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크루즈 두 번째 다이빙
카리브해를 한 바퀴 돌고 오는 크루즈 여행에는 세 곳의 기항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기항지가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미국령 버진제도인 세인트 토마스 섬이었고, 두 번째 기항지는 영국령의 토르톨라 섬이었습니다. 세 번째 기항지는 바하마의 낫소였고, 이후에는 다시 마이애미로 돌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버진제도는 말 그대로 '제도'이기 때문에 50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중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은 규모가 좀 있는 몇몇일 뿐이고, 대부분 무인도라고 하더군요. 이번에 들리게 되었던 토르톨라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중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 합니다. 근처에 있는 비슷비슷한 섬이지만 어디 국가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묘하게 분위기가 다르고, 현지인들의 말투도 다른 것이 흥미로왔습니다. 물론 현지인이라고 해도 지금은 수천수백 년 전에 이 땅에 살던 민족이라기보다는 어딘가에서 흘러와서 정착한 사람들이겠지만요.
크루즈에서 일정에 맞게 하선해서 바로 작은 다이빙 보트로 옮겨 타고 다이빙 포인트로 이동하는 것은 참 편리합니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뭐 하나 복잡하게 챙길 것이 없거든요. 갈아입을 옷도 딱히 필요 없고, 돌아와서는 바로 객실에서 깨끗이 씻고 잘 마른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토르톨라에서의 다이빙은 아주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해양 생태계에 대한 지식도 깊지 않고, 그냥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이빙을 '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기 때문이었겠죠. 따뜻한 열대 바다의 다이빙은 다 비슷비슷해서 재미없다는 분들도 계시던데,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새로운 것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이번 다이빙에서는 큰 물고기나 거북이 등은 만나지 못했지만, 다이빙 포인트 자체가 아기자기하고 예뻤습니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인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인지 설명은 지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양한 수중 구조물들로 인해 아기자기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고, 작은 난파선도 있어서 여기저기 탐험하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동남아에서 다이빙을 할 때면, 아침부터 시간 맞춰 차를 타고 다이빙 샵으로 가고, 일정에 맞춰 다이빙 보트를 또 타고, 또 몇십 분 몇 시간 다이빙 포인트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정도 입수를 하고 돌아오면 저녁시간이 되고는 합니다. 크루즈에서 바로 연계되어 차 한번 타지 않고 항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다이빙은 이런 면에서 시간도 많이 절약되더군요. 두 번의 다이빙을 모두 마치고 돌아왔는데도 아직 기항지에서의 시간이 한참 남아서, 사부작사부작 항구 근처를 돌아다녔는데, 한여름의 버진제도 태양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 오래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였 넘어가기 전에 배로 돌아와서 조금 쉬고,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할까 하고 메인 홀 쪽으로 나가보니 댄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더군요. 시끄러운 음악과 붐비는 사람을 즐기지는 않지만, 때로는 이런 분위기도 좋을 때가 있습니다. 혹자는 비싸고 지루한 여행이라고 이야기했던 크루즈 여행이었는데, 저는 하루하루 배 안팎에서 어떤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는 여행이더군요. 언젠가 시간과 기회가 허락된다면 좀 더 멀리, 많은 곳을 둘러보는 배에 올라보고 싶습니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런 기회는 누가 허락해주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만들어야 되는 것이 맞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