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모든 것>을 읽고
충격적이었다. 소설가가 자신이 소설을 쓴 과정을 고백하다니. 나는 그런 건 자기도 모르게 체화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정해진 순서 같은 건,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도 성찰을 통해 어렴풋이 깨닫는 정도가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쓰다 보면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런 부분은 짚고 넘어가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이러이러한 지식이 있으면 소설 하나쯤은 문제없이 써 내려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는다.
처음에 내가 이 책을 고른 것은 '파리 리뷰'의 책을 번역해서 한글판을 낸 출판사의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도움이 될 만하니까 번역해서 냈겠지,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미처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저자가 소설가가 아닌데 꿈에서 '소설가는 이런 경로를 통해 글을 써야 성공하느니라. 이게 너의 로또번호다'라고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네 단계가 너무 명확했던 것이었다. 물론 네 단계 중에 나는 당연히 아직까지 1단계이다. 4단계까지 가려면 아주 먼 길을 걸어야 한다. 몇백 편을 더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단계라도 마치 내 머릿속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이때 이러이러한 것은 그냥 넘기면 절대 안 된다'라는 충고로 가득하다. 나는 아무리 저자가 명성이 있어도 내용이 내가 싫어하는 방향으로 가면 다시는 읽지 않는데, 글을 쓰려면 그러한 독자로서의 입장만 고려해서도 안 되겠다고 정말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욕조에서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그래도 내가 싫은 글은 읽을 필요 없다는 것. 거부감 같은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은 없다. 내가 글을 쓰는 족족 메일로 보내서 출판사 담당자들을 피곤하게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천천히 실력이 는다고 누가 뭐라 하겠느냐는 입장이다. 출판해 주겠다고 이러이러한 부분은 바꾸라고 한다면 당연히 존댓말로 "아, 예, 알겠습니다." 하겠지만, 그냥 수첩에 쓰고 나중에 베껴서 올릴 뿐인 글들을.
그러나 그 책의 독자들 중에는 스스로 자신이 없지만 읽고 보니 3단계나 4단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다,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희한하게도 어느 정도 되더라도 하수 취급을 받는데 의외로 중수 이상이 되는 사람이 많은 신기한 나라니까. 수영이나 탁구에서, 축구에서, 양궁에서 중국에 밀리지 않는 것도 그게 아니면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나로서는 부러울 뿐이지만 단지 시작을 나보다 빨리 했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는 1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위축돼서 더 이상 못쓰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내 글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건 단지 아직 충분히 써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 써야 한다. <네가 아직 제대로 써보지 않아서 그래> 같은 말은 직접적으로 하지 않지만, 여기서 들은 충고를 받아들일 방법은 그 충고를 읽고 나서 다시 써보는 것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리고 수많은 한국인들은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말없는 사람도 술이 들어가면 할 말이 많고 혹은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면 부를 노래가 있고, 이것도 아니라면 어쨌든 할 말이 많거나 노래 부르고 싶은 순간처럼 자기만 아는 뭔가가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이 와도 굳이 입으로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곱씹으려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 같은 그런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은가. 뭐, 이상한 고정관념을 차치하고라도, 한국인이라면 할 말을 하지 않고 참을 뿐 혼잣말이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있지 말고 조금씩 더 나아지기를. 그리고, 한 가지 더, 글로 먹고살지 않는 사람들도 조금 더 많이 글 쓰는 일에 뛰어들면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그중에 5% 이상은 소설을 쓰게 되지 않을까? 내가 매번 써보려고 도전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소설 읽는 재미는 포기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일단 많이 쏟아져야 그중에 재미있는 것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