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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 나의 우주가 아프다

A flower is not a flower, 영원을 향한 나의 안녕

by 연하나

태양 가까이에 자리하는 어느 행성처럼 마음의 병도 그렇게 얼굴을 드러낸다.




어린 시절, 나는 『좀머 씨 이야기』를 읽고 엄마에게 달려가 흥분하며 물었다.

“엄마, 좀머 씨는 죽은 거야?”
엄마는 귀찮은 듯 덮고 있던 이불을 걷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얼른 잠이나 자.”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나... 죽는 게 너무 무서워.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너무 무서워.”

그 순간, 엄마의 커다란 눈은 진동했고, 흐느끼는 듯 말했다.

“엄마도 무서워. 그런 생각하면, 엄마도 무섭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는 모든 걸 알고, 모든 두려움을 다 잠재울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는 그날 밤을 여전히 기억한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말했다.
지구는 생각보다 연약하며,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존재라고.


70억 인류는 물론, 수억의 생물들이 기대어 살아가는 터전은

우리가 믿어온 것보다 훨씬 더 위태롭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고.


그날 밤 어린 나는 책을 부여잡고 울었지만,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우주와 인간, 존재와 죽음을 차례차례 떠올린다.

휴.

한숨이 짧게 나온다.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사유의 굴레에 갇힌다.


실체 없는 나는 우주에 영원히 귀속되어 끝없이 잔존될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나만 소멸될 테고.

아니,

어쩌면 사유의 형태만 달라지고 여전히 생각이란 건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만지는 모든 존재에도 어떠한 물음을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처연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에 많은 사람들이 물건에 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아무렴...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


몇 년 주기로 태양 가까이에 자리하는 어느 행성처럼 마음의 병도 그렇게 얼굴을 드러낸다.

행성이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더 빨리 운행하고, 멀어질수록 천천히 운행하듯,
결국 속도를 달리할 뿐 정해진 궤도를 따라 무한이 유영하는 것이다.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는 여기 있는 것이다.


생각이 너무 많아 힘든 당신.

생각 덜 할 수 있을까.

어쩌고 저쩌고 생각 줄임 관련 서적들이 많은 이유는 나 같은 사람들이 은근히 많아서다.


성경책처럼 칼세이건의 책을 머리맡에 올려 두고,

습관처럼 유튜브를 켜고 우주 영상을 찾아본다.


나의 작은 신성한 의식.
웅장한 BGM이 입혀진 ‘수면 유도 우주 영상’을 틀어 놓는다.


나는 구름을 닮은 하얀 침구 위에 누워 한 손은 가슴 위에 또 다른 손은 배꼽 위에 가만히 둔다.


우주의 심장 박동 같은 사운드, 그 영상 위로, 나의 고통이 겹쳐진다.


거대한 블랙홀처럼 내 허리 어딘가가 점점 빨려 들고, 이불속 나는, 다시 하나의 은하가 되어 잠이 들길.


몇 시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한 밤 중이고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쿵, 쿵, 쿵—

아. 제발


자. 이제는 정말 자야 해.

침대 속으로 빠져 들어야 한다잖아. 아득히 말이야.


눈을 질끈 감는다.

아니, 의식하면 안 된다고.


척추뼈 사이사이를 타고 온몸으로 번진 통증은 어느새 작렬감과 저림으로 엉치뼈와 다리까지 뻗쳐간다.


하얀 내 침구는 새빨갛게 들끓는 용암이 되어버린다.


쿵, 쿵, 쿵.
그 소리는 내 안의 무너지는 무언가와 같다.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 안일한 태도가 이 사달을 일으켰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필요 없다.


요 며칠, 나는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것이다.


어둠 속에서 이렇게 고통으로 몸부린 친다고 해도

태양은 무심히 떠오를 것이다.






카페 안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A Flower Is Not a Flower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나는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썼다.

햇살은 여유를 닮은 빛으로 테이블 위에 내려앉았고, 나는 커피잔을 들어, 고독을 닮은 듯한 볶은 콩 내음을 천천히 음미했다.


오늘은,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럴지도 모르지.
누군가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이 가볍고 경쾌했다.


그러나 피아노의 파동이 카페의 공간만이 아닌 내 마음까지 공명했다.


류이치의 손끝은 나비가 꽃잎에 내려앉는 것처럼 건반 위를 조심스레 오갔다.

나는 깊고 조용하게 그 선율에 휘감겼다.


요즘 들어 더욱 오랜 시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주중 오후에는 모니터 속 아이들을 가르치고, 하교하고 돌아오는 아이들을 돌보는 바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모든 것이 나의 안녕을 앗아가고 있었다.


어제 잠들지 못하고 불면의 밤을 보낸 이후로 통증의 여파가 여기저기 머물러있다.


하지만 이 통증도, 통증이 아니라고 실체는 그것이 아니라고 자각한다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A flower is not a flower.

류이치가 떠올리게 한 백거이의 시구.


화비화 (花非花) 꽃이면서 꽃 아니고

무비무 (霧非霧) 안개이면서 안개 아니어라



나는 더 나아갔다.

그리고 존재도 죽음도 실체가 아니라는 감각으로 미끄러졌다.


피아노 소리는 나를 몰자아(沒自我)의 경지로 이끌었다.


망각의 길 위에서 조용히 나아간다.

뚜벅뚜벅.

길가에 펼쳐진 꽃잎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향기로운 분내가 자연의 소리들과 함께 내 곁을 스친다.


꽃이지만 꽃이 아니고,
아름다우나 영원하지 않은,


고통이지만 고통이 아닌 순간,

그것이 내 삶의 진실이 아닐까.


입안에 머금었던 커피 향이 이내 자취를 감췄다.


한낱 껍데기의 통증은
작은 기억의 한 조각이 되었다.


후 하고 불어 흩어지게 하면 그뿐이다.


어디까지가 욕심이란 말인가.


지금의 나를 한껏 껴안아야 한다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순수한 아이처럼 소망하고 싶다.


영원을 향한 우주적 나의 안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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