게 만드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친구라는 정의에 '친하게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못 보게 되 아쉬울 사람'도 추가해보면 어떨까? 그리하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친구 삼아도 되지 않을까?

거기에다 '못 보게 되어 아쉬운 사람'까지 보탠다면, 지난 세월 같이 지냈던 사람 모두를 친구 삼을 수 있겠다.


내가 세상을 지나온 흔적이, 꼭 커다란 집이나 통장 속 일 필요는 없겠다. 

그 흔적이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친구라면 더~좋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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