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天氣)를 읽을 수 있다면
천기(天氣)를 읽을 수 있다면
대학교 1학년 2학기 전공수업이 시작되고, 구조역학 교수님이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맨 앞에 앉아있는 저를 보고 흠칫 놀라며
“ 자.... 네.... 뭔가?! ”
새까만 얼굴의 저를 보고 당황한 듯 소리를 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방학중 2달여 동안 서해염전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후로 일반적인 썬텐의 그을음이 아닌 흑연을 얼굴에 바른 광부의 피부색을 한 학생이 교수님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학창 시절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습니다. 알루미늄을 녹여 판재로 만드는 일, 고무 원자재를 녹여 가래떡처럼 뽑는 기계에서 뜨거운 고무제품을 맨손으로 받아내는 일, 골판지 생산, 아스팔트 시트 제작 타르 제거작업, 원목자재 야적장 정리작업, 스티로폼 제조 생산 등 학비마련을 위해 방학 때마다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일이었습니다. 불타는 태양아래로 염전수차에서 열심히 발을 구르는 염부(鹽夫)가 바로 저였습니다.ㅎㅎ 워낙에 소금을 생산하는 땅이 넓은지라 평소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위가 쓰입니다. 소금이 생산되는 구역의 팀당 면적이 5 정보(15,000평)로 2개 구역 10 정보(30,000평)를 담당했습니다.
정보는 한 변의 길이를 곡척 6척으로 한 정사각형의 넓이를 기준 면적으로 하고, 그것을 1평(坪) 또는 1보(步)라 하였다. 그 기준 면적의 3,000배를 1정(町) 또는 1 정보라 하여 산지나 전토의 면적은 미터법이 실시되기 전까지는 모두 평이나 정보로 표시하였다. 일본 곡척의 길이는 30.303㎝였으므로 1평은 3.3058㎡, 1 정보는 9,917.4㎡(3,000평)에 해당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바다 쪽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논같이 생긴 정방형의 염전에 물을 가두어놓고 자연증발로 물속의 염도를 높여가면서 가장 아래 염전까지 차례로 이동시킵니다. 가장 마지막 염전에는 바닥에 사금파리로 모자이크 타일을 만들어서 고무래로 바닥을 긁으면 과포화상태의 소금물에서 소금을 수확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중간중간 대나무 형태로 된 염도 측정기(아마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했던 방식인 듯)로 농도를 확인하면서 며칠을 졸이다가 최종 염전바닥에서 오후 4시쯤 되면 소금결정체가 물 위로 떠 오릅니다. 당시 아저씨들은 “꽃이 핀다”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외발수레에 물속에서 건진 소금을 가득 싣고 염고(鹽庫)라 일컫는 소금창고에 쌓아 1차 건조를 시키고 나중에 정제공장으로 이동시켜 정제소금을 얻는 과정이 염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공정이었습니다.
아! 그 수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그 수차의 역할은 임시로 저장된 소금물을 다시 염전에 풀어놓기 위해 물을 끌어올려 바닥에 펴는 장치입니다. 오로지 인력의 힘으로 그 작업을 합니다.
비가 오면 기껏 말려놓은 소금물이 맹물이 되니까 비가 오기 전에 임시 저장창고로 물을 가두어 놓습니다. 가두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논둑에 막혀있는 판자만 걷어내면 모든 물이 작은 개울을 따라 임시저장창고로 들어가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일이 장난 아닙니다. 수차의 역할이 그때 시작됩니다. 제 기억으론 수차질로 다시 물을 염전에 되돌리는 시간이 족히 4-5시간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장마!
비가 오전에 잠깐 왔다가 개면 거의 하루종일 수차를 돌려야 합니다. 그다음 날 또 비가 오다 개면, 이틀을 연속해서 같은 작업을 해야 합니다. 5시간여 동안 뜨거운 태양아래서 몸의 중심을 가눌 수 있게 하는 지팡이 하나 붙들고 도(道)를 닦아야 합니다.
물을 푸다가 저 멀리 수평선에서 구름이 보이고, 제 피부에 바람이 스쳐가면서 소나기가 올 것 같다는 전조를 느끼면 재빨리 염전 마개를 걷어내고 소금 저장고로 물을 들여보냅니다. 만약 그 육감이 틀렸다면..... 헐, 다시 수차에 오르고, 도(道) 닦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ㅎㅎ 그리고, 제 얼굴은 점점 광부의 얼굴로 짙게 변화되어 가는 것이지요.
레미콘 타설의 시기는 공기단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골조공사가 끝나야 마감공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충분한 양생까지 고려해서 정해진 날짜에 타설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급적 우기(雨期) 때는 골조공사를 피하는 것이 공기단축에 유리합니다.
레미콘 타설날짜가 다가오면 일주일정도 앞서서 일기의 변화가 없는지 체크합니다. 기상청 주간일기예보부터 시작해서 daum 일기예보, 아이폰, 갤럭시폰 일기예보를 두루두루 점검합니다.
요즘은 기상예보가 80% 이상 잘 맞아서 기상청자료만 확인해도 낭패를 보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기가 불안정한 장마철이나 소나기가 예상되기라도 하면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때문에 곤욕을 치릅니다. 하루 전에 레미콘 재료, 펌프카, 타설인력을 전부 세팅해 놓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에 진행이 안되면 급작스럽게 모든 것을 취소해야 하고, 특히나 금요일에 타설을 못하게 되면 이틀이 지난 월요일이나 돼서야 재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틀을 버리게 되는 셈이고, 연휴라도 중간에 끼어들면 일주일까지도 시간을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명절 전에는 레미콘 물량이 부족해서 일주일 전부터 예약을 해놓는 극성을 부리기도 합니다.
레미콘 타설 당일에 비가 오락가락하면 공사를 담당하는 책임자는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당 2-3mm의 강우량이면 문제 될 것이 없어도 레미콘차량이 출고되고, 모든 장비와 인력이 세팅되었는데 강한 비라도 내리면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진행할 것인가 보류할 것인가에 따라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현장책임자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이때는 기상청 초단기예보시스템을 확인합니다. 지역별 실시간 비구름 이동사진을 통해 예상 강우량을 확인합니다. 지도를 확대하면 내가 있는 지역의 구름형태까지 보면서 최선의 판단을 해야 합니다.
부채만 안 들었지 삼국지의 제갈량이 된 것 같습니다.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손권-유비연합군이 화공으로 조조의 수군을 대파한 것도 천기를 읽은 제갈량의 동남풍이 있었습니다.
천기까지 읽어야 하는 것이 건축시공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