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ida Road Trip
벌써 몇 년도 더 된 일이지만 플로리다로 몇 주 간 로드트립을 떠났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습하지 않고,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오후 세시만 넘어가면 선선해지는 캘리포니아에만 있다가 한 여름의 플로리다를 가니 정말 북미 대륙이 얼마나 큰 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색깔을 모두 황토색이었다면, 여기는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나라처럼 다 녹색이더군요. 수목이 잘 자란다는 것은 뒤집어 놓고 보면 습하다는 이야기였죠. 건조한 서부와는 다르게 습하고 뜨거운 동부의 날씨는 마치 동남아 같았습니다.
플로리다에는 각종 미국 드라마로 유명한 마이애미 같은 대도시도 있고, 디즈니월드를 비롯한 각종 놀이공원으로 유명한 올랜도를 비롯한 유명한 지역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히 어린이가 있는 가족여행에서 올랜도를 빼놓지 않고 계획하고는 하죠. 저희도 올랜도에서 한주 남짓 묵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어떤 테마파크를 가볼까 고민하다가, 이미 LA에서 디즈니랜드는 여러 차례 다녀오기도 했고, 이 습하고 더운 날씨에 놀이공원들 걸어 다닐 염두가 나지 않아 '워터파크'를 테마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디스커버리 코브’라는 곳이 있더군요. 범고래 샤무로 유명한 시월드 계열에서 운영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 이색 워터파크'였습니다. 각종 물고기, 새, 동물들이 테마파크 안에 그냥 풀어져 있습니다. 가오리, 복어와 함께 수영할 수 있고, 이름 모를 열대 조류와 함께 산책을 할 수도 있더군요. All-inclusive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입장만 하면 추가 비용 지출 없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식사, 음료뿐만 아니라 주류, 하다못해 선크림까지 말이죠. 사실 선크림은 수질관리를 위해 여기에서 제공하고 있는 것만 쓰라고 하더군요.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는 패키지도 있어서 그것은 추가 비용을 내고 신청했었는데, 상상했던 것처럼 돌고래 수영장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요원의 통제에 따라 가까이 가보고 잠시 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더군요. 게다가 역시 시장경제의 중심인 미국이어서 그런지, 개인적인 촬영은 절대 불가하고, 이미 비싼 추가 비용을 냈는데도 불구하고 사진 촬영은 추가 비용이 더 있더군요.
싸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하루 종일 뷔페가 제공되는 리조트에서 아주 색다르게 놀고 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금액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테마파크도 있을 수 있겠구나' 놀라움도 느낄 수 있었고요. 한 번은 꼭 가볼 만한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약하는 시점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로 차이 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미리 알아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다만, 마치 수족관처럼 정말 물고기가 많고, '큰' 물고기도 많습니다. 음식과 주류도 모두 포함된 가격이고 하다 보니, 물고기나 물을 '아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음식을 가린다거나 한다면 조금은 아까울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패키지가 운영되는지는 알아봐야겠지만, 당시에는 디스커버리 코브를 입장하면 1주일 동안은 같은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아쿠아티카(워터파크), 씨월드(아쿠아리움)를 같이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아쿠아티카는 우리로 치면 캐리비안 베이 같은 곳이었는데, 아무래도 테마파크의 천국인 올랜도여서 그랬는지, 디즈니월드나 다른 테마파크로 사람이 몰려서 그랬는지, 아주 한산해서 모든 놀이기구를 두 번씩은 탈 수 있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니느라 엊그제 디스커버리 코브에서 잔뜩 먹은 음식과 맥주로 인한 뱃살이 쏙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샤무쇼로 유명한 씨월드는 이미 샌 디에고에서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일정도 하루 여유 있고 해서 한번 더 들렸습니다. 역시 열대 날씨는 종잡을 수 없어서였을까요. 한참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든 시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 맞춰 도착한 샤무 쇼 공연장에는 사람이 텅텅 비어있고, 저희를 비롯한 몇몇 외국인들만 앉아있더군요. 알고 보니 갑작스러운 뇌우 예보로 인해 시설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말도 안 되게 소나기가 쏟아지더군요. 태어나서 그런 비는 처음 맞아본 것 같습니다. 속옷까지 홀딱 젖을 수밖에 없는 비였는데, 당시만 해도 휴대폰이 완전 방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다닥 근처 어디 매장에서 우산 정리용 비닐봉지를 받아서 휴대폰, 자동차 키 등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꽁꽁 싸맸던 기억이 납니다. 비가 그칠 기미가 안 보여서 그냥 다 맞으면서 집에 왔었죠. 그렇지만 열대지방의 소나기여서 춥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땀으로 끈적거리던 것보다 시원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로드트립의 매력은 어디든 좋은 곳이 보이면 멈출 수 있다는 것이었죠. 이름부터 청량한 기분을 주었던 클리어워터에 좀 머물기로 결정하면서 얼마나 물이 깨끗하길래 동네 이름이 클리어워터일까 궁금한 마음에 해변으로 나갔습니다.
길게 늘어진 백사장은 사진에 담기지 않을 만큼 하얗게 빛났습니다. 선글라스 없이는 눈을 뜰 수조차 없더군요. 관광객보다는 로컬 사람들도 많은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모래가 많은 바다는 물 밖이 아름다울 뿐, 물속은 별로 볼 것이 없었죠. 일정하게 둥실둥실 몰려오는 파도도 물 위에서 튜브를 타고 있으면 재미있지만, 물속에서는 모래만 일어나서 안 그래도 탁한 시야 더 탁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작은 물고기들이라도 찾아보고자 한다면 이런 예쁜 모래사장 비치보다는 산호까지는 아니라도 수초나 돌덩이들이 좀 있는 해변을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플로리다를 돌아다니면서 동남아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는 '어떻게 이렇게 우리나라나 인근 아시아 국가들과 습도, 온도, 환경이 다를까' 생각했었는데, 여기 대서양 동편에 오니 뭔가 습하고 턱턱 막히는 게 태평양 동편에서 느꼈던 그 기분이 듭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아무리 더울 때 들어가도 바닷물의 한기를 떨칠 수가 없었는데, 여기는 필리핀에서 느꼈던 그 따뜻한 바닷물이 생각났습니다.
습도가 높고 물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민물에서 놀 수 있는 기회도 많았습니다. 우리로 치면 계곡이라고 해야 할지, 천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강원도나 경기도 어디 널찍한 계곡 유원지 같은 곳이 제법 있더군요. 깨끗하고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기억만 되새겨 보아도 피로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있을 때 찾아갔던 계곡은 한 여름에도 물이 얼음장 같았던 기억이 있거든요.
사실 플로리다 여행의 목표는 열흘 정도 되는 생애 첫 크루즈 여행을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이애미를 출발해서 올랜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로드트립을 통해서 짧은 일정이었지만 플로리다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었죠. 다이빙을 하지는 않았지만 대서양 동편 바다에 몸을 담글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디스커버리 코브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워터파크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것도 신박한 경험이었고요. 사실 어지간한 다이빙 한 시간에 보지 못할 수중 생물을 다 만나볼 수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그 가격이라고 하면 미국 물가 치고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고 생각이 되네요. 다음번에는 이 로드 투어를 마치고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카리브해 기항지마다 했었던 다이빙의 기억을 되새겨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