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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Jun 23. 2024

같이 하는 사람과 거드는 자(者)

만들어지는 권위

  난리, 난리,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닙니다. 계획된 단지에 집이 안 들어간다? 그걸 지금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대표 건축사가 직원을 때려 잡기 일보직전입니다. 사무실 다른 직원들은 얼음이 되어 어찌 된 상황인지 어리둥절 멘붕상태로 상황을 파악해 봅니다.


  대표 건축사가 계획하던 단지 프로젝트를 디벨럽(develop)하는 과정에서 한 직원에게 각 평면의 수정을 맡겼고, 그 직원은 성실하게 내려진 오더(Order)를 수행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는 문제가 생겼던 겁니다. 수차례의 평면 수정을 거친 후 각 동(棟)의 평면을 재배치했을 때, 그 평면이 처음보다 너무 커졌다는 것을 사전에 알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장 내일 최종 결과물을 제출해야 하는 대표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이를 때 없는 실수에 분노했고, 모진 수모(?)를 겪은 직원은 결국 사표를 내고 퇴사를 했습니다. 벌써 십수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사실 있는 그대로 본다면 변명의 여지없이 직원이 잘못한 것이 백번 맞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 직원도 이해되는 것은 당시 대표 건축사의 권위와 위엄에 어떤 반론이나 의견을 그동안 제시할 수 없는 상황과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절대 권위를 가진 고급기술자로서의 대표는 직원을 "같이 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일을 거드는 자"로 보았기 때문에, 일하는 과정 속에 소통이나 교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무언의 통제가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가 초래될 수밖에 없는 원인은 상당 부분 대표에게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제가 직원을 대신해서 변호해 줄 수 있는 한마디입니다.


  권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억압하고 호통치고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하수(下手)의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친밀감의 형성은 함께 일하는 공동체에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사적인 대화가 공적인 대화로 이어지기도 하고, 어렵고 풀리지 않는 문제도 공론화시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경직된 사무실은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규율과 통제가 많은 곳은 직원들이 수동적, 배타적으로 움직이게 되고 스스로를 고립화시킵니다.  웃음이 있는 곳에서 창조적인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부서나 팀(장)이 책임을 나누거나 고통을 분담하는 분위기에서는 개인의 실수를 쉽게 공론화시키고 해결책을 찾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문제를 숨기려는 심리는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생깁니다. 곪아 터지기 전에 공개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내가 "부리는 자"보다는 나와 "같이 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수록 역설적으로 공동체(직장 또는 부서) 안에서 나의 권위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여러 공종과 다양한 직종들이 함께하는 건설현장에서는 자칫하면 이해충돌이 발생하고, 심지어 협업관계도 깨질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할 뿐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협업(協業)을 넘어 협주(協奏)가 되도록 하는 것이 요즘같이 어려운 건설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문사진 출처 : 아미미술관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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