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사랑이란 건 나에겐 조금 어렵다

임신 18주 - 23주

by 까치

일주일에 한 번씩 남편 부모님은 우리가 그립다고 영상통화를 요청해 왔다. 매주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잘 지내고 있는 거냐 묻는 남편 어머니는 종종 남편의 여자친구인 것만 같은 느낌도 준다. (하지만 사랑의 대상이 남편 그리고 나, 아기라는 면에서는 조금 다르기도 하고 질투의 느낌은 확실히 아니다.) 영상통화를 할 때면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우리의 얼굴을 보게 되어 너무 기쁘다며 얼굴이 바로 환해진다. 그동안 궁금했던 점을 쏟아 내며 물어보시고 자기들의 이야기보따리도 푸신다. 내 몸은 요즘 어떤지, 무슨 업데이트는 어떤지, 우리와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는 제3 외국어로 대답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컨디션을 끌어올려 몇 그램의 미소를 더 보내고 안심시켜드리곤 한다. 하지만 그 반면 이 미소 뒤 내가 원치 않는 에너지가 어쩔 수 없이 소모되는 일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이 통화는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남편과 남편의 가족을 위해 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지구 저 반대편에서 손으로 키스를 날리고 하트를 그리는, 1주도 기다리기엔 긴 시간으로 느껴지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연애할 적 사랑을 하고 있던 20대 초반의 내가 보인다. 가족 간의 사랑이란 것도 내가 느끼던 연인과의 사랑과 비슷할 수 있던 것일까?


가족의 사랑이란 건 나에겐 조금 어렵다. 이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 그리고 임신을 하기 전까지 나에게 가족의 사랑이란 내 목을 옥죄어오거나 발에 모래주머니를 찬듯한 압박감, 죄책감과 비슷했다. 어떻게 행동해야만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거나, 그들을 상대로 맞서 싸워야 하는. 그리고 내가 슬픔이나 좌절에 빠져도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 꽤 외로운 것이어서 표현하지 않아도, 사실은 너 다 잘 되라고 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한국식 사랑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 집안에서의 사랑은 내가 발렌타인데이날 초콜릿을 넣어 손수 접은 종이접기를 준비하는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었다.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처럼 자꾸만 보고 싶고, 궁금하고. 또 기성세대로서 이끌어주고 동시에 우리를 믿어주는 그런 가족이었다. 에로스와 플라토닉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임신 후 내 뱃가죽 아래에서 쉴 틈 없이 꼬물거리고 딸꾹질을 하는 이 생명을 아직 만나보진 못했지만, 얼굴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나도 감히, 그리고 이미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말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 특정한 영혼이 나에게 오기까지는 3억 대 1의 확률을 뚫고, 수정이 되기 전까지의 1초, 1분, 1시간 그리고 1년이나 10년이란 시간이 이제는 쓸모가 생기고 납득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힘들었던 지난날이나 슬픔이라든지 후회나 억울함도 이 확률을 만나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 된다. 과거가 과거 완료로 점을 찍어버리는 이 이벤트에서 위로를 꽤 많이 받는다. 이젠 괜찮다고, 앞으로도 괜찮아질 거라고. 나는 여러 사람의 사랑 속에서 그리고 받은 사랑을 나눠주며 살게 될 것이라고.


어젯밤 남편과 영화를 보며 안락의자에 앉아있는데 언제나처럼 고양이가 내 무릎 위에 앉았다. 배와 허벅지로 전해지는 따듯한 체온과 가르릉 거리는 진동소리. 그리고 나를 믿고 자신의 몸을 편안하고 동글게 만 다음 눈을 감는다. 작고 부드러운 이 생명을 보면서 임신 전에는 임신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상상하곤 했었다.

이제는 이 한 의자에 세 개의 심장이 있다. 그리고 옆의 남편의 손까지 잡으면 네 개의 심장이 연결되어 있다. 이 넷이라는 숫자는 튼튼한 의자 다리처럼 너무나 안정적인 숫자라 마음의 편안함이 생긴다. 이제는 가족이구나.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셋에서 넷.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키우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본능적으로 나만의 가족을, 나만의 안식처의 크기를 불려 가는 것을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족을 만들어 나간다는 건 생각보단 재미있는 일이다. (고리타분하고 어려울 것이라고만 짐작했다.)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다리는 시간은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잘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과 비슷하다.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도 흙이 잘 마르고 구워지는 시간을 인내하며 설렘을 가지고 기다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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